땀 흘린 후 목욕이 예방약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1.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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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건강 시리즈 ■냉방병

에어컨을 항상 가동하는 건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중 냉방병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현대의 문명병의 증상과 대책에 대해 알아본다.


학생시절 ‘땀보’로 통했던 韓元奉씨(서울 서초구 서초동)는 3년 전 서울에 올라와 대기업에 입사했다. 지금 그의 여름은 늘 쾌적하다. 냉방이 잘 되어 있는 사무실은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하다. 최근 승용차를 구입한 한씨는 학생시절의 별명이 무색하게 30분 걸리는 회사까지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출근한다.

그러던 한씨가 언제부터인지 몸이 찌부드드하고 뒷골이 댕기는 증상을 경험했다. 때로 코를 훌쩍거리기도 했다. 의사는 “여름들어 비슷한 환자가 많이 찾아온다”면서 퇴근 후 미지근한 물로 목욕하면 증세가 나아질 것이라고 처방을 내렸다. 한씨는 이른바 냉방병 환자였던 것이다.

목숨 앗아가는 ‘레지오넬라균’
여름이 깊어가면서 냉방된 실내에서 장시간 근무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증상을 호소하는 일이 부쩍 늘고 있다. 許鳳烈교수(서울의대 ·가정의학)는 “냉방병은 의학적으로는 정의되어 있지 않은 신종 문명병으로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라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고려병원 李祥鍾 박사(내과)는 “독립적인 질병으로 인정되고 있지는 않지만 월요병 ·춘곤증처럼 그 증상으로 인해 의학적 묵인하에 통념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병”이라고 말한다. ‘손발에 피로감을 느낀다’ ‘어깨와 허리가 무겁다’ ‘체한 것처럼 속이 더부룩하다’ ‘코와 목구명이 시큰하고 근질거린다’ ‘몸에 열이 좀 있으며 으슬으슬한 것 같다.’ 이러한 것들이 이른바 냉방병의 자각증세들이다.

냉방병은 그 자체보다는 그로 인해 야기되는 ‘2차적 병’을 가져온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특히 허약자나 노인층, 면역저항력이 떨어진 만성질환자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이 될 수도 있다.

1984년 서울 고려병원 중환자실에서 집단으로 발병, 4명이 목숨을 잃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레지오넬라병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병은 레지오넬라균이 대형 중앙냉방시설 냉각탑의 물 속에 번식해 있다가 냉방시스템을 따라 실내로 들어와 호흡기를 통해 감염증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특히 냉각탑은 레지오넬라균이 번식하기 좋은 37도 전후의 온도와 습도 90%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레지오넬라균의 온상인 셈이다. 레지오넬라균에 의한 병은 아무 증상없이 지나가는 잠복감염형, 심한 열을 동반하며 2~5일 앓다 저절로 낫는 폰티악열병, 폐렴으로 발전하는 폐렴형 레지오넬라증 등 3가지로 나뉜다. 이 가운데 앞의 두 증상은 쉽게 치료되지만 폐렴형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기관지천식이 냉방에 의해 유발되는 수도 있다. 냉방장치에 포함된 가습기 안에서 자란 미생물, 혹은 이들 미생물로 인한 독소가 원인이다. 냉방된 건물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여름 내내 “감기가 안 떨어진다”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한편 金潤信 교수(한양대 ·환경학)는 “냉방병은 밀폐된 실내의 공기오염에 의한 빌딩증후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에서 72년 처음 보고된 이 증상은 바깥 공기가 들어올 수 없는 환경(주로 중앙집중식 냉난방 시스템의 건물)에서 근무하는 실내 거주자들이 두통 ·현기증 ·졸음 ·메스꺼움 ·집중력 감소 ·업무능률 저하를 가져오는 것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90년 창립된 ‘실내환경과 건강연구회’ 회장이기도 한 김박사는 실내오염의 주요 물질은 이산화질소 ·일산화탄소 ·라돈 ·석면 ·포름 알데히드 ·미생물성 박테리아 등인데, 밀폐된 실내환경으로 말미암아 이 오염물질이 농축된 채 계속 축적돼 질병을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특히 건물의 단열재와 섬유옷감에서 발생되는 포름 아데히드는 처음에는 눈 코 목의 가려움증을 나타내나 시간이 길어지면 기침 설사 구토 피부질환 등을 유발시킨다는 것이다.

빌딩증후군의 대표적 증상은 두통과 점막의 자극증상이다. 외국에서 실시된 한 조사에서는 폐쇄된 건물 안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28%가 비염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자연환기를 하는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의 경우 5%만이 비염을 가지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이에 대해 박재훈 과장(고려병원 ·이비인후과)은 “코는 온도와 습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코점막은 외부 온도가 23~24도, 습도는 60~70%일 때 정상적인 섬모운동을 하나, 에어컨이 작동할 경우 실내 습도가 20~30%까지 떨어져 섬모운동이 어렵다는 것이다. 코에 들어간 먼지를 걸러주는 섬모운동이 어려워지면 비염증상으로 발전한다. ‘코가 맹맹하다’ ‘콧물이 흐른다’ ‘머리가 아프고 코 뒤로 무언가 흐르는 듯하다’는 것 등은 모두 비염증상이다. 박과장은 비염증상이 3주 이상 계속되면 병원을 찾을 것을 권한다. 방치하면 축농증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가정은 27도, 사무실은 26도가 적당
일반적으로 실내외의 온도차는 5~8도이하여야 좋다. 실내외 온도차가 10도가 넘으면 기온은 우리 몸에 하나의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따라서 1시간마다 5분씩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면서 가정에서는 27도, 사무실에서는 26도 정도의 냉방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한국냉동공조공업협회 검사부 박원석 기술과장은 “직장인이 냉방병을 호소해옴에 따라 창문을 새로 다는, 이른바 ‘건물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냉방시스템을 정기점검하는 것이 냉방병을 예방하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사부 방역과 李德衡 사무관은 “대형건물일 경우 2주에 한번 냉각탑을 청소토록 하고 살균을 위해 냉각탑에 잔류염소량을 0.4PPM 이상 유지하도록 하고 있으나 권장사항인 만큼 지키지 않더라도 규제하기는 어려운 시정”이라고 말한다.

직장인의 건강은 직장인 스스로 지킬 수 밖에 없다. 밀폐된 건물에 갇혀 병을 키우느니 냉방제일주의를 떨쳐버리고 땀흘리는 건강함을 되찾는 게 어떨까. 더우면 더운대로 자연의 순리에 맡기고 하루 한번은 웬만큼 땀을 흘린 후 목욕으로 씻어내는 것도 건강한 생활방법이다. 여름에는 더위를 느끼는 것이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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