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오히려 ‘병’
  • 정리.편집국 ()
  • 승인 1994.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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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의학 미신’ 아홉 가지

병원은 무조건 큰 곳이 좋다?
서흥관(인제의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큰 병원을 이용하게 되면 항상 듣는 이야기로 ‘3시간 대기에 3분 진료’를 경험하게 된다. 아니면 어떤 경우에는 며칠에서 몇달까지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또 보험료도 본인 부담금의 비율이 의원일 경우에는 총진료비의 30%만 내면 되지만, 병원(입원 병상 수가 20~80개인 병원)은 40%, 종합병원(입원 병상 수가 80개 이상인 병원)은 55%를 내야만 한다. 그런데도 큰 병원에 환자가 몰린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나의 경험담을 소개한다. 내가 어느 대학 병원에 근무할 때 둘째 아이를 낳아야 할 때가 되어 산전 진찰과 분만할 곳을 찾다가, 산부인과에서 인기가 높은 한 교수 앞으로 특진을 신청하였다. 잔뜩 기대를 하였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우선 환자가 너무 많았다. 그 교수는 레지던트가 환자와 먼저 면담해서 중요한 내용을 기록해 놓으면 두개의 진찰실을 분주하게 왔다갔다하며 형식적으로 진찰하는 것이었다.

 아내와 나는 생각을 고쳐 먹어야 했다. 평소에는 감기 환자들까지 대학 병원에 몰려들기 때문에 대학 병원이 이렇게 아수라장이라고 비판하던 내가, 아내의 정상 분만을 대학 병원에서 하려고 했다는 점이 반성되었다. 심사숙고 끝에 집에서 가까운 산부인과에서 진찰을 받기로 하였고, 편하고 만족스럽게 둘째 아이를 낳았다.

 일반인이 병원을 찾는 문제의 대부분(질병의 발생 빈도 별로 따졌을 때 약 90%)은 1차 의료(종합병원 이하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라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밝혀져 있다.

 물론 꼭 큰 병원을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진단이 불확실한 경우나 흔치 않은 병, 흔한 병이라도 합병증이 생겼거나 1차 의료 수준에서 잘 치료가 되지 않을 때는 마땅히 큰 병원을 찾을 일이다. 그리고 장기간 입원을 필요로 하는 중한 병이라든지, 큰 수술(흔하고 작은 수술은 작은 병원에서도 가능하다)을 해야 될 정도로 중요한 병일 경우도 주치의와 상의해서 큰 병원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언제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작은 병원의 의사를 주치의로 정해서,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한 모든 문제를 상의하기를 당부하고 싶다.

순한 담배가 덜 해롭다?
조흥준(울산의대 서울중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흔히들 순한 담배는 건강 위험을 줄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순한 담배란 대개 타르와 니코틴의 함량이 적은 담배로 ‘-라이트’ ‘-마일드’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은 물론 이들 담배가 해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아니다. 타르는 여러 가지 암의 원인으로 잘 알려진 물질인데, 타르가 적게 포함된 담배를 피울 때는 담배를 더 많이, 더 깊이 들이마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니코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니코틴은 담배에 중독되는 원인 물질이기 때문에 니코틴 농도가 낮은 담배를 피울 때는 혈액 내에 니코틴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담배를 더 많이 피우게 된다. 따라서 순한 담배, 즉 저타르 · 저니코틴 담배가 보통 담배보가 건강을 덜 해친다는 생각은 담배 회사가 퍼뜨린 잘못된 고정관념이다. 더구나 순한 담배가 무해하다는 잘못된 생각은, 임산부를 비롯한 여성 · 청소년으로 하여금 담배의 위험성을 과소 평가하게 하여 흡연 시작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적게 하고 있다.

 연기를 깊이 들이마시지 않으면 해가 덜한가. 같은 양의 담배를 피우는 경우,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지 않으면 본인에게는 해가 덜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대개 흡연량이 늘어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른바 ‘뻐끔 담배’는 남이 내뿜은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는 주위 사람에 대해서는 위험성이 더 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담배는 피울수록 위험이 커지며 빨리 끊을수록 위험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예방주사를 맞으면 그 병에 안 걸린다?
최지호(인제의대 상계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예방 접종이란 병을 일으키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일부분을 일부러 사람의 몸 안에 넣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몸에 들어간 세균 · 바이러스(병원체)에 대한 방어 물질(항체)이 생기게 되어, 그 병원체가 다시 침입하여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몸의 특성상 예방 주사를 맞았다 하더라도 백%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방 접종을 하였지만 방어 물질인 항체가 아예 생기지 않을 수가 있는데 이것을 의학적으로는 1차 실패라고 한다. 항체는 생겼는데 그 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2차 실패라고 한다.

 1차 실패는 개인차 · 보관 등의 문제로 예방 주사제의 약효가 떨어진 경우나 접종 방법이 잘못된 경우에 생긴다. 2차 실패는 접종 후 시간이 오래 지남에 따라 항체가 적어져 인체의 방어 효과가 떨어지는 것이 대표적인 이유이다.

 예방 접종을 하고 항체가 생기는 확률은 홍역 96~100%, 볼거리 90~100%, 풍진 99~100%, 수두 94~100%이다. 이런 종류의 예방 접종은 한번 접종으로 거의 백%에 가깝게 항체가 생긴다. 그러나 1차 실패가 생기기 때문에 미리 접종을 여러 번 해야 하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B형 간염은 1차 접종후 30%, 2차 접종후 90%, 3차 접종후 95%로 3차에 걸쳐 접종해야 한다.

 또한 예방 접종의 효과가 낮은 것도 있다. 결핵에 대한 BCG 접종의 예방 효과는 0~80%, 장티푸스의 경우 주사는 79~88% 경구용은 51~76%이며, 콜레라는 50%로 낮은 편이다. 더욱이 콜레라는 예방 접종을 한 지 3~6개월이 지나면 주사를 맞은 효과도 없어지고 만다.

젊은 사람 피를 수혈하면 젊어진다?
조한익(서울대학교병원 임상병리과 교수)
 몇달 전 일간지에 고령인 북한의 고위층 인사가 자신의 젊음을 위해 젊은 처녀들의 피를 수혈받고 있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설마 그럴리가.” 도대체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북한이 폐쇄적이고 한 개인을 신격화하며 대중을 억압하는 사회라지만 그처럼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이 있으랴 싶었던 것이다. 왕조 시대의 왕이 자신의 젊음을 위해 어린 처녀와 잠자리를 함께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처녀의 피를 수혈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할 듯싶다. 혈액에 대한 편견도 왜곡도 이쯤되면 정도가 지나치다. 하지만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턱없는 짓을 할 수도 있는 만큼 이 문제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수혈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해야 한다. 혈액의 산소 운반 · 지혈 · 백혈구 기능이 낮아지거나 또는 혈액량이 줄었을 때, 이를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이는 치료를 위한 약물 처치와는 다르다. 수혈된 혈액은 자체 수명이 다하면 기능도 다하게 되므로, 일시적이며 보존적인 치료의 한 방법일 뿐이다. 혈구 성분 중 수명이 가장 길다는 적혈구의 수명이 1백20일이므로 수혈된 적혈구 중에는 이미 수명이 거의 다 된 적혈구도 적지 않은 것이다. 현재까지 수백년 동안 혈액이 연구되어 왔으나 젊은 사람의 혈액이 젊음을 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과거에는 피를 그냥 수혈함으로써 필요 없는 혈액 성분도 함께 수혈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필요한 성분만을 수혈하는 것이 원칙이다. 예를 들어 혈액의 산소 운반 기능이 저하되었을 때는 적혈구 성분 제제를, 혈소판 저하에 따른 출혈 경향이 문제될 때에는 혈소판 성분 제제를, 혈장내 응고 인자가 부족할 때는 바로 그 응고 인자 제제를 수혈하는 식으로 필요한 성분만을 수혈하는 것이다. 또한 수혈에 따르는 부작용도 적지 않아 수혈에 대한 적응증 검사를 더욱 엄격하게 하고 있다. 비록 안전한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철저하게 검사하고 있으나 여전히 수혈로 간염 · 후천성면역결핍증이 전파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혈액은 혈액이 모자라는 현상만을 대치할 수 있을 뿐이므로 수혈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해야 할 것이다.

술은 섞어 마시면 더 취한다?
조창호(조내과의원 원장)
 많은 사람이 술을 두 가지 넘게 섞어서 마시면 더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연 그런가. 술의 순수 성분인 에탄올은 위와 장에서 빨리 그리고 전부 흡수된다 (약25%는 위에서, 75%는 장에서 이루어진다).

 술이 흡수되는 속도는 몇 가지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대부분의 음식물은 술이 위장에 흡수되는 속도를 늦춘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음주의 속도와 양이 많을수록 취하는 속도는 빨라진다. 또 위장 운동의 속도가 빠를수록 흡수 속도도 빨라진다. 에탄올은 거의 전부가 간에서 대사되는데, 1시간에 5~10g 정도의 일정한 속도로 분해된다. 결국 술에 취하는 정도는 에탄올의 혈중농도에 의해 결정되므로, 알코올 농도가 높은 술을 빨리 마실수록 그리고 흡수가 빠를수록 더 취하게 된다.

 술을 섞어 마시면 일반적으로 에탄올 섭취량이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또 그만큼 술을 더 빨리 마실 가능성이 커져 더 취하는 일이 많다. 흔히 강한 술을 먼저 마시고 약한 술을 나중에 마시는 것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취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강한 술에 의한 취기 때문에 약한 술의 음주량이 많아져서 결과적으로 혈액 속의 에탄올 농도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같은 정도의 에탄올이 같은 정도의 속도로 흡수되는 경우라면 섞어 마신다 하더라도 취하는 정도에는 별 차이가 없다.

미친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기 쉽다?
이홍식(연세대 원주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몇년 전 택시가 여의도 광장을 질주하여 많은 사상자를 낸 끔찍한 사고가 있었다. 사건을 저지른 택시 운전사가 정신과 치료를 받았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각 매스컴은 정신질환자를 매우 위험한 인물로 규정지으려 했고, 뒤이어 정신질환으로 병역을 면제 받은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적성검사가 실시되어 한동안 신경정신과 병원이 북적대었다. 또한 이 사건 이후에 일시적이지만 정신과 입원 환자가 증가하였으며, 정신질환자의 가족이나 이웃들로부터 문의 전화가 쇄도했었다. 문의 내용은 대부분 ‘정신질환자가 위험하지 않느냐,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식으로 정신질환자를 마치 범죄자처럼 인식하는 느낌을 주었다.

 왜 정신질환과 범죄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믿는가. 우선, 사회 전반에 걸쳐 정신질환의 개념이 잘못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정신질환은 ‘신경증’과 ‘정신병’ 두 가지로 구분한다. 사회에서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신병에 해당된다. 정신병에는 정신분열증 · 조울증 · 편집증 · 우울증 및 기타 기질적 정신병이 해당된다. 이들 정신병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정신분열증을 들 수 있겠다. 일반인들은, 정신분열증 환자는 정신이 분열되어 모든 부분의 인격이 망가져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오해하고 있다. 정신분열증 증상 중 시각의 이상, 즉 환청이나 환시 같은 증상을 인격 장애의 일부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정신병은 대부분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어느 정도 사회 생활이 가능하다. 정신병 환자의 범죄율이 일반인에 비해 높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 특히 정신병 환자의 범죄나 폭력은 그들의 정신증상, 즉 환청이나 피해망상 또는 착각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범죄 가능성을 낮출 수도 있다. 즉 정신병 환자의 범죄나 폭력은 적절한 치료 여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국가나 사회는 이들을 위험한 죄인 취급하지 말고 적절한 치료 대책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뚱뚱한 아이, 비만증과 상관없다?
이충원(이충원소아과의원 원장)
 경제 사정이 나아지고 식생활 습관이 바뀌면서 우리나라에도 어린이 비만증 환자가 늘고 있다. 진료실에서도 종종 뚱뚱한 어린이를 볼 수 있는데 막상 비만증에 대해 걱정하는 보호자는 그리 많지 않다. 비만증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어릴 때 뚱뚱해도 어른이 되면 저절로 좋아질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소아 비만의 80% 정도는 어릴 때 치료하지 않으면 성인의 비만증으로 이행한다. 나중에 관상동맥질환 · 고혈압 · 당뇨병 · 담석증에 걸릴 확률도 높아짐은 물론이다. 게다가 어른의 비만에서는 지방이 세포 수는 변하지 않고 부피만 늘어나는 반면 소아의 비만에서는 지방 세포의 수와 부피가 모두 늘어나므로 어릴 때 생긴 비만을 조절하기가 더욱 어렵다. 따라서 비만은 반드시 어려서부터 예방하고 치료해야 한다.

 다른 특별한 질환 때문에 생긴 비만이 아닐 때 ‘단순 비만’이라고 한다. 유전인자, 심리적 요인, 칼로리 섭취와 소비의 불균형 등이 원인이며 식이요법, 운동, 심리적 요인의 해결 등으로 치료한다. 열량이 적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해야 하는데, 탄수화물과 지방을 제한하는 대신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도록 한다. 단백질 20%, 지방 35%, 탄수화물 45% 정도가 적당하다. 한꺼번에 많이 먹는 것보다 조금씩 여러 차례 나누어 먹는 것이 좋고, 되도록 밤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아무리 먹는 것에 주의해도 운동을 적게 하면 소용이 없다. 뚱뚱한 게 부끄럽기도 하고 몸이 둔해서 운동을 멀리하기 쉬운데 이럴수록 비만은 더욱 심해진다. 평일에는 하루 1시간, 주말에는 2~4시간씩 운동하도록 하고, 걷기 · 뛰기 · 수영 · 자전거 타기나 그밖의 재미있는 운동에 흥미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단시간의 격심한 운동보다 지속해서 서서히 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먹는 것보다 더 많이 운동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랑이나 관심의 결핍을 느끼거나 외롭고 불안할 때 과식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부모의 관심 부족, 외로움, 우울증 같은 심리적 요인도 해결해 주어야 한다.

기력 없을 땐 ‘링게르’ 한 병이 보약?
문정주(신천연합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링게르 한 병’을 맞으러 병원에 오시는 분들이 있다. 주로 손주가 있으실 나이의 할머니들이다. 진찰하는 의사에게 “하도 기운이 없어서 링게르 한 병 맞으려고 왔다”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분들은 자식들이 큰 도매 약국에 가서 아주 비싼 것을 사다 주었다면서 보퉁이에서 링거 액 병을 꺼낸다. 이걸 맞으러 오셨다는 것이다. 비싼 것 사셨으니까 집에서 그냥 맞지 그러느냐고 슬쩍 물어 보면, “의사 양반들 있는데서 맞아야 된다고 애들이 그랬다”라고 한다.

 링거 액을 맞는다는 것은 참말로 좋지 않은 얘기다. 그런데도 링거 액을 맞으면 기력이 돈다는 강력한 믿음은 마치 바위덩이 같아서 의사의 차근차근한 설명에도 별 반응이 없다. 링거 액에 대해 이런 오해가 뿌리 내리게 된 것은, 생각해 보면 이해할 만하다. 90년대인 지금은 설사 때문에 죽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60년대까지만 해도 설사(이질)는 우리 나라 사람의 사망 원인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 있었다. 그보다 아주 조금 앞 시대에는 폐렴과 함께 최고의 사망 원인이었다. 해마다 수만 명의 사람이 설사 때문에 목숨을 잃었으니 ‘설사병이 돌면 아이들이 하도 많이 죽어서 어떤 마을은 시체를 삼태기로 담아냈다’는 얘기가 그리 먼 옛적 얘기가 아니다.

 그 시절 병원에 데리고 가서 바로 링거 액 병만 달면 죽어가던 사람이 감기던 눈거풀을 올려 뜨며 기운을 되찾았다. 딴 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쏟아져 내리는 설사 때문에 몸 안의 수분이 거의 마르고 피 속의 미량 원소들이 균형을 잃으며 혼수 상태로 된 것이니, 일단 혈관으로 수분만 공급해 주면 되살아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링거 액을 맞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한 탈수로 중환자가 돼버린 사람을 변변치 않은 교통 수단으로 병원까지 옮겨야 하고, 당시로는 엄청났을 치료비를 어떻게든 낼 각오가 되어 있어야 링거 액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마음에 한을 남기고 아로새겨진 기억이란 좀체로 지워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나 아버지의 한 서린 넋두리를 귀 아프게 듣고 자란 자식들의 마음에도 고스란히 각인된다. 그 결과가 바로 대다수 사람들이 상식인 줄 알고 있는 오해, 즉 ‘기력이 없을 때는 링게르 한 병’인 것이다. 젊은 의사의 처지에서 볼 때에는 터무니없고 무모한 오해이지만 우리 사회가 겪었던 고통의 한 역사적 단면임을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같은 때에 링거 액을 맞으면 그대로 오줌으로 나가버리기 때문에 비싼 돈 내고 물 한잔 마시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근시는 수술로 치료해야 안전하다?
정덕영(전주예수병원 안과)
 얼마전 50대 아주머니가 찾아와 시력 저하(교정 시력 0.1)를 호소한 적이 있다. 젊은 나이에 시력이 떨어져 고생해 오다 요즘 근시를 수술로 간단히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기대에 부풀어 찾아온 것이다. 일단 검사해본 결과 굴절검사상 15디옵터 근시,3디옵터 난시,안저검사상 망막색소변성이 있어 아주머니에게 근시 교정 수술을 받지 말라고 권했다. 왜냐하면 수술로 근시를 잘 교정한다고 하더라도(이런 고도 근시는 수술로 교정하기 힘들다) 사진기의 필름에 해당하는 망막에 이상이 있어 기대한 만큼의 시력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시력이 나빠지는 원인으로는 가장 흔한 굴절 이상이 있고, 각막 · 수정체 · 초자체 · 망막 이상, 그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굴절 이상이 있더라도 다른 이상이 동반되면 동반된 질환이 치료되지 않는 한 굴절 이상은 교정되지 않는다.

 굴절 이상을 교정하는 것은 안경이나 콘택트 렌즈로 교정하는 광학적 방법과, 외부에서 가장 접근하기 쉽고 굴절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각막의 두께를 조절하는 수술적 방법(시력 교정법)으로 크게 나눈다. 지금까지 개발된 시력 교정술은 다이아몬드 칼로 각막을 여덟 방향으로 절개하여 중심 각막의 두께를 얇게 하는 방사상 각막 절개술을 비롯해, 각막을 떼어버리고 다른 사람의 생체 각막 일부를 옮겨 붙이는 표층각막 이식술, 레이저 광선을 이용해 각막 표면을 깎아내는 엑시머레이저술, 각막 절삭기를 이용한 각막 절삭술 등이다.

 방사상 각막 절개술은 수술후 시력 변화가 잦고 눈부심이 있으며, 각막 이식 수술은 각막을 구하기가 어렵고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또 엑시머레이저는 8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으나 각막에 흉터 및 퇴행성 변화가 생길 수 있고 고도 근시에 적합치 않다. 최근에 시술된 각막 절삭술은 고도 근시 교정이 가능하고 각막 혼탁이 거의 없으나 어려운 기술이라는 단점이 있다. 그러므로 근시를 수술로 교정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 또 근시라고 무조건 수술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의와 상의해 가장 적합한 교정 방법을 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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