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O 9000' 認證받아야 일류 상품
  • 김상익 경제부 차장대우 ()
  • 승인 1992.07.3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표준화기구 품질보중 규격 … 제조과정 정밀검사로 완벽한 제품 생산


 지난 4월6일 수원에 있는 삼성전관공장에 낯선 방문객이 찾아왔다. 영국에서 온 그는 3일 동안 머물면서 회사 서류를 샅샅이 뒤졌다. 작업중인 근로자에게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다.

 공장을 들러보던 그는 한 여공에게 난처한 질문을 던졌다. “작업 도중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 여공이 대답했다. “조장이 대신 들어간다.” 만족한 답변이었던 듯 그는 다음 공정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는 퍼스널 컴퓨터용 모니터를 조립할 때 이용되는 전동 드라이버 앞에서 발을 멈췄다. “죄는 힘은 어떻게 관리하느냐. 관리대장이 있느냐.” 그를 안내하던 본사 직원은 대답이 궁해졌다. 영국인의 질문 의도는 이러했다. 부품을 조립할 때 죄는 힘이 너무 세면 제품에 무리가 가며, 반대로 너무 느슨하면 뒷날 나사가 풀어질 수도 있다. 이런 사고를 방지하려면 적당한 힘으로 나사를 죄야 하는데 그런 것을 관리하고 있느냐 하는 거였다. 본사 직원은 관리를 안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영국인은 전동 드라이버를 관리하는 기계를 설치하라고 충고했다.

 

‘인증 획득’ 조건 다는 수입국 갈수록 늘어

 삼성전관은 이때 지적된 사항을 모두 보완해 지난 6월 10일 국제 품질보증 규격인 ‘ISO9001’ 認證을 획득했다(표 참조). 이 인증을 획득하느라 삼성전관은 6개월이란 긴 시간과 8천만원이란 큰 돈을 들였다. 앞서 삼성전관을 방문한 영국인은 삼성전관이 인증을 받을만한 회사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 영국의 인증기관인 BIS-QA에서 파견된 검사관이었다.

 인증기관은 물건을 사고 파는 당사자가 아닌 제3자로서 품질을 객관적으로 보증해주는 기관이다. 제3자로서 품질을 객관적으로 보증해주는 기관이다. 제3자 보증제도는 선박제조업에 가장 먼저 도입됐다. 배에 이상이 있어 운항 도중 사고가 나면 투자자 보험회사 무역상 해운업자 모두가 큰 손실을 입게 된다. 이들은 이같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믿을 만한 제3자에게 선박제조에 대한 검사를 위탁했다.

 품질의 높고 낮음을 재는 규격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공업표준협회가 부여하는 KS마크가 있다. 미국의 UL · 영국의 BS · 일본의 JIS 등도 이같은 규격이다. 만약 미국에 텔레비전을 수출하려 한다면 먼저 UL마크를 획득해야 한다. 이 마크를 얻기 위해제조업체는 까다로운 검사를 거친다. 갑자기 높은 전압을 가해도 파손되지 않는지, 제품의 결함 때문에 소비자가 피해를 입을 위험은 없는지 면밀한 검사를 통과해아 규격승인 마크가 주어진다. 이런 심사는 완제품에 대한 것이다.

 ISO 9000시리즈는 이들 품질 규격과 개념이 다르다. 가령 우리나라의 어느 가전업체가 UL마크를 얻었더라도 심사 당시의 품질이 계속 유지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벼락치기 공부로 1등을 했더라도 그 학생이 꼭 우등생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ISO 9000시리즈는 결과물이 아닌 제조시스템을 검사하는 품질규격이다. 즉 한 제조업체가 좋은 품질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능력이 있는 지 심사하는 것이다. 시험성적이 1등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1등을 할 수 있을 만큼 예습 · 복습을 열심히 하는지 헤아려 그 학생이 체계적으로 공부한다고 판단되면 우등생 상장(인증서)을 준다.

 품질시스템의 주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최초로 명문화한 곳은 미국 국방부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미군은 무기 항공기 유도탄 전함 등의 품질 때문에 애를 먹었다. 50년대 미국 전자 장비 중 60~80%는 항상 고장난 상태였다고 한다. 59년 4월 9일 미 국방부는 정형화된 품질시스템 규격(MIL-Q-9858)을 갖추었다. 이것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에 전해졌고 60년대에 영국은 이를 토대로 일반 산업용 표준인 BS-5179(뒷날 BS-5750으로 변경)를 마련했다. 80년 국제표준기구(ISO)는 국가별 품질보증 규격을 통합하여 표준화를 이루기 위해 기술위원회(TC 176)를 설치했다. 85년 유럽공동체는 ‘제조물 책임 지침서’를 발행했는데 이 지침서는 유럽공동체에서 판매되는 상품에 대해 피해보상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불량률을 낮추지 않은 기업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게된 것이다. 기업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품질보증 규격(ISO 9000시리즈)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ISO 9000시리즈아고 부르는 것은 이 규격이 9000에서부터 9004까지 있기 때문이다. 9000과 9004는 일반적 정의나 해설이라고 볼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 제품에 적용되는 것은 9001 · 9002 · 9003이다. 이 규격은 제품의 설계 개발에서부터 고객에 대한 서비스까지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유럽 18개국은 92년 말 유렵공동체(EC)통합을 앞두고 ISO 9000시리즈에 의거해 인증받지 않은 기업의 제품 (서비스 포함)을 구입하거나 유통하는 것을 제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유럽 안에서도 국가간의 이해가 엇가려 당분간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영국이나 독일 같은 나라는 별 문제가 없으나 스페인 · 포르투갈 같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나라는 이 제도가 실시될 경우 자기들의 안방인 유럽 시장에 발을 못붙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에서는 이를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힜다.

 

신뢰 높이고 비용 절감돼 투자만큼 이익

 인증제도의 강제 적용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와 관계없이 구매자들은 자발적으로 ISO 9000시리즈 획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삼성전관은 91년 1월 미국 휴렛패커드로부터 ISO 9001을 획득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90년까지만 해도 이들은 ISO9000이 무엇인지 몰랐다. 외국 바이어와 팩시밀리로 상담할 때 이같은 요구가 있긴 했으나 무심코 넘겼다. 모니터 구매자인 휴렛패커드의 공문을 받고서야 사안의 중대성을 실감했다.

 국내 최초로 ISO 9001 인증을 획득한 현대중전기는 캐나다 전력청에 변압기를 수출하는데 89년 상담 도중 인증획득을 요구받았다. 캐나다측은 인증을 획득하면 앞으로 많은 물량을 주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삐 서둘러 90년 6월 인증을 획득했다.

 현대중전기는 캐나다 인증기관인 QMI로부터 인증을 받았는데 검사관들은 페인트의 제조연월일까지 일일이 확인했다. 페인트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폐기된 것으로 돼 있지만 더러 폐기처분되지 않은 페인트도 있었다. 검사관들은 폐기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시정을 요구했다. 작업도면도 꼼꼼히 챙겼다. 작업 도중 고객의 요구에 따라 설계도면이 변경되는 일이 있는데 이때 종전의 도면을 회수하지 않으면 혼란이 올 수 있다. 검사관들은 변경되기 전의 설계도면이 작업장에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하고 주의를 주었다. 인증획득 덕분에 현대중전기는 캐나다의 변전기 시장을 독식할 수 있었다.

 지난 89년 전기케이블 품목에서 ISO 9002인증을 획득한 연합전선은 유효기간 (3년)이 지나자 자진 취소했다. 연합전선 품질관리부 임영준 차장은 “사후심사를 받는 데도 매년 5백만원 이상 들었다. 주요 수출국은 동남아와 중국인데 이들이 인증획득 조건을 달지 않기 때문에 그 효과가 나지 않아 취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품질보증시스템이 보편화되면 다시 인증을 획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증을 획득 · 유지하는 데는 돈이 많이 들지만 돌아오는 혜택도 많다. 우선 품질에 대한 신뢰를 높여 물건을 팔기가 쉬워진다. 또한 검사를 통해 기업관리의 허점을 개선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구매자로서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한국공업표준협희 인증심사과 홍종인 과장은 “ISO 9000을 획득하면 기업과 고객 모두에 이익이 돌아간다”면서도 “문제는 중소기업”이라고 지적했다. 인증을 획득할 만한 자금력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국내에 인증기관이 생기면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업진흥청은 현재 공업표준협회 · 생산기술연구소 · 6개 시험검사소 등 모두 8개 기관을 인증기관으로 만들 예정이다. 검사원도 양성하고 있다. 1기에 20명씩 3기 연수가 끝나 검사원 60여명이 배출됐다.

 우리나라에 인증기관이 없다는 것과 관련해 각 기업에서는 “정부가 도대체 뭐했느냐”하는 비난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공업진흥청 등급관리과 한 장석 계장 (금속학 박사)은 “인증제도는 민간이 주체가 되어 실시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우리 기업들이 그같은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부가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증제도는 장차 새로운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부담은 그만큼 커지게 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준다. 영국 인증기관인 DNV-QA에서 검사관으로 일하는 김영호씨는 “최고 경영자의 자세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증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많은 경영자가 증서를 따는 데만 관심이 있지 품질에 대해서는 등한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