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준비 작업 ‘실천’이 시급하다
  • 한종호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2.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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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단기 정책 급급 ···‘통일 이후’ 대비해야


 민족 아리랑보존연합회 사무국장 金練甲씨(38)는 지난 88년 평소 뜻을 같이해온 지우들과 함께 '국가상징연구회'를 만들었다. 모임의 취지는 지 금 남한과 북한이 쓰는 국호 국가 국기 등을 통일시키자는 것이다. 김씨는 작년에 남북한이 탁구와 축구 단일팀 단가 · 단기를 만들어놓고도 남북회담 때는 사용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부에 공한도 보내고 세미나도 열고 했지만 별로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김씨는 요즘 심각한 회의에 빠져 있다. 정부가 지난 7일 7 · 7선  언 4주년을 맞아 이산가족 고향 정착 둥을 북한에 제의했다고 하는데 그 '방안'이니 '제의'니 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이냐 하는 생각마저 든다는 것이다.

 김씨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뜻밖 에 많다. 북한사회를 연구하는 재야의 한 소장학자는 "80년대 후반 이후 고양된'통일운 동은 이제 새로운 질적 도약의 계기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통일방안을 놓고 지리멸렬한 양상을 보이는 재야 통일운동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다. 정부 산하기관에서 일 하는 중견 연구원도 "정부는 여전히 독일식 통일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며 통일을 위 한 중장기적 연구가 없음을 지적했다. 정 부 · 재야 할 것 없이 북한연구와 통일준비 작업이 여전히 제 갈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는 것이다. 

 80년대 후반 들어 북한연구는 상당한 외형 적 성장을 거듭했다. 우선 과거에는 청와 대 · 안기부의 전유물이 되어 정치적으로 이 용됐던 대북관계 업무가 이제는 정부 각 부 처의 업무로 분산 편입됨으로써 정책결정 과 정이 정상화됐다. 어느 부처나 남부교류계획 혹은 통일대비계획 하나쯤은 '보고용'으로 마 련해 두고 있다. 통일원은 부총리급으로 격상 되면서 다소 미흡하긴 하지만 북한관련 업무 에서 다른 부처를 선도하고 있다. 

 연구기능도 크게 강화됐다. 91년 4월에는 분단 40년 만에 처음으로 민족통일연구원 (원 장 李秉龍)이 통일원 산하 북한전문연구기 관으로 출범했다. 출범 당시 일부에서는 너무 비전문 ·소장학자 위주로 편성된 것 아니냐 하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책연 구실 諸成鎬 연구위원은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복고적 재통합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건설이다. 이를 위해 연구원의 60% 이상을 30대로 선발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국책연구기관으로는 국방부 산하 국방연구원 (원장 宋*用)과 외무부 산하 외 교안보연구원(원장 孔魯明)이 있다. 국방연 구원에는 박사급 연구원 1백30여 명 이 5개 연 구분과에서 일하고 있다. 따로 북한연구팀을 갖고 있지는 않으며 5개 연구분과에서 관련 분야 연구를 맡고 있다. 특히 군비통제연구센 터는 남북한 군축협상의 기초 이론을 제공하 고 있다. 외교안보연구원에서는 6개 연구부 서 가운데 안보통일분과에서 북한의 대내외 정 책과 핵 · 군사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민족동질화 작업 실천하는 사람 늘어 

 경제분야 연구기능도 강화됐다. 과거에는 통일원 자료분석실이 거의 유일한 연구그룹 이었으며 지금도 통일원은 모든 경로를 통해 구한 1차 자료를 종합하여 매년 북한경제현 황을 발표하는 둥 핵심적 구실을 하고 있다. 

 91년 1월 경제기획원 산하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설치된 북한경제연구센터(소장 延河淸)는 북한경제 연구의 새로운 중심이다. 원래 별도의 연구인력이나 기구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북한경제에 대한 연소장의 개인적 역량과 대북경제정책을 관장하는 경제 기획원과의 업무관계가 고려되어 연구원 13 명을 둔 별도 기구로 독립했다. 

 상공부 산하 산업연구원 (KIET)은 북방외 교가 고조되던 88년 후반부터 북한경제 연구 보고서를 내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특수지역실을 대폭 늘려 북한연구실을 마련했다. 그러나 연구의 중심이 한국개발연구원으로 옮겨 지면서 인원이 줄고 예산도 깎여 제자리 걸 음 상태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이 거시정책이 나 북한의 GNP 추계 등을 맡고 산업연구원 은 무역과 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북한의 두만강 경제특구개발이 진행되면 서 이 분야만 전담하는 연구팀도 생겼다. 유 엔개발계획 (UNDP) 주관 아래 경제기획원 대외경제 조정실장 외무부 국제경제국 심의관 ·과기처 기술협력국장으로 구성된 '국 가위원회'가 있고 그 밑에 '두만강개발 계획 연구협의회'가 있다. 법 · 제도 금융,경제적 타당성, 기술적 타당성을 조사하는 3개 연구그룹으로 나뉘어 14명의 민간 전문가가 참여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4월말 북한측 초청으로 나진 · 선봉지역 현지시찰을 다녀왔는데 경제교류 분야에서 특정사안을 두고 연구진 이 구성된 것은 처음이다.  

 확대된 외형에 비해 정부차원의 북한연구 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얻지 못하는 것 같다. 통일원에서 일하는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정부의 북한연구는 대부분 정치 ·군사 ·경 제에 치중해 있고 또 단기적 정책목표 수려 을 중시하기 때문에 장기적 통일준비를 제대 로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독일의 경우 60년 대부터 통일에 대비해왔으면서도 그처럼 큰 흔란을 겪고 있는데 우리는 '통일 이후' 대비 가 전혀 없다는 지적이다. 

 민간차원의 연구도 제자리 걸음이다. 최근 몇년간 발표된 정치분야 석 ·박사학위논은 을 보면 87년 33건, 88년 58건, 89년 75건, 90년 88건으로 늘었다가 91년 59건으로 급격히 감소한다. 이는 '북한학'에 대한 학계의 관심 추세를 잘 보여준다. 

 연구소 가운데 대표주자는 역시 북한연구 소. 이 연구소(이사장 金昌順)는 71년 11월 설립된 이래 이번 달까지 기관지 《북한》을 253호까지 발행했고 단행본 40여권과 논문 2 천4백편을 발표했다. 또 부설 북한학회 (회장 황성모)에는 국내 북한문제전문가 대부분을 망라한 3백80명의 회원이 있다. 망명한 북한 외교관 고영환씨 둥 7~8명의 '귀순용사'들 도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북한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끌면서 각 언론 사는 우후죽순처럼 북한부 혹은 통일부를 신 설했다. 문제는 북한문제 전문기자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보도자료나 <내외통신> 등 관 급기사에 의졸하지 알을 수 없다. 한 석간신문 북한부 기자는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순간 최대의 뉴스 공급원이던 정부가 최대의 걸림 돌로 등장한다"고 말했다. 북한관련 정보의 독점과 통제의 벽이 완강하고 두터워 발굴기사 쓰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완성도야 어찌됐든 북한연구가 각계 각층으로 화산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특히 장기적인 민족동질화 작업에 길요한 사 회 문화 분야의 연구 및 실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겨레말 통일 큰사전》 편찬을 준 비하고 있는 박용수씨 (59)는 그런 점에서 첫 번째로 꼽힐 만한 인물일 것이다. 중학교 때 앓은 장티푸스로 청각을 잃었음에도 15년의 재야운동가 생활을 버텨냈고 89년에는 《우리 말 갈래사전》을 펴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번에는 9만4천단어를 담는 통일사전 편찬작 업을 벌여 멀쩡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한다. 

 시인이자 칼럼니스트인 송 현씨(46)는 한 글 자판통일 작업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 다. 그는 76년 세벌식 타자기를 만든. 공병우 박사를 만나 한글기계화연구소에서 일을 맡으면서부터 자판통일에 관심 을 갖기 시작해 올해로 17년째 '자판 기계화 투쟁'을 벌이고 있다. 30년 동안 남북을 넘나드는 철새를 연구 해온 조류학자 元**교수(63 · 경 희대)는 통일한국의 조류학을 집대 성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김일 성대학 출신인 원교수는 지난 63년 서울에서 북방 찌르레기 1백35마리 의 발목에 쇠가락지를 달아 날려보 냈는데 다음 해 그의 부친이자 조류 학자인 元*九 김일성대학 교수(작 고)가 이를 발견하여 부자가 생사를 확인하기도 했다.

 민속학자인 ***씨(38)는 '북한인민생활사'를 밝히는데 전력을 쏟고 있다. 그의 관심영역은 넓고 깊어 민속놀이에서부터 의식주 등 북한 주민의 생활 전반에까지 미친다. 그           는 얼마 전 북한에서 나온 민속학 논문 3백여편을 해제한 《북한민속학사》를 발표했고 최근에는 평양시에 건설중인 아파트의 설계도면까지 들춰보며 통일한국의 뿌리찾기를 계속    하고 있다. 한강 종합개발 구상, 대전 신도시 및 엑스포 설계, 비무장지대 平和* 구상 등을 통해 '큰 그림' 설계의 대가로 유명한 곽영훈씨는 통일한국의 미래상을 설계하느라 여념    이 없다. 지난 5월 두만강 특구 예정 지역을 다녀온 그는 비무장지대 평화시를 중심으로 하여 동쪽으로는 남미 최남단, 서쪽으로는 유럽의 맨 끄트머리에까지 이르는 '국운의 날개'를 펼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앞에 있으며 통일 한국 을 21세기의 중심지로 만드는 계획에 바로 지금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에 소개한 김연갑씨는 올해 10월경 남북 한 해외학자들과 함께 국호 국기 국가 국화 등 국가상징의 통일문제를 놓고 한바탕 통일 마당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의 작업은 모두 이러저러한 '방안'이나 '계획'보다는 구체적 실천을 앞세운다는 공통 점을 갖고 있다. 핵문제 납북인사 송환문제 둥으로 어수선하고 빛 바랜 7 · 7선언 네돌에 한번쯤되새겨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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