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역사’에 대한 자아비판
  • 송준 기자 ()
  • 승인 1992.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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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얀전쟁> …처음으로 우리 시각에서 베트남전 해석

 ‘월남전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한국영화’ 세계 최초로 베트남 현지에서 찍은 월남전 영화(대개는 태국, 필리핀의 정글에서 찍는다)‘ ’한국영화 사상 가장 많은 돈을 들인 작품(20억원)‘ ’한국에서 만든 작품 중 가장 많은 필름을 사용한 영화(12만피트 : 보통 4만피트 정도의 분량을 쓴다)‘ ’영화음악을 녹음하기 위해 모스크바까지 원정(모스크바방송교향악단 연주)‘ ….

 제작 초기부터 화제를 뿌린 영화 <하얀 정쟁> (감독 鄭智泳)이 7월4일 호암아트홀(서울)에서 개봉된다. 베트남전쟁의 후유증으로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피폐해가는 참전용사의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진작부터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동안 <명자 아끼꼬 쏘냐>와 <땅 끝에 선 연인> 등 많은 돈을 들여 사할린과 북해도, 알래스카에서 찍은 영화들이 작품성과 흥행 면에서 기대에 못미치는 바람에 <하얀 전쟁>은 상대적으로 더 큰 기대를 모았다.

 “오스카 출품을 꿈꾸며 만든 영화”

 특히 우리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의 직배체제와 최근 흥행에 성공한 <원초적 본능> <연인> 같은 외국의 노골적 성애물과 맞서 경쟁 할 수 있는지를, 전무가들은 <하얀 전쟁>을 통해 가늠해보고자 기다려왔던 것이다.

 <하얀 전쟁>의 시사회가 끝난 뒤 이 영화는 평론가들로부터 재미와 작품성, 그리고 주제의 진지함 등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원작의 탄탄함, 배우들의 열정, 감독의 연출력 등이 화면에 묻어나는, 고생해서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시각으로 베트남전쟁을 해석한 첫번째 시도”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만든 전쟁영화를 거개가 ‘억지무용담’을 주거리로 한 홍보용 일색이었던 데 견주어 <하얀 전쟁>은 대본을 검토한 베트남 당국이 흔쾌히 촬영허가를 내줄 만큼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촬영에 들어간 <하얀 전쟁>은 작가 安正孝씨(52)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원작 ≪하얀 전쟁≫은 지난 85년 계간지 ≪실천문학≫에 <에필로그를 위한 전쟁>이란 제목으로 연재됐던 소설이다.

 이 작품은 ≪전쟁과 도시≫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됐으나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고 ≪하얀 배지≫라는 영문소설로 개각돼 미국 시장에 소개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여세를 타고 이 소설은 ≪하얀 전쟁≫이란 우리말 제목을 달고 고국에 ‘금의환향’한 것이다.

 안씨는 이 소설로 국내 작가로는 처음으로 미국 문단에 등단했다. 그는 곧 ≪태풍의 소리≫라는 새 영문소설을 미국에서 출간할 예정이기도 하다.

 중년 소설가 한기주(안성기 분)는 월남전 참전 경험을 소설로 엮어 한 시사월간지에 연재해 살아간다. 그는 전쟁의 후유증을 앓으며 급변하는 한국 정세에 적응하지 못해 갈등을 겪는다. 어느날 참전 당시 동료 소대원이던, 전쟁의 충격으로 반 백치가 돼버린 변진수(이경영 분)가 나타난다. 현재의 서울과 과거의 베트남을 넘나들며, 한기주의 기억을 토대로 진행되는 영화는 변진수의 기행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의 뒷부분, 격전지 나트랑의 한 전투에서 변진수는 참혹한 인간성 말상을 경험한다. 수색정찰 도중 동료 병사가 베트콩에게 죽음을 당하자 흥분한 하사 김문기(독고영재 분)는 마을 주민을 적으로 오인해 사살한다.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김하사는 변진수에게 현장의 나머지 양민을 살해할 것을 강요한다. 죽음의 위협에 굴복한 변진수는 대검으로 양민을 짓찔러 죽이고 미쳐버린다.

 다시 80년 초의 서울, 변진수는 한기주의 주변을 맴돌다 어느날 권총을 소포로 부친다. 이후 변진수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등 기행을 반본한다. 마침내 한기주는 “아직 끝나지 않은 변진수의 전쟁을 마간해주려고” 그의 가슴에 한발의 총을 쏜다.

 총성과 함께 막을 내리는 이 영화에서 鄭智泳 감독(46)은 회상 또는 이미지적 상징을 통해 6.25와 월남전, 그리고 80년대 초반의 데모를 오버랩시킨다. 그 이유에 대해 정감독은 “전쟁 자체가 군인정치의 산물이란 점에서, 그리고 박정희 정권이 월남전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나아가 3공 이후의 군사독재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담아내려는 의도에서 작업에 임했다”고 밝혔다.

 전쟁 후유증은 인간 양심의 비명

 “미흡한 대로 오스카 출품을 꿈꾸면서 만든 영화”라는 정감독의 오기는 “미국과 베트남, 두 전쟁 당사국을 제외한 제3국의 눈으로 베트남전쟁을 읽어낸 첫 작업”이라는 자부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각’이 작품의 질에 제3의 가치를 부여한다고 그는 믿고 있다.

 영화평론가 李世龍씨(46)는 “<지옥의묵시록> <디어 헌터> <플래툰> 등 미국에서 만들어진 월남전 영화들은 고급 기술로 포장된 교양물이다. 그러나 <하얀 전쟁>은 우리에게 교양물일 수가 없다. 그것은 곧 우리의 피,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제3의 가치는 바로 “우리에게 적용되고, 우리가 평가하고,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지옥의묵시록>은 월남전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한 채 어눌한 은유로 전쟁을 희화해버리고 만다. <디어 헌터>는 반전의 논리를 담고는 있지만 온통 ‘위대한 미국’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전쟁을 읽고 있다. 또 한 베트콩의 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트라이앵글>은, 게릴라 소년 호와 미군 대위 킨의 우정과 휴머니즘으로 월남전을 포장해 그 전쟁의 역사와 본질을 왜곡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미국 고급장교의 베트남 창녀 연곳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사이공>과 전쟁광 반즈 상사를 주인공으로 한 <플래툰>은 전쟁의 공포와 광기를 묘파해내는 데 성공했으나 ‘두 나라가 왜 싸워야 했는가’에 대한 고민을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의식의 공백들을 <하얀 전쟁>은 충실히 메우고 있다.

 87년 아카데미상 4개부문을 수상한 <플래툰> 등에 비해 촬영기법·연기·투입 물량·재미 등에서 뒤지는 것을 사실이지만 <하얀 전쟁>은 “파열 한국군은 고국의 경제발전을 담보한 용병” 이었음을 명쾌히 규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의식은 스스로의 ‘병든 역사’를 정직하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

 실제로 1964년 9월11일 처음 파월 한국군 1백40명이 부산항을 떠난 이래 10년 가까이 30만여명의 젊음이가 常夏의 전쟁터에 투입되었고, 이 가운데 5천명 가까운 병사들이 적지에서 목숨을 잃었다(≪시사저널≫ 제132호 37~41쪽 참조).

 더욱이 71년 이후 한때는 베트남 주둔 한국군의 숫자가 미군의 숫자보다 많았으며, 또 미군보다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더 늦게 철수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의 희생을 기초로 한국경제가 일어섰으며, 경제발전을 기초로 한국경제가 일어섰으며, 경제발전을 절실한 명분으로 꼽고 있던 부도덕한 정권이 그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소설 ≪하얀 전쟁≫ 서문에서 미국의 평론가인 칼 셴버거는 그동안 한국에서 베트남전쟁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한국은 1980년부터 1987년까지 월남에서 군대경력을 쌓은 전두환이라는 독재자의 통치를 받았으며, 全의 후임자인 장군 출신 노태우 현 대통령도 역시 파월 한국군에서 복무했다.”

 정부에 의한 소재 제한은 한국영화의 질곡

 영화평론가 金弘淑씨(35)는 “<하얀 전쟁>이 월남전 파병의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박정희 쿠데타와 관련한 정치적 측면도 그렸더라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또 “어쨌든 월남전을 조명하는 작업은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며, <하얀 전쟁>은 영화사적으로 그 첫 발자국에 해당된다”고 부연했다.

 이에 대해 정감독은 “정부에 의한 소재 제한을 고려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부활의 노래>가 꽃피지 못한 것을 예로 들면서 “소재 제한은 <하얀 전재>의 한계이자 동시에 한국영화의 질곡”이라고 밝혔다.

 아무튼 월남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혹은 민감한 정치적 소재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하는 문제들은 결국 역량있는 감독들이 앞으로 계속 다뤄가야 할 숙제이겠지만, 일단 <하얀 전쟁>은 평론가들 사이에서 합격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안정효씨는 “영화 <하얀 전쟁>은 소설에서 출발했지만 전혀 다른 향기를 지닌 별개의 예술작품이 되었다. 독자에 따라 소설이 그 읽히는 바가 다르듯이 관객에 따라 영화도 그 읽히는 바가 다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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