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결산 이제는 실천할 때
  • 김 당 기자 ()
  • 승인 1992.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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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외교시대, 국가이기주의 극복해야



 “세계 정상들이 여기 모여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지구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회담 앞에 줄곧 ‘기념비적’ 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니는 리우데자네이루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 폐막식 연설에서 유엔환경개발회의 사무총장 모리스 스트롱씨가 한 말이다. 스트롱씨의 말대로 환경이라는 단일의제를 가지고 지구상 국가의 4분의 3이 참가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리우회담은 금세기 최대의 행사인 셈이다. 또 각국 정상들은 21세기 지구환경 보호를 위한 ‘리우선언’ 과 그 실천강령인 ‘의제 21’을 채택하고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기후변화협약‘ 과 ’생물다양성 보전협약‘ 에 서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회담을 앞두고 우려했던 ‘돈과 기술’의 지원과 이전을 둘러싼 남북 대결의 골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층 더 깊어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돈문제, 즉 누구의 호주머니에서 얼마를 빼내어 누가 어떻게 쓸 것인가를 두고 세계 정상들은 추악한 국가이기주의의 단면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 대표적인 보기는 ‘지탱가능한 개발’을 위한 지원금 규모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번 회담은 지난 70년대 개도국들이 주장했던 신국제경제질서(NIEO) 창출을 위한 주도권 싸움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70년대 다 함께 잘 살자는 주장이 선진국의 비협조로 아무런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로 자신들의 경제상태가 더 악화되고 오히려 남북간 격차의 골이 패인만큼 이번 운세드에서만큼은 지구환경을 담보로 실리적인 선진국의 양보를 받아내고 개도국도 힘을 갖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수립하려는 것이 ‘못사는 나라’들의 결연한 의지였다.

 이번 회담에서 개도국에 대한 추가 지원금은 약속했지만 생물다양성협약 서명은 거부한 미국 부시 대통령이 환경 공적 1호로 지목된 반면에 서방 선진국의 환경제국주의를 맹비난한 쿠바의 카스트로가 열렬한 박수를 받은 것도 그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리우의 테이블은 미국에게 처음부터 불편한 자리였다. 미국의 심정은 어쩌면 ‘돈 주고 욕 먹는 격’일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욕을 얻어 먹으면서도 새로운 환경기금(그린펀드) 창설을 막는 대신에 세계은행이 관리하는 기존의 지구환경기금(GEF)에 돈을 더 내는 쪽을 고집했다.

 외양의 화려함에 견주어 실제적 구속력을 갖춘 성과는 미흡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리우회담을 계기로 지난 20년 동안의 논쟁을 끝내고 이제 비로소 실천의 단계로 들어섰다. 그러나 협정의 체결은 단지 문제의 시작일 뿐이다. 더 중요한 과제는 조약이 발효된 뒤 서명국들이 약속을 성실히 지키는 것과 그 약속이행을 감독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헤이그선언과 스톡홀름 제안은 지구환경시대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를 시사해 준다. 89년 봄 17개국 정상들이 서명한 헤이그선언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유엔의 개혁을 포함한 혁명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거부권을 가진 미국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선언의 효력은 불투명하지만 프랑스 덴마크 노르웨이 등 주요 추진국들과 브라질 인도 구 서독 일본 등 서명국들은 지구환경 문제에 관한 한 주권의 행사는 “공동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고 결의한 바 있다.

 또 지난해 독일의 빌리 브란트, 체코의 바츨라프 하벨, 구 소련의 셰바르드나제 등 전현직 정치지도자들이 95년에 유엔을 개혁하자는 스톡홀름 제안도 이번 리우회담을 계기로 의욕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 창설 50주년인 95년에 ‘지구관리에 관한 세계정상회의’를 개최할 것을 요청한 이 제안은 이 정상회의에서 45년 이해 변화된 세계의 우선순위와 조건을 고려하여 유엔의 조직과 운영절차를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그 우선순위의 제1은 지구환경임은 물론이고 이를테면 조직이 재검토될 안전보장이사회에는 통합된 유럽공동체와 일본 그리고 인도 등이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리우회담에서 앞서의 두 국제협약에 서명하는 한편으로 동북아환경협력기구 설치와 남북한의 비무장지대 생태계 공동조사를 제안하는 외교적 공세를 펴기도 했다. 그러나 두 제안은 새로운 것도 아니고 실질적으로는 중국과 북한 두 나라를 겨냥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리우에서 새삼스레 제안하고 나선 것은 앞으로 드세질 환경외교의 주도권 싸움에서 발언권을 강화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화려한 말의 성찬 속에 담긴 국가이기주의에도 불구하고 리우회담을 계기로 이제 지구적인 규모의 사고의 틀은 어느 정도 얼개가 짜인 셈이다. 사상 최대의 회의장에 모였던 정상들이 이제는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실제 행동으로 옮길 때이다. 일찍이 프리츠 슈마허가 그의 탁월한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가르친 대로 “전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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