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회담’ 新질서 향해 첫발
  • 파리·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1.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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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UR협상 주도 등에 유럽세 도전… 정상회담·국제회의로 이어질 듯

 세계 인구의 9분의1로 세계 총생산량의 반 이상을 생산하는 세계 경제 최강대국 정상들의 모임인 서방선진공업국 정상들의 금년도 회담은 새로운 국제질서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15일부터 17일까지 런던에서 열린 이번 회담은 고르바초프 소련연방대통령이 참석했다는 사실 외에도 냉전시대와는 토의의 주제가 다르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는 굵직한 정치적 이슈가 등장했다. 첫째로 유고슬라비아의 소수민족 분리독립 분규와 소련 원조문제가 중요한 협의대상이 되었다. 원래 정치와 경제는 엉켜 있는 것이므로 경제 정상회담이라 해서 정치문제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고 선을 그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종전에는 국제 경제의 주요과제에 관심을 국한시켜왔었다. 둘째는 미국과 여타 참가국들간의 역학관계의 변화이다. 유럽이 통합을 함으로써 거대한 경제력으로 부상함에 따라 미국·일본과 함께 상대적으로 눞은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소련 원조문제 주요 협의대상
 특히 경제문제에 관한 의견대립은 탈냉전시대에는 예전보다 수습하기 힘들게 되리라고 학자들은 예고해왔다. 냉전시대에는 안보문제를 위한 서방의 대동단결이 경제문제로 인한 이해타산 때문에 금갈 수 없다는 의식이 지배적이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런던 G7회담은 소련 문제, 유고슬로비아사태 등 어려운 문제들의 도전을 받고 있으며, 안으로는 미국의 주도권에 대한 유럽의 도전 기세가 엿보이는 가운데 열렸다. 그렇다면, 본래의 기능인 중요 경제과제의 처리를 제대로 해내리라는 기대를 가지기는 힘든 것이 아닌가.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근호도 이런 비관적인 관측을 반영하여 런던회담이 새 질서는커녕 ‘새로운 무질서’를 창출하게 될까 두렵다는 식의 제목을 전망기사에 달았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반영하듯이 몇몇 G7지도자들은 회담을 앞두고 사전 조정을 위한 개별접촉들을 가졌다. 콜 독일총리의 키예프 방문 외에, 가이후 도시키 일본총리는 메인주의 별장으로 부시 대통령을 찾아가 요담했으며, 부시는 런던에 가는 길에 13일 파리에서 미테랑과 회담을 했다.

 EC의 정치통합은 성질상 G7정상회담 의제에 올라 있지는 않지만, 요즘 미국과 유럽 사이, 특히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큰마찰을 빚고 있으며, 부시·미테랑 회담의 주요 안건도 이것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체제의 유지를 강조하는 입장인데 반하여, 프랑스는 나토와 별도로 유럽 자체 방위 ‘기둥’을 창성하자고 주장해왔으며, 이것이 유럽공동체(EC)의 정치 통합과 안보체제 통합 구상과 맞물려 있다.

미국 UR협상 재개 강력히 촉구
 유럽통합을 에워싼 미·프랑스간의 이러한 심각한 의견차이는 런던회담에서 표면화 되지는 않을 것이며, 최대 현안처럼 되어 있는 소련원조는 앞서 EC 정상회담(6월말)에서 잡힌 테두리를 근거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EC의 테두리란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등을 통한 소련지원을 추진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재정부담을 되도록 피하자는 뜻이며, 유럽 각국간의 입장차이가 표면화되는 것을 막는 방도이기도하다.

 미국과 유럽 사이에 크게 갈라져 있는 중요한 경제과제는 우루과이라운드(UR) 무역협상을 막고 있는 유럽의 농업보호 정책 문제이다. 세계무역의 틀을 새고 짜기 위해 86년에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작년 12월에 결렬되어 아직도 실질적인 협의를 재개 못하고 있는 것은 유럽의 농산물 보호라는 벽 때문이다.

 협상 재개를 위해 유럽정부의 정치적 결단을 요청하는 미국의 태도는 매우 강경하다. 미국은 유럽이 농산물시장을 개방함으로써 그간 소련시장에 의존하다가 수출의 길이 막혀 고전하고 있는 동유럽 제국에게 큰 도움을 줘야 한다고 믿고 있다. 미국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성공할 경우 저조한 미국의 국민총생산(GNP) 수준이 3%는 높아질 것이라는 추산을 하고 있어 자국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지난 6월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각료이사회도 협상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한 각국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어 우루과이라운드의 성공을 중시하는 견해는 일반론처럼 되어 있다. 우루과이라운드가 성공할 경우, 지역적인 블록경제로 흐르려는 경향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며, 동유럽뿐 아니라 제3세계 여러나라의 경제발전에도 기여하리라는 것이다.

 그밖의 경제과제로는 금리인하 문제와 달러 강세의 문제 등이 있다. 미국은 유럽, 특히 독일이 금리를 내려주기를 바라고 있으나 통독 경비부담에 시달리고 있는 독일이 응하려 하지 않고 있다. 또 환경문제, 제3세계 경제발전에 대한 지원문제 등 선진국들의 전진적인 결단이 요구되는 과제는 많다.

3극체제의 의견대립 반영
 앞서 걸프전쟁은 미국이 정치·군사면에서 막강한 존재임을 유감없이 전세계에 표시했다. 부시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제창 했으며, 어느 미국의 논객은 “탈냉전시대에서의 미국 1극론”을 펴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군사력을 기준을 한 초강대국의 의미가 줄어가는 시대에서 미국의 주도권이 어느 정도 위력을 유지할 것인가. 대소 원조에 있어서 미국이 대규모 자금 투입을 고려하려해도 그럴 재력이 없다고 부시 스스로 실토했다고 보도되고 있다. 이미 G7 중에서도 ‘돈있는 나라’란 일본과 독일이 꼽히게 되어 있는 실정이다.

 3극체제로 가는 과정에서 의견대립으로 삐걱대는 현상이 런던 정상회담에 반영된 것인지 모르지만, 요는 장기적으로 볼때 적절한 경쟁과 협조관계가 유지될 것이냐, 경제문제로 인한 분쟁이 되풀이되고 악화되어 정치적 대립으로 번질 것이냐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런던회담이 단숨에 세계질서를 창출하지는 못할지언정, 새로운 틀의 시발점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너무나 성급한 것이 되고 말지도 모른다.

 ‘새 세계질서 구축’이라는 작업은 이제 2막이 올라갔을 뿐이다. G7 정상회담의 과제들은 명년 G7회담을 기다릴 것 없이 또 다른 정상회담으로, 또다른 국제회의로 연결되어나갈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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