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예스터데이 비틀즈 ‘미국 정복’ 30주년 영화 <백비트> 계기로 재조명
  • 임진모 (팝 칼럼니스트) ()
  • 승인 1994.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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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적 록그룹’ 비틀즈의 전설이 되살아나고 있다. 올해 들어 비틀즈와 관련된 소식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그들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연초에 이미 한 차례 재결합설이 나돌아 구미 팝계를 흥분시킨 바 있고, 최근에는 그들의 초창기를 다른 영화 <백비트>가 공개되면서 그 관심은 팝 분야를 넘어 일반인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올해는 특히 그 ‘영국산 더벅머리 소년들’이 미국을 정복한 지 30년이 되는 해여서 한층 화제가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해산된 지 거의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추억의 인물로 묻히기를 거부하며 계속 ‘살아있는 전설’로 꿈틀거리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비틀즈의 미국 정복 30주년을 맞아 팝 관계자들은 다시 한번 비틀즈의 영구성에 대한 원인 분석을 비롯, 다각도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언 소프틀리 감독의 화제작 <백비트>는 그 연구 결과 중의 하나이다. 이 영화는 비틀즈라는 그룹을 정면으로 해부한 작품은 아니면서도, 비틀즈와 관련된 진실을 암시하는 상징으로 가득해 그들을 간접적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룹의 일원으로 함께 활동하다가 비틀즈가 명성을 얻기 전 사망한 스튜 서트클리프라는 인물과 그의 애인 아스트리드의 사랑 이야기가 기둥 줄거리이긴 하지만, 그와 함께 비틀즈의 두 축인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대조적인 개성, 레논의 호모 기질, 음악에 대한 매카트니의 집착 등 무수한 사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이 영화의 압권은 로큰롤에 대한 비틀즈의 약동성이라 할 수 있다. 팝 역사에서 비틀즈의 가치는 50년대 초기 로큰롤을 완벽하게 소화해 그 흥취를 60년대에 재현했다는 데 있다. 64년 <뉴욕 타임스>는 광적인 ‘비틀매니아’를 분석하면서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 ‘그들의 음악(로큰롤)과 연주행위에서 드러나는 성적 매력’을 꼽았다.

 비틀즈는 그러한 로큰롤의 폭발성을 통해 기성 가치에 대한 젊음의 반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케네디 암살로 침울한 분위기에 빠져 있던 기성세대를 그 분위기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또한 그들이 영국의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는 점도 비틀즈를 청춘의 우상으로 떠오르게 한 하나의 조건으로 작용했다. 그들은 50년대의 엘비스 프레슬리에 이어 자본주의 체제의 빈민층 자손들에게 신분 상승이라는 꿈과 희망을 제공했다. <백비트>는 이 부분까지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그들은 소녀들의 그룹으로부터 곧바로 모든 세대의 그룹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점이 바로 비틀즈의 남다른 위력이었으며,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다름 아닌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콤비의 천재성이었다. 두 사람은 <미셸(Michelle)><어제(Yesterday)><스트로베리 필즈여 영원히(Strawberry fields forever)><삶의 하루(A day in the life)><렛 잇 비(Let it be)> 등 록이라는 범주로 한정하기에는 너무나 수준이 높은 뛰어난 선율의 노래들을 써냈다. 67년 그들의 최고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서전트 페퍼즈 론리 하츠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이 나오자 명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거기 수록된 곡을 슈만의 작품에 견주기도 했던 것이다.

 비틀즈는 그로써 록 음악에도 분명 교양이 있음을 알렸다. 록과 대중 음악은 비틀즈를 통해 고전 음악 진영의 유서 깊은 멸시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은 예술로 승화하는 록의 혁명적 전환이었다. 록 음악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은 채 그 안에서 얼핏 기대하기 어려운 듯 보였던 예술적 지평을 찾아낸 것이야말로 기념비적인 업적이었다.

천재성과 땀의 완벽한 결합
 그러나 비틀즈는 예술성에 집착함으로써 잃은 것도 많았다. 격동의 시대를 산 그룹치고는 록이 갖는 사회성에 소홀해 정치 · 사회적 성향의 노래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다. “비틀즈는 60년대의 대변자였다”는 폴 매카트니의 자부심을 무색케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회성 결여’라는 약점은 비틀즈 말기, 제도에 치열하게 저항했던 존 레논에 의해 보완되었다. 비틀즈에서 존 레논의 비중이 너무도 컸다는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악성’이라는 극찬까지 등장한 것을 보면 그들은 음악의 천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천재라는 인식은 한편으로 그들을 온전하게 파악하는 데 장애가 된다. 그밖의 부분을 주의 깊게 관찰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영화 <백비트>는 이와 관련해 비틀즈가 천재만이 아니라 ‘노력형’이었음을 강하게 부각한다. 실제로 비틀즈가 세계 최강으로 떠오르기 전 리버풀과 독일 함부르크를 오가며 갖은 고생을 한 인간 승리의 전형이라는 사실은 자주 무시되어 왔다. 그들은 60~62년 함부르크 시절 스크린 뒤의 허름한 방 한칸에서 집단 기숙했으며, 하루 8시간씩 연주를 하는 피나는 고행을 거듭했다.

 무명 시절이 비틀즈만큼 길었던 그룹도 드물다. 그시대 대부분의 그룹들이 ‘영국의 미국 침공’이라는 호재에 편승해 졸속으로 결성되었지만, 비틀즈는 최소한 5년을 밑바닥에서 기었다. 이와 함께 그들은 뮤지션이기 이전에 광적인 로큰롤 팬이었다. 그들은 로큰롤에 헌신했고 로큰롤과 관련된 모든 장르의 음악을 흡수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들은 세계 정복이라는 대야망을 품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몸을 바쳤으며, 또한 ‘우리는 반드시 최고가 될 것이다’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들에게는 이상 · 정열 · 신념이라는 성공의 세 요소가 구비되어 있었고, 그것을 통해 아래로부터 위로 치솟아오를 수 있었다. 비틀즈가 지금까지도 숱한 음악인들에게 하나의 귀감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백비트> 제작팀이 은연중에 알려주는 비틀즈의 진정한 면모는 바로 이 점이다.

 비틀즈는 ‘천재와 땀’이 화학적으로 결합된 그룹이다. 천재성만을 내세운 그룹은 결코 아니다. 비틀즈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고 있는 시점에서 영화 <백비트>는 중요한 진실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任珍模 (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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