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4륜차 ‘의붓자식’인가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2.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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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험 ‘대접’ 못받고 “사고뭉치” 편견 여전…사고율 자동차 5분의 1


 한국에 오토바이는 몇 대나 있을까. 오토바이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도 국내 오토바이의 수가 2백만대를 넘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전국 시?도에 등록된 오토바이 수는 1백60만대에 이른다. 등록이 필요없는 배기량 50cc 이하의 소형 오토바이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늘어난다. 업자들은 한국의 오토바이 수를 2백10만대로 추정한다. 1962년 기아산업이 관련부품을 일본에서 들여와 배기량 50cc짜리 오토바이

C100을 처음 조립생산한지 30년 만에 이같이 크게 성장했지만, 오토바이는 “사고가 나기 쉽다”“교통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등 갖가지 구설수에 오르며 여전히 4륜자동차의 의붓자식 취급을 당하고 있다. 오토바이에 쏟아지는 비난은 과연 합당한 것인가.

 “권총으로 사람을 쐈을 경우 눈길이 권총에 가는 것처럼 오토바이가 사회문제화되면 오토바이만을 문제삼는 경우가 많다.” 79년 오토바이를 이용해 대기업을 상대로 배달용 역업을 시작한 주식회사 코델의 대표이사 金溫陽씨(41)의 말이다. 오토바이가 강도?성폭행 등 각종 범죄에 이용되면서 무조건 오토바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세간의 편견을 탓하는 목소리이다. 김씨는 “오토바이가 긍정적인 면에서 활용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주장한다. 현대 30여대의 오토바이를 운행해 오토바이 운송 서비스업의 선두에 선 김씨는 “비록 배달용역업에 불과하지만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자부한다.

 소규모 점포들이 밀집한 상가를 둘러보면 오토바이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지난 5월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나동 2층의 탁송용역 사무실. 세운상가에 입주한 점포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이 사무실은 각 점포에서 밀려드는 주문으로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거의 통로에 나와 있을 정도로 비좁은 사무실로 한 점포 주인이 들어선다. “이씨 지금 뭣하고 있는 거야. 제주도에서 빨리 보내라고 야단이 났어. 꾸물거리지 말고 공항으로 가봐.” 오락용 전자회로기판을 제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배달해달라는 주문이다.

 

4륜차 공백 메우는 신속배달부

 이씨가 헬멧을 챙기는 사이 사무실의 전화기 4대가 번갈아 울리고 그에 맞춰 대기하던 다른 배달원들도 부지런히 움직인다. 이 건물에 입주한 점보의 물품 90%는 이 사무실을 통해 나가고 들어온다. 화물차로 운반하기에는 정당하지 않은 물품수송의 구멍을 오토바이가 메우고 있는 현장이다.

 극심한 교통체증 속에서 오토바이 만큼 신속하게 배달할 수 있는 운송수단은 없다. 한때 인쇄시설이 마땅하지 않아 서울에서 가까운 조간신문사의 인쇄시설을 이용했던 ㄷ일보사의 오토바이 사용은 대표적인 경우이다. ㄷ일보는 필름판의 수송에 일반차량으로 30분 걸리는 거리를 오토바이를 이용해 7분으로 단축시켰다. 지금은 전국 동시인쇄로 체제를 바꿨기 때문에 걱정이 사라졌지만 자칫하면 신속을 생명으로 하는 신문발행에 차질을 빚을 뻔한 일을 오토바이로 해결한 것이다. 오토바이는 탁월한 기동성은 물론 도로에서의 혼잡을 피할 수 있고, 주차와 운전조작이 간편하다는 면에서 ‘근거리 운송수단’으로는 4륜자동차보다 우위에 선다.

 국내에서 운행되는 대부분의 오토바이는 영세상인들이 상용한다. 서울 을지로 3가에서 페인트 상점을 하는 李允珠씨(42)는 “물건을 배달하는 데 오토바이를 따라갈 만한 것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지난해 8월 을지로 3가에 볼 일이 있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아직도 한쪽 다리를 저는 이씨는 125cc짜리 오토바이를 팔지 않고 있다. 화물차를 살 만큼 사업규모도 크지 않고 돈도 넉넉하지 않은 이씨에게 오토바이는 가장 믿음직한 생계수단이기 때문이다.

 

“오토바이의 고속도로 진입 규제는 위법”

 이씨는 지난 88년 오토바이를 처음 구입했다. 페인트 가게를 하면서 화물차에 싣기는 부피가 적은 물건을 실어나르기 위해서였다. 처음 산 배기량 80cc짜리 오토바이는 기동력이 떨어지고 배달용으로 맞지 않아 현재의 오토바이로 바꿨다. 이씨는 그동안 오토바이로 4륜자동차가 드나들 수 없는 비좁은 골목길, 경사가 높은 언덕 등 온갖 곳으로 배달을 다니며 가게를 운영해왔다. 오토바이로 생계를 잇는 사람은 물론 이씨뿐만이 아니다. 오토바이 제조업체 대림자동차에서 판매기획을 맡고 있는 梁完模씨는“오토바이로 출퇴근하는 사람은 1백명 중 1명 정도에 불과할 뿐 상용으로 오토바이를 사용하는 경우가 전체의 80% 이상이다.”라고 밝힌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오토바이를 보는 눈길은 곱지 않다. 끼어들기?난폭운전?과속?운전방해 등 나쁜 짓은 오토바이 혼자 도맡아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반듯한 자가용 승용차를 모는 운전자들의 눈엔 겉보기에 볼품없는 오토바이가 ‘사고뭉치’에 불과하다. 이와 반대로 대다수 오토바이 사용자들에게 오토바이와 4륜자동차는 말 그대로 ‘다윗과 골리앗’이다. “어쩌다가 대형트럭이 지나가면 핸들이 흔들리고 마치 트럭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대형차량을 겁내는 한 오토바이 운전자의 두려움 섞인 말이다. 그러나 “오토바이는 사고 위험이 높다”는 일반의 인식은 하나의 편견일 뿐이다. 89년 치안본부(현재 경찰청)의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4륜차의 사고율은 8.76%(23만3천여건)인 반면 2륜차는 1.72%(2만3천여건)에 불과하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오토바이도 ‘자동차’로서의 정당한 법적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가장 불만스럽게 여기는 것은 같은 자동차인데도 4륜자동차와는 달리 도로 안팎에서 갖가지 차별대우를 받는 것이다. 현재 오토바이는 시?도 고시령에 의해 고속도로 진입이 금지돼 있고 일반도로에서도 1차선으로 들어갈 수 없다. 한 오토바이 애호가는 도로교통법에도 명시돼 있지 않은 오토바이를 고속도로 진입금지 조항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보기 힘든 위법규정“이라고 주장한다. 오토바이 경주 선수 생활을 마감한 뒤 서울 용산상가 건너편에서 오토바이 대리점을 경영하는 金仁浩씨(42?용산오토바이상사)도 ”빠른 차 우선의 원칙에 따라 배기량 250cc 이상의 오토바이는 당연히 고속도로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엄연한 자동차인데도 안전문제를 무시한 채 무조건 단속 위주의 정책만을 펴는 당국의 무성의는 더욱 문제이다. 오토바이의 경우 안전교육 교육기관으로는 대림자동차 부설 안전운전교습소가 유일하다. 안전운전교습소 崔誼成 소장(39)은 “해마다 5천여명의 오토바이 운전자들을 교육하지만 해마다 30만명씩 늘어나는 오토바이 운전자들을 전부 교육하려면 어림도 없다”고 주장한다. 사고방지를 위해 주야간에 라이트를 켜도록 허용하는 것도 시급한 문제로 지적된다. 오토바이 사고는 운전자의 부주의 탓도 있지만, 다른 4륜자동차가 오토바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발생하는 사례가 많다. 용산오토바이상사 김인호씨는 “미국에서는 주간 라이트 사용을 의무화해 사고율이 훨씬 줄었다”면서 “낮에도 라이트를 밝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토바이 사용자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손해보험 가입이 어렵다는 점이다. 보험회사들이 사고가 잦다는 이유로 운전자의 보험가입을 꺼리기 때문이다. 안전운전교습소 최소장은 “손해보험의 목적은 사고가 났을 때 물질적 피해를 최소화하고 사회안정에 기여하자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보험관계자들이 오토바이 손해보험의 도입에 좀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토바이. 과연 자동차의 의붓자식에 머물러야 되나. 오토바이 2백만대 시대를 맞아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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