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 등살에 學父母는 괴롭다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0.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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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부 부분허용조치 이후 ‘변태·불법’ 극성…가수요 현상까지 일어

지방대학 사학과 교수인 崔모(41)씨는 지난 겨울방학, 서울집에 올라와 있는 동안 과외문제로 톡톡히 곤욕을 치렀다. 무리해서라도 올해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딸아이를 개인과외시켜야 한다는 부인의 성화와 은근히 과외를 하고 싶어하는 딸아이 사이에서 ‘과외불가론’의 원칙을 고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딸아이는 반 아이들이 절반이 넘게 과외를 받는다는 걸 내세우고 부인은 “남들이 다 하는데 안하면 결국 불리한 거 아니냐, 누구는 반에서 5등 하다가 10위권 밖으로 쑥 밀려났다더라”는 근거까지 들이대는 것이었다. 결국 崔교수는 딸아이를 설득해 1만6천5백원짜리 학원 단과반 英·數 과목을 듣게 하는 것으로 일을 매듭지었지만, 과외 열풍이 또다시 우리사회를 휩쓸게 된 것에 못내 입맛이 쓰다고 했다. 문교부가 제한적이나마 대학생 과외를 점년허용한 것이 결국은 ‘과외 가수요’까지 부채질해서 봇물을 터놓는 꼴이 된 게 아니냐는 것이 崔교수의 불만이다.

문교부가 ‘중앙교육심의회’에서 건의한 ‘재학생의 방학중 과외허용 방안’을 보다 확대해 ‘대학생 과외 전면허용과 재학생의 방학중 학원수강 허용’이라는 ‘획기적인’ 조치를 발표한 것은 지난해 2월3일, 과외 전면금지가 내려진 80년 7·30조치 이후 8년반만의 일이었다. 발표 당시 과거의 망국적 극성과외의 재현을 염려하는 원칙적 반대론도 상당히 거셌지만 ‘기왕에 막을 수 없는 과외라면 음성적으로 놔두지 말고 차라리 부분적으로 양성화해서 어려운 대학생들의 학비조달을 돕자’는게 문교부가 내세웠던 명분이다.


“전문 과외꾼들만 덕봤다”

이 조치가 결국은 모든 과외를 양성화하는 결과를 낳을 게 아니냐는 교육전문가들과 학부모의 염려에 대해 당시 문교부는 자신만만한 대안을 내놓았다. 즉 ‘대학생 과외와 재학생의 방학중 학원수강을 제외한 모든 불법과외는 철저히 막고 정규수업이 진행되는 기간에는 허용치 않음으로써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과외가 만연하지 않도록 학력간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등 근본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장담도 있었다.

그로부터 만 1년이 지난 지금, 목표로 했던 ‘대학생 학비조달’이라는 명분과 변칙·불법과외의 철저단속이라는 약속은 얼마만큼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

먼저, 과외지도 대학생 가운데 가장 ‘인기 있다’는 서울대생의 경우, 과외를 원하는 대학생과 학부모를 연결시켜주는 서울대 학사종합안내실에 지난해 7월부터 올 2월까지 과외를 원한다고 접수한 학생은 모두 2천여명, 반면 학부모의 신청은 1천2백건에 불과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나마 ‘서울대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불균형에서 그치는 편이다. 과외시장에서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학교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일부학교에 한정되어 있는 실정이어서, 또다른 ㅅ대의 담당자는 새학기가 되자 “아르바이트를 신청하는 학생들은 줄을 잇는데 문의전화는 하루 2~3통밖에 걸려오지 않아 걱정”이라고 털어놓는다.

물론 대학생 과외는 학교의 공식 창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친척이나 친구, 이웃의 소개 등 ‘알음알음’으로 연결되는 겨우, 과외단가가 30~40만원(학교 소개의 경우는 주2회에 20만원, 주3회에 25만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발이 넓거나’ ‘노련한 과외꾼’으로 소문난 대학생들은 겹치기 고액과외로 한달 1백여만원이 넘는 수입을 올리기도 하지만 그 수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과외를 무척 많이들 한다는데 실제 학부모들의 신청은 적은 걸 보면 다른 불법·변태과외가 꽤 성행하는 것 같아요. 대학생 위한다는 명분으로 과외를 풀었는데 실제로는 불법·변태과외만 양성화시켜준 꼴이 되고만 셈입니다.” 대학생 과외허용으로 덕을 본 사람들은 ‘전문적인 과외꾼’들 뿐인 것 같다는 서울대 학사종합실 담당자 徐庭明씨의 말이다.

실제로 과외에 극성인 중산층 이상의 학부모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층은 ‘실력만 있는’ 대학생이 아닌 ‘가르치는 데 도사’인 전·현직 학원강사나 전직 교사들, 즉 ‘전문적인 과외선생’들이다. 수년간의 입시문제 분석으로 입시경향을 환히 꿰뚫고 있는 데다 핵심을 가르치는 요령도 뛰어나기 때문에 단가가 비싸더라도 ‘전문선생’을 찾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과외가 금지되기전에도 ‘비밀과외’로 주가를 올렸지만, 대학생 과외가 허용되면서부터 단속의 강도가 자연 느슨해지고 부담감도 적어지자 ‘물 만난 고기’가 된 것이다. 지난해 서울 ㅈ여고 2학년 담임을 맡았던 吳모(36)교사는, 지난 겨울에 반 학생 65명중 절반이 과외를 받았고 그 대부분이 ‘전문적인 과외선생’으로부터 과외를 받았다고 대답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주 2회에 1백50만원짜리 과외도

이런 과외선생들의 과외단가는 보통 1과목당 주 2회(한번에 90분)에 70만~80만원. 과외 전면금지 때 ‘생명수당’(위험수당)으로 올라버린 과외비가 그대로 굳어진 채 통용되는 것으로, 심지어 ‘과외비가 세다’는 서울 여의도지역에선 월 1백50만원까지 홋가하는 경우도 있다. 웬만한 봉급쟁이의 몇 달치 월급이 고스란히 아이의 과외비로 들어가는 셈이다. 종합반으로 유명한 ㅇ학원 국어강사인 金모(48)씨는 “인기가 좋은 英·數강사는 한달에 4백~5백만원을 거뜬히 번다”고 말한다.

지난해 6월 개정된 ‘학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런 불법과외 교습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과외 전면금지’로 단속이 심했던 시절에도 실제 불법과외로 처벌받았던 예가 드물었던 터에 하물며 이렇게 ‘부분해제’가 된 마당에 법규정이 두려워 수백만원의 수입을 거부할 리 있겠느냐는 것이 金씨의 반문이다.

한편 과외해제 조치 이후, 대학생 과외나 전문선생 과외를 시킬 형편이 못되는 서민층 학부모를 겨냥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것이 ‘변태 과외학원’들. 주로 대규모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나 주택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런 학원은 서울 강남지역에만도 4천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개는 인허가 규정이 까다롭지 않은 주산학원, 웅변학원, 속셈학원, 외국어학원 등으로 구청에 등록해놓고 안에서는 중·고교생 과외를 하는 것이다. 대개 서너명의 대학출신 강사를 채용한 이들 학원에서는 10명 안팎의 학생들을 그룹으로 모아놓고 國·英·數를 가르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과목당 과외비는 대개 4만~8만원선.

문교부에서는 이런 탈법·불법학원이 급증하자 지난해 9월과 올해 1월18일 두차례에 걸쳐 경찰, 시교위와 함께 집중단속을 벌였지만 그 반향은 엉뚱하게 나타났다. 당국의 단속으로 학원들이 잠정적으로 ‘방학’에 들어가게 되자 “고액 개인과외는 다 놔두고 만만한 서민층 자녀들이 다니는 학원만 단속하면 다냐”는 등 흥분한 학부모들의 항의전화가 쇄도하는 통에 아예 문교부의 정상업무가 한동안 마비될 지경이었던 것. 문교부의 한 관계자는 “고액과외는 당사자끼리만 아는 일이라 파악할 길이 없고, 변태 학원과외는 가뜩이나 일손이 달리는 교육구청 직원만으로는 효율적인 단속이 어렵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생활비 70만에 과외비가 24만원

결국 과외 전면양성화나 다름없는 상황이 벌어진 탓에 정작 등골이 휘는 것은 학부모들이다. 애당초 과외단속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에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몇백만원도 아깝지 않다며 ‘비밀과외’를 했던 일부 극성학부모, 일부 부유층이야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과외를 그렇게 극성스럽게 시킬 의사가 없었던 학부모들마저 남들이 다하니 은근히 ‘불안’해져서 과외에 나서는 ‘가수요’ 현상이 빚어지고, 생활에 별로 여유가 없는 가정에서도 빚을 내서라도 과외를 시켜야 하는 과외비 부담을 새로이 떠안게 된 것이다.

주부 兪善熙씨(40·서울 강동구 명일동 우성아파트)는 과외비 부담 때문에 지난 한해 동안 가계에 심한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회사원인 남편이 가져다주는 봉급 1백만원 가운데 저축을 뺀 실제생활비는 70만원. 그런데 고 1짜리 큰아들의 속셈 과외학원 두과목 과외비  16만원, 중 3짜리 작은아들의 과외비로 8만원 해서 모두 24만원이 지출된다. 아이들에게 소소히 들어가는 잡비까지 합하면 30만원정도로 생활비의 거의 절반을 교육비가 차지하고 만 것이다. 물론 兪씨처럼 졸라맬 허리띠도 없는 서민층들에겐 과외란 위화감의 또다른 상징일 뿐이다.

80년 7월30일 과외금지조치 당시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한해 동안 전체 학생의 15%선인 1백46만명이 과외교습을 받았고 거기에 들어간 총 과외비는 당시 문교부 한해 예산의 30%선인 3천3백억원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가계압박 부담 문제가 정상적인 학교기능 마비, 계층간의 위화감 심화와 함께 과외폐지의 강력한 근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교육전문가들 가운데는 이렇게 과외의 고삐를 푼 채 과열과외 양상을 방치해둔다면 80년의 병폐가 고스란히 재현되는 데 그치지 않고 ‘확대재생산’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80년에 비해 두배 이상 오른 과외비, 더욱 높아진 학부모들의 교육열, 학생수의 증가를 감안하면 과외비로 쏟아져 들어갈 私교육비만도 1조원 규모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밖에도 鄭宇鉉교수(고려대·교육학)는 “빈부격차가 더 심화된 현실에 비추어 과외를 받는 층과 과외를 못받는 층간의 ‘교육의 빈부격차’가 더욱 커질 것이며 위화감의 골이 더 깊어질 것”이라고 진단한다.

현재 문교부는 과열 고액과외를 막고 계층간 위화감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안으로 텔레비전 과외에 기대를 걸고 있다. 즉 지난 89년 4월부터 시작한 고3 텔레비전 과외가 큰 호응을 얻었음에 비추어, 올 9월부터 교육전담 방송국이 생겨 16시간 내내 중3·고1·고2 과외를 해주게 된다면 ‘과외 소외계층’의 불만과 고액과외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으리란 것이 문교부의 기대다. 소위 ‘과외의 공개념화’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韓駿相교수(연세대·교육학)는 “텔레비젼 과외란 것도 변칙적인 해결방법일 뿐”이라고 비판하며 “과외란 근본적으로 대학에 가려는 학생들은 많은데 대학문은 너무 좁은 현실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인 만큼 교육 제도의 개혁과 함께 과외추방을 위한 대대적인 학부모 운동을 전개하는 두가지 측면의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미국과 소련 사이에 핵무기 전면폐기협정이 이루어질지언정 대한민국의 과외열기는 없애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을 만큼 여러 가지로 과외가 만연될 소지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에선 문교부의 조치가 지나치게 안이하고 성급했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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