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濟度’ 나선 성직자 후보들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1.06.2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목사·승려 19명 광역 출마…“특정 종교의 정치세력화” 단정은 ‘성급’

목사 의원이 시·도의회 회의장에 나타나 시의회 예산을 조목조목 따지고, 승려 의원이 승복차림으로 출신 지역구의 ‘도시가스 공급’을 호소하는 광경이 연출될 것인가.

 이번 광역의회선거에서는 목사 ·승쳐 등 성직자 19명이 입후보해 눈길을 끌었다. 전국적으로 19명이란 숫자는 전체 후보자 2천 8백77명에 견주면 사실상 미미한 것이다. 그러나 성직자들의 ‘선거 참여’가 당사자나 유권자들에게 거의 금기시돼왔던 그 동안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율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현상을 지난 기초의회선거에서 개신교측에서만 80여명의 후보가 출마해 64명이 당선된 것과 관련지어 ‘특정 종교의 정치세력화’를 성급히 점치고 있기도 하다.

 이들 성직자 후보를 정당·종교별로 보면 신민당 7명(목사 6명, 승려 1명) 무소속 6명(목사 5명, 승려 1명) 민주당 5명(목사 3명, 승려 2명) 민중당 1명(승려)으로 여당과 가톨릭쪽 후보가 전무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양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신민당의 경우, 예산군 기독교교회협의회(NCC) 회장을 지낸 韓相喆(68·충남 예산3) 후보를 비롯, 사회참여 목회활동을 해온 ‘진보적 성향’의 목사를 집중 공천한 점이 두드러졌다. 여기에는 신민당의 공천이 사실상 당선을 의미하는 광주 서구5와 전남 신안도 포함돼 있다.

 이들 성직자 후보들은 소속 정당을 불문하고 한결같이 비슷한 선거전략을 구사했다. 즉 기성 정치인이 아닌 깨끗하고 신선한 이미지, 정당의 이해관계와 당리당략에 구애받지 않는 성직자의 강점을 내세운 것이다. 후보 8명이 난립해 전국 최고의 경합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한 승려 후보는 합동연설회장에서 오리발 그림을 꺼내들고 “정치인들이 오리발만 내밀다 보니 우리 정치가 이모양 이꼴이 되고 말았다”며 기존정당과 정치인들의 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일부 후보들은 개인용 홍보전단에 ‘法語’를 적어놓거나 특정 종교와 관련된 공약을 내걸기도 했지만, 대분분은 자신이 속한 교회나 사찰의 조직력을 최대한 활용하되, 다른 종교 유권자들의 거부심리를 감안해 ‘특정 종교에 치우치지 않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다. ㅇ사찰의 주지로 무료탁아소와 유치원을 운영하는 민중당 ㅈ후보는 “선거구 주요지역의 상업고지지역으로의 용도 변경, 상습적인 단수문제 해결, 다차원적인 내집 갖기 운동, 도시가스 문제 해결” 등 매우 현실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사실상 우리 사회에서의 종교세력은 주요한 정치사회적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현실적인 발언과 참여를 해온 점에선 이미 정치 세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체제의 폭력, 군사독재 등에 도덕적으로 ‘충고’하거나 ‘훈수’를 두는 재야의 범주 안에서 이뤄졌다.

 찬·반 논쟁 속 성직자 참여 계속 늘 듯
 이렇듯 재야로서의 참여에 익숙해온 만큼 성직자의 ‘선거 참여’에 대해 종교계와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찬반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한켠에서는 “성직자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인 만큼 피선거권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위‘하는 시각이다. 더 나아가 ”지방의회 의원이 무보수 봉사직임을 감안할 때 같은 봉사직은 성직자의 참여가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성직자의 정치참여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옹호할 가능성이 있으며 종교의 진리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후보자들 대부분은 선거전 초반에 해당 종교의 신도들로부터 “성직자가 왜 선거전에 나서 몸을 더럽히느냐”는 항의전화와 방문을 받기도 했다.

 이번 선거 양상을 놓고 ‘특정 종교의 정치세력화’라고 단정짓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후보들 대부분이 소속 교단이나 종당으로부터 간접 지원을 받거나 비공식 추인은 받았더라도, 어디까지나 개인자격으로 입후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두 차례의 선거에서 ‘시험가동’된 성직자들의 선거참여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개신교의 경우 감리교와 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장로회 등은 앞으로 있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교단차원에서 적극 대처하기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치와 종교’가 어떤 관계 속에 놓여야하는가. 이 문제가 본격적인 논쟁거리로 등장할 날도 머잖은 것 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