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 피도 믿어선 안돼”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199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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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에이즈협회 부회장 최강원 박사

‘이제 행동할 시간이다(Time to Act)' 세계보건기구는 93 세계 에이즈의 날(12월 1일)을 맞아 올해의 표어를 위와 같이 정했다. 무슨 행동을 취할 것인가. 바로 예방운동이다. 지난 10월 7일 창립한 대한 에이즈협회(회장 · 강영훈 전국무총리)는, 아이들 몇이라도 예방교육을 시키고 어른들에게는 콘돔을 나누어 주는 일부터 시작하겠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 ADIS) 명의로 알려진 서울대 崔康元 교수(내과)를 만나 국내 에이즈 상황과 저지 방안을 들어보았다.

 최근 에이즈에 고나한 희소식과 사고 소식을 담은 외신이 동시에 들어왔읍니다. 프랑스 파스퇴르사의 실험은 어느 정도 의미가 있습니까?
 아직은 시험관 내의 업적입니다. 사람은커녕 동물실험도 거치지 않은 단계이니까요. 당장 유효하리라 기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에이즈 특효약이 개발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재래식 한약재 중에서 잘 듣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시험관 내에서 일부 활성화한다는 결과도 나오고 있으니까요.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의학계에 ‘너희 나라에 대대로 내려오는 약재에 관심을 집중해 달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아마존 지역의 다양한 생물이나 약초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독일에서 혈액을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정밀 조사와 그에 따라 결과 보고가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독일이나 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사실이므로 우리도 절대안전지역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 적십자 혈액원이 조사하리라 생각합니다만 보사부에서 발표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우리나라 에이즈 환자의 배경은 어떤 특수성이 있습니까?
 미국의 경우 남성 동성애자가 60%로 압도적입니다. 그 마음이 마약중독자, 그리고 이성과의 접촉으로 인한 감염자 순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나라는 그 반대 양상인데, 이성 접촉으로 인한 경우가 80%, 남성 동성애자는 10%입니다. 마약중독자 중에서 에이즈가 발견되 사례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마약중독자가 많은 것으로 아는데 그로 인한 에이즈 감염자가 한 건도 없다는 사실은 이상하군요.
 일회용 주사기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약중독자라 하더라도 에이즈 환자와 주사기를 함께 쓰지 않으면 안전하거든요. 마약중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주사기를 팔지 말아야 하지만 에이즈 예방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유럽에서는 주사기를 주자, 말자 하고 논쟁이 한창입니다.

 우리나라는 환자가 10명밖에 안된다, 그러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낙관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87년 태국의 통계가 지금 우리와 비슷했습니다. 3년 뒤 확인된 감염자가 2만명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환자 10명과 감염자 2백89명이 발생한 상태입니다. 뭐든지 고비가 지나면 아무리 막으려 해도 가속도가 붙습니다. 에이즈의 잠복기는 10년입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이 84년 이니까 내년이면 일종의 사회적 증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물론 아직은 저지할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방운동에 나선 까닭은 확산을 최소한으로 막아보자는 뜻입니다.

 에이즈협회 발족에 대한 사회적 호응은 어떻습니까?
 의료인뿐 아니라 사회사업가와 기업가를 대상으로 가입을 권유하고 창립 대회에 초청장을 보내드렸는데 참여율은 극히 낮은 편입니다. 한 분은 초청장을 받고 저희 사무실에 격렬하게 항의전화를 하셨습니다. ‘이런 걸 보내면 다른 사람들 보기에 내가 에이즈라도 걸린 줄 알 것 아니냐’는 것이었어요. 우리 사회에서 에이즈는 무조건 불결한 것, 남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입니다.

 의사 처지에서도 에이즈는 다루기 꺼림칙한 대상입니까?
 의사도 사람입니다.

 현재 관리하고 계신 에이즈 감염자는 몇 명이나 됩니까?
 대략 40~50명 정도 됩니다.

 수혈할 때 가족이나 친지의 혈액을 쓰는 것이 안전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 서울대 혈액원과 적십자 혈액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놀랍게도 아는 사람의 혈액이 더 위험합니다.  아는 사람의 혈액에서 매독균 등이 더 많이 검출되었습니다. 술 먹고 잠깐 외도하는 경우 에이즈에 감염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순진한 시골 총각이 어쩌다 술집 한번 가서 덜커덕 걸리거든요. 안전을 보장받은 사람은 없다는 거지요.

 헌혈한 혈액에서 사고가 많이 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주로 남성 동성애자들이 아무도 모르게 검사해 보기 위해 헌혈이라는 방식을 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남성 동성애자가 약 10만명 있는데 이들에 대한 관리는 전무한 상태입니다. 이들은 죽기 직전까지도, 심지어 의사에게도 자기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에이즈에 감염될 위험이 높은 이 사람들이 안심하고 검사를 받아보게 해야 합니다.  미국은 누구나 익명으로 검사를 받아볼 수 있으나 우리나라는 제도로 금지되어 있어요.

 정부의 입장은 마치 ‘저희들이 나쁜 짓 하다 걸렸는데 국민 세금을 쓸수는 없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난 87년 에이즈 예방법이 제정된 후 웃지 못할 일도 많았습니다. 보건소 직원이 감염자에 한사람씩, 마치 안기부 요원처럼 따라 붙었는데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근무하고 퇴근합니다. 사실 5시 이후, 그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일 아닙니까. 공무원이 도시락 싸 가지고 따라다닌다고 될 일이 아니고, 환자 또는 보균자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에이즈 정책의 우선 순위는 어디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재 에이즈 예산의 대부분은 보건증을 발급하는 데 쓰고 있습니다. 유흥업소 종사자 68만명 가운데 보건증을 발급받는 사람은 약12만명쯤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 12만명 중 한건도 나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순진하고 요령 없는 사람만 검사를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술집에 가서 걸려 오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적은 예산을 어디에 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냐, 바로 교육입니다.

 환자 또는 감염자의 인권도 보호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환자 중에 수원에서 오퍼상을 하는 분이 있는데 뼈를 다쳐 병원에 갔습니다. 그분이 ‘사실 나는 에이즈 검사 결과 양성반응이 나왔다’라고 털어놓자 응급처치도 안해주고 내몰더랍니다. 그런 분들이 ‘사회에서 그런 식으로 하면 나도 손해 안보겠다’고 나올 경우 어떻게 되겠습니까.


 협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정부에서 못하는 일을 맡아야지요. 예를 들어 숨어 있는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상담과 설득 작업입니다. 미국에서는 동성애자와 마약중독자, 창녀들이 비밀 조직을 만들어 정보를 교환하고 진찰받고 합니다. 우리 같은 민간 단체가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수혈로 감염된 6명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이런 소송이 안 걸려 있는 나라가 별로 없습니다. 억울한 피해자는 분명히 있는데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냐. 아무리 안전한 혈액이라고 해도 10만명 또는 1백만명 중의 1명꼴로 감염자가 나타나거든요. 현대 과학의 한계가 그 책임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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