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적’이 되었나
  • 김용구(언론인·본지 칼럼니스트) ()
  • 승인 1991.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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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서울에서 한 문인들의 모임에 나가보았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지만, 시인 극작가 수필가 소설가의 영어 머리자를 따서 PEN이 되고 그것이 한국펜이니 국제펜이란 단체 이름이 됐다.

 그 모임은 한국펜의 田淑禧 회장이 국제펜의 부회장이 된 것과 그 분의 새 수필집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로 원로 중견 신진 문인들이 다수 모였다. 소련 출판인 댓분도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여러 연설을 들었다. 문인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문학얘기를 듣길 기대하는 게 자연스럽다. 하기는 이 모임에서 어떤 시인의 소개말처럼, 문인이란 두 세계(문학창작과 문단교제)에 사는 것이긴 하다.

 국제펜회원은 예술작품이 나라나 정치의 정열로 침해되어서는 안된다 하고(제2조) 회원은 완전한 이해와 상호존중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제3조)고 내걸고 있다.
 그런데 이 모임에서는, 취지 탓이겠지만, 문학 얘기보다 교제얘기가 많았다. 문인들의 모임에서 문학 얘기가 중심이 되지 않고 따라서 문학적 순간을 공감할 수 없는 대여섯 연설이나 이어지다보면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지루한 감이 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까지는 참고 지나갈 수 있다. 그런데 문인들의 모임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말이 어떤 연사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미국 펜클럽은 우리의 적이요”
 “미국 펜클럽은 우리의 敵이요”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은 사람은 다름아닌 한국펜의 집행부를 책임지고 있는 임원이었다.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으나 연거푸 그런 말을 쏟아내는 데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펜이 우리의 적이라니, 어쩌다가 서로 이해와 존중을 약속하고 다짐하는 국제펜의 국가센터가 다른 국가센터에 대해 적대감을 공언하게 되었는가. 그 발언자가 집행부의 책임을 맡고 있다해도 이 발언이 한국펜의 공식입장인지 또는 공식입장을 반영하는 것인지 여부를 한국펜은 밝혀야한다.

 나는 과문의 탓으로 미국펜도 한국펜에 대해 ‘적’으로 여기고 그렇게 공헌하고 있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했다.

 만일 그 사람의 말이 사견에 지나지 않는다면 한국펜은 국제펜과 관련, 국가펜뿐 아니라 안팎의 문우들에게 오해나 심려를 끼치지 않도록 조속히 적절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미국에는 펜센터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두 곳에 있는데, 그 날 밤 ‘적…운운’은 뉴욕펜이 실질적으로 미국펜이라 하여 뉴욕을 들먹이며 한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 사람은 미국펜에 동조하여 한국펜에 반대를 일삼는 국가센터로 호주 덴마크 핀란드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등을 들먹였다. 면모를 보면 우리의 전통적 우방국들이다. 이들 펜센터들은 우리나라의 인권상황 특히 문인의 투옥 등을 들어 한국펜에 대해 비판적이고 88년의 서울 국제펜대회 개최도 반대했었다고 알려졌다.

한국펜, 문학으로 돌파구 찾아야
 그러나 국제펜헌장과 일반 인권기준에 비추어 우리의 인권상황에 문제가 제기되고 그것이 근거가 있다면 우리측도 이유있는 비판을 받아 들이고 문제의 상황의 해결을 위해 국제여론의 힘을 빌리는 것이 떳떳하고 현명하다. 대체로 그렇게 해온줄 안다. 그런데 이번에 ‘적…운운’하는 말이 나오게 된 까닭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서울국제펜대회를 마치고 낸 보고서를 보면 수잔 손탁 여사(뉴욕 펜센터 회장)가 “한국을 다시 찾아서 정치, 사회 그리고 문화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한다. 그런 표정으로 보아서 그들이 한국을 보는 시각에 분명 변화가 왔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고 그 문제의 발언자는 적었다. 그런데 관계가 더 나빠진 걸까.

 어쨌든 국제펜은 문학을 통해 ‘하나의 세계에서 평화 속에서 사는 하나의 인류라는 이상을 옹호한다’는 목적으로 뭉친 것이지 ‘적’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은 사방에서 묵은 적대감을 풀고 모든 나라가 새로운 우의를 다지자는 신선한 희망과 기운이 어느 때보다도 국제적으로 고조되고 있지 않은가. “모든 낱말에는 많은 역사의 짐이 지워져 있다.” 서독작가 하인리히월이 노벨 문학상 수상연설에서 한 말. 모든 낱말 가운데 우리가 가장 주의해 다루고 되도록이면 잊어야 할 말이 ‘적’이라는 낱말이다.

 이 계제를 한국펜은 새돌파구를 찾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어디서나 문인들이 걸쳐 사는 두 세계에서 교제보다 문학자체를 추구하면 신천지는 얼마든지 열리리라 생각한다.

 살아있는 문학적 개성과 재능 가운데 수잔 손탁은 우리가 발견해야 할 독특한 지성의 문인이요 사상가이다. 더구나 그는 세계를 경험하고 평가하고 읽으며 거기서 살아 남아 에너지를 퍼내고 위안을 찾고 즐거움을 갖고 사랑을 표현하자는 정신의 소유자이다. “글 쓰기란 포옹이요, 포옹되기요, 모든 사상은 뻗어 나가는 사상이다.” 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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