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물 푸짐한 ‘장수촌’ 아흔살 넘어도 바쁜 일손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90.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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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인구 많은 경남 남해군 설천면을 가다

 진주시에서 직행버스로 1시간여를 달려 남해대교를 건너면 바로 남해군 실천면에 도착한다. 이 지방은 예로부터 온화한 해양성 기후와 함께 풍부한 어자원, 수려한 주변환경으로 사람 살기에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남해지방에서도 장수촌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경제기획원 산하의 조사통계국 인구통계과에서 85년 실시한 인구 및 주택센서스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동 · 읍 · 면별 고령자 분포(80세 이상)에서 설천면은 전남 구례군 마산면, 전남 장흥군 장동면 등에 이어 6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88년 12월말 기준으로 군청에서 조사한 최근 자료를 보면 총인구 5천8백41명 중 80세 이상 고령인구는 1백60명으로 비율상 국내 최고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많이 움직이는 게 장수비결”
 면사무소에 알아본 결과 8개 마을로 구성된 설천면에서도 가장 고령자가 많은 곳은 덕신리였다. 설천면에 속한 대부분의 마을들이 바다를 끼고 농사와 어업을 겸하고 있는 데 비해 덕신리는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녹두산 · 구두산 · 산성산 등 세 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 겨울밭에는 특산물인 마늘들이 가지런히 줄을 맞춰 자라고 있었다.

 잠시후 마을 회관에서 나타난 池東己(41)이장은 “동네 샘물이 워낙 좋아 노인들이 오래 사시는 것 같다”고 운을 뗀 뒤 “일년에 두 번씩 관에서 수질검사를 나오는데 대장균이 없어 항상 무사통과한다”고 자랑했다. 또 굳이 꼽는다면 “지리학적으로 골이 깊고 산이 많아 공기가 좋고, 평야에 사는 사람보다 많이 움직이는 게 장수비결이라면 비결일 것”이라고 나름대로 의견을 밝혔다.

 현재 덕신리에는 총1백17가구 4백30명이 살고 있는데 이중 60세 이상 노인은 모두 95명이나 된다.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여자가 오래 산다는 통념을 깨고 덕신리에는 할아버지가 49명으로 할머니보다 조금 많은 것도 특징이다. 마을 실정에 제일 밝다는 노인회 총무 韓熙灼(66) 할아버지는 또 이렇게 장수 요인을 설명했다. “우선 물이 좋지 않소? 저기 남쪽에 보이는 사슴머리의 모양의 산이 鹿頭山인디 저 꼭대기에 源泉이 있는 기라. 요즘은 상수도를 연결해서 바로 저 지하수를 집에서 쓸 수 있지만, 예전에는 마을 가까운 데 샘을 파서 썼제. 둘째룬 공기가 맑고… 여기선 아무리 걸어다녀도 끄떡없는디 서울에선 고궁하나만 구경하구 다녀도 팔다리가 쑤시구 목도 껍껍하데. 또 山菜가 많이 나… 도라지, 쑥, 고사리, 두릅, 더덕, 한20가지 나능가? 우린 그런 것만 먹응께.”

 한낮이 되자 구멍가게를 연상케하는 구판장에서 韓熙灼(66), 徐聖宇(66), 朴明淳(65) 할아버지와  韓熙順(76) 할머니가 소주 몇병을 놓고 둘러앉아 기자 일행에게 점심을 권했다. 식단은 쌀밥, 김치, 시래기국, 배데기젓에다 특별히 제공된 인스턴트 김이 전부였다. 韓熙順 할머니와 徐聖宇 할아버지는 흡사 염색한 것처럼 새까만 머리를 가리키며 “장수하고 싶거든 반찬, 특히 배데기젓을 많이 먹으라”며 젓갈 안주를 맛있게 집어먹었다.

 “90세 이상 고령자가 마을에 12명이나 생존해 계신다”는 사실을 이들로부터 확인하고 점심식사를 마친 후 새마을지도자 鄭順協(44)씨의 안내로 90세 이상 노인들을 찾아나섰다. 마을 군데군데 7개가 있다는 참샘 중 첫번째 참샘에서, 金正順(66) 할머니와 함께 밥통을 씻고 있던 鄭小梅(93) 할머니를 만났다. 머리가 새고 가는 귀를 먹긴 했지만 鄭할머니는 지팡이 없이 거동했고, 고등학교 다니는 손자 뒷바라지를 하면서 혼자 살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찬물에 담근 손이 추워보여서 걱정했더니 “샘물이 여름에는 너무 찹아 손을 못넣을 정도지만 겨울에는 오히려 따뜻하다”고 말했다.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간 집에서 아들, 손자 내외와 함께 살고 있는 鄭五沐(93) 할머니도 한창 모시가 날 때는 길쌈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모시는 마늘, 유자와 함께 덕신리의 유명한 특산물이어서 대부분의 아녀자들은 길쌈에 아주 능한 편이다. 鄭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손자 며느리는 “밥 잘 잡숫고 생선, 육고기를 특히 좋아하시제예. 술은 안드시지만 담배는 피우시고요”라고 할머니 식성을 소개한다.

 “저승 가기 바쁜 사람만 집에 있지요”라는 鄭順協씨의 농담처럼 덕신리는 일손을 놓고 사는 노인들이 거의 없는 마을이었다. 지금은 농한기라 그런대로 한가하지만 농번기가 되면 ‘남아애들’과 똑같이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한다. 그런 만큼 늙어서도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의 눈치를 안봐도 된다고나 할까.

 덕신리에서 차로 약30분 거리에 있는 노량리는 이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바다를 끼고 있어 농사보다는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고 관광객을 상대로 한 장사 재미가 괜찮아 제법 소득이 짭짤하다”고 姜和辰(46) 이장은 마을 소개를 했다. 그 때문인지 장 · 노년층만이 눈에 띄던 덕신리와는 달리 횟집과 기념품가게가 늘어선 길거리에는 젊은 아낙과 남정네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생활정도도 높고 생동감 넘치는 개방적인 포구 분위기가 정말 장수하기에 적당한 곳이라는 느낌을 갖도록 만들었다. 봉고로 마을까지 태워다준 청년도 “노래미, 볼락, 농어, 감성돔 등 생선과 양식굴, 피조개 등이 식탁에 자주 오른다”면서 “채소와 함께 싱싱한 해산물만 먹기 때문에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혼자 사는 1백2살 할아버지
 총 1백10가구에 인구 3백98명인 이 마을의 60세 이상 노인은 약 50여명, 그러나 이들이 덕신리 노인들보다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으리란 예상은 노량리 최고령인 林靑順(102)할아버지를 만나면서 깨져버렸다. 林할아버지는 충렬사 입구 바로 밑에 위치한 집에서 놀랍게도 혼자 살고 있었다. 2남3녀를 뒀는데 두 아들과 큰며느리는 죽고 딸들은 모두 타지로 출가했다는 이장의 설명이었다. 지금은 근처에서 기념품가게를 하고 있는 손자며느리가 끼니마다 식사를 나르고 가끔씩 땔감을 봐준다고 한다. 하지만 林할아버지는 “삼시 세끼 뜨신 밥 묵고 속내의 든든히 입으면 얼매든지 오래 살 수 있다”고 장담 반 하소연 반으로 얘기하면서 “이도 새로 난다”고 입을 크게 벌려보였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생에 대한 집착은 도리어 훨씬 강렬한 것 같았다. 이런 할아버지를 보면서 이장은 林 할아버지가 거택보호자로 혜택을 받고 있긴 하나 생활에 어려움이 많다며 내의나 모포 같은 작은 것이라도 보내줄 수 있는 독지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내려오다 바닷가에서 맞닥뜨린 崔南守(70) 할아버지도 아직 건강한 몸으로 배낚시를 계속 나가고 있지만 일흔이 다 된 몸으로 험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영 비감스런 표정이었다. 2남3녀 중 이번에 서울에서 대입학력고사를 치른 막내아들을 포함, 모두 고등학교까지 교육을 시켰다는 崔할아버지는 교육비 많이 드셨겠다는 기자의 위로에 “하믄, 안가르칠라 했으면 내가 여직 이 짓 하겄나” 한다.

 노량리도 자연환경 적으로는 장수하기 좋은 마을임에 틀림없으나 덕신리처럼 노인들이 딱히 거들만한 일이 없어 그들의 생활고와 소외감은 오히려 더 심한 것 같았다. 설천면사무소의 총무계장도 “워낙 산수가 수려해 고령자가 많은 것 같다”고 하면서도 “공부하러, 취직하러 젊은이들이 타지로 빠져나가 상대적으로 고령인구율이 높아진 면도 없지 않다”고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아무튼 단순히 장수비결을 캐러 취재에 나섰던 처음과는 달리 나날이 벌어지기만 하는 도시와 농어촌의 소득격차, 섬마을에서조차 심각한 사안으로 떠오른 노인문제를 접한 뒤라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만은 없었다. 빈한함과, 늙어서도 싫든 좋든 육체노동을 감수해야만 하는 절박함을 보듬고 사는 이들에게서 ‘장수비결’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사치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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