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중병 앓는 외딴섬
  • 전남 고흥.김상현 기자 ()
  • 승인 199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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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취도, 토석 채취 놓고 10년째 주민.업자.군청 갈등



 "10년을 참았구만이라. 이제 더는 못참아요. 오죽허믄 이 바쁜 철에 서울꺼정 올라왔겄소!"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합동민원실 앞에서 상경한 80여 주민과 함께 시위를 벌이던 송점숙씨(46)는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서울까지 올라오는 데에만 꼬박 7~8시간이 걸리는 전남 고흥군에서도 맨 끝자락에 있는 翠島라는 작은 섬에서 올라온 사람들. 이 마을 청년회 회장 정원종씨는 "10년 동안 석재 회사와 군 직원?경찰 들이 한통속으로 주민들을 괴롭히는 데 더 견딜 수 없어 대통령께 탄원하려고 올라왔다"라고 말했다.

 13일. 80여 '일꾼'이 마을을 비운 전남 고흥군 포두면 오취리 취도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점점이 뜬 맞은편 섬들과 포구에 정박한 80여 척의 배들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더없이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청년회 총무 정길섭씨(34)는 그러나 "토석 채취 문제로 주민들 간에는 사이가 벌어져 못쓸 마을이 되어 버렸다"라고 말했다.

업자 "피해 없다"에 주민 "짜고 한 짓"

 83년 8월 거산석재(현재 우암무역?사장 金庚在)가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취도와 육지를 잇는 도로를 건설하겠다고 나섰을 때 마을 주민들은 너나없이 대환영했다. 취도 주민에게 연육 도로 건설은 오래 전부터 숙원사업이었다. 문제는 도로가 다 놓인 뒤에도 돌 캐기 작업이 계속된 데서 비롯됐다. 마을 주민 명의와 '連陸 소요 잡석 및 건축자재'라는 사업 용도는 어느새 석재 회사 사장 명의, '석재 수출' 용도로 바뀌어 있었다.

 거산석재는 그뒤로 사업을 본격화해85년과 89년 계속 사업 연장 신청을 내고 87년에는 같은 채석 업체인 광오석재까지 인수해 돌 캐기에 박차를 가했다. 주민 이경옥씨(45)는 "발파 소음에 온 마을이 흔들리고, 바위 파편이 밭이나 지붕 위로 떨어지기도 해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여름 장마 때 토사가 바지락 양식장으로 흘러들어 주민들이 격렬히반발했는가 하면, 발파 진동으로 채석장 근처 집들과 교회 벽이 갈라졌다며 군에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1재(ft3)당 40달러씩 받고 일본에 수출할 만큼 좋은 석재가 나는 '다리바위산'은 취도의 상징 같은 곳. 조상 대대로 다리를 뻗고 푹 쉬던 곳이라는 뜻에서 이름도 다리바위산이다. 정길섭씨는 "석재 회사가 들어와 마구잡이로 돌을 캐가면서 옛 모습을 찾아볼 수조차 없이 훼손됐고, 방풍림 구실을 하던 소나무숲도 자취만 남았다"며 안타까워한다.

 주민들이 잇따라진정서를 내고 행정소송까지 제기하자 거산석재측은 지난 2월 작업을 중단했다. 지금 주민들이 요구하는 사항은'돌 캔 곳을 즉각 복구하라'는 것이다. 주민들이 '상경 농성'까지 벌이게 된 것도 10월4일까지 공사 현장을 복구해 주겠다는 고흥군수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저대로 두면 장마 때 어떤 피해가 생길지 모르고, 업자가 슬그머니 토석 채취 공사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고 불안해한다.

 거산석재측은 다리바위산 토석 채취에 여전히 강한 미련을 가지고 있다. 김경재 사장은 "10월4일까지 토석 채취장을 복구하라는 고흥군청의 계고장에 대해 행정심판을 청구해 놓고 있다. 우리가 승소하면 당연히 다시 작업에 나설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공신력 있는 기관들의 조사에서도 마을에 아무런 피해가 없을 것으로 나왔다. 주민들의 주장은 근거 없는 횡포"라고 주장했다.

정봉자 박사, 폭행 당하기도

 김씨가 말하는 '공신력 있는 기관'은 한국안전기술협회와 국립수산진흥원 여수수산연구소.. 이들 기관은 채석 작업으로 인한 발파 소음과 진동이 마을에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 갯벌로 흘러든 토사가 바지락 양식장에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 조사했다. 결과는 모두 '피해가 없다'였다. 그러나 정부 합동민원실에서 만난 마을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업자와 채석 작업을 찬성하는 일부 주민들끼리 짜고 한 짓을 어떻게 믿느냐"고 반발했다.

 지금 취도를 감도는 불신의 기류는 깊고도 넓다. 주민들은 업자와 공무원을 믿지 못하고, 업는 공무원을, 공무원은 주민을 믿지 않는다. 채석 공사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찬성하는 주민들에게 불신의 눈길을 던지고, 찬성하는 주민들은 반대하는 주민을 경원한다. 주민들을 이끌고 상경한 정봉자씨(42)는 "석재 업자가 파간 돌보다 주민 사이에 깊게 팬 불신의 골이 더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취도가 고향인 정씨는 순천간호학교에 합격한 뒤 독일로 가 간호사로 일하면서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따낸 입지전적인인문. 작년 9월 추석을 쇠기 위해 20여년 만에 고향을 찾았다가 이 문제에 뛰어들었다.

 정씨는 이렇게 말한다. "돌산 개발은 불법이다. 그런데도 군청은 물론 도청까지 업자측에 동조하면서 주민의 요구를 무시해왔다. 그래서 법적 근거를 찾으려 뒤늦게 법조문을 열심히 뒤졌다." 사업자가 93년 4월 허가외 지역을 전용 및 토석 채취한 혐의로 구속돼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것도 정씨의 그러한 법 지식 덕분이었다. 토석 채취 반대 주민들의 '브레인' 노릇을 하던 정씨는 한 찬성 주민으로부터 폭행 당해 전치 9주 진단을 받는 수난도 겪었다. 그 폭행 사건을 두고, 반대 주민들은 업자측의 사주를 받은 것이라고 하고, 찬성 주민들은 정신병을 앓는 주민의 우발적 폭행이라고 주장한다.

 의견이 갈리는 부분을 그뿐이 아니다. 토석채취법 조항을 둘러싼 양쪽의 주장은 더욱 팽팽한 평행선을긋고 있다. 관련 법 제79조 '토석의 매각 제한' 조항에 따르면 토석채취장은 교육기관으로부터 5백m, 가옥?분묘로부터는 각각 1백~30m 떨어진 곳이어야 한다. 이재식 청년회 회장은 "석산은 오취국민한교로부터 채 3백50m도 안되는 곳에 있다. 가장 가까운 집은 73.1m, 묘지는 5m도 안되는 지척에 4~5개가 있다. 명백한 불법 공사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업자측은 "법률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라고 반대 주민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취도는 긴 쪽 지름이 채 5km도 되지 않는 '손바닥만한' 섬이다. 1백4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바지락 양식과 새우?오징어잡이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전형적인 어촌이다. 그러한 곳이 토석 채취라는 개발 바람을 맞아 삭막한 마을로 변해버렸다. 한 주민은 "서로 의견이 다른 주민을 길에서 만나면 외면해 버린다.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토석 채취 공사는 더이상 없을 것 같다. 고흥군청 산림과장은 복구 방침이 확고하게 섰다면서 "설령 없자와 주민 간에 석재를 채취하기로 합의가 되더라도허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자측은 행정심판에서 승소하면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말하지만 주민들의 '목숨을 건' 반대를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금 벌겋게 속살을 드러낸 다리바위산의 흉한 몰골이, 다리를 뻗고 편히 쉴 수 있는 옛 산으로 되돌아가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본질적인 부분, 즉 마을 주민들이 불신의 벽을 허물고 좋았던 옛 시절로 돌아가는 데에는 산이 복구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석산 개발에 찬성도 반대도 아니라는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개발이고 뭐고 이젠 다 필요 없소. 그저 마을 사람들끼리 예전처럼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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