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위기, 대변혁 촉구한다
  • 안병찬 편집국장 ()
  • 승인 1991.05.2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민 원하면 백번이라도 항복하겠다.” ‘제2의 6·29’ 의지 실천할 때

 지금 우리는 사회 전반에 걸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정국은 난국을 넘어 고비에 도달해 있다고 모두가 생각한다. 청와대에 앉아 있는 고위 당국자들의 “위기로 보지 않는다”는 증세진단이 오히려 공허하게 들린다.

 유기체가 혼란을 겪고 그것에서 비롯하는 손상을 받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때 심한 질병의 증상을 드러낸다. 우리 사회는 그런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다. 그것이 가장 격렬한 질병으로, 파경에 이르는 병마로 이행되지 않게 하려면 제시간에 옳은 처방을 내려야 함은 말할 나위 없다.

 정치인들은 현재의 병세를 제각기 달리 진단한다. 김대중 총재는 “6·29 이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6월항쟁은 군부정치에 대항하는 물리적 투쟁이었으나, 지금은 공안정치에 대한 여론투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기택 총재는 “4·19는 김주열의 희생에서, 6월항쟁은 박종철의 죽음으로, 지금은 강경대군의 치사와 잇따른 분신으로 일어난 것이다. 어쩌면 4·19이후 최대의 위기일지 모른다”고 비유했다. 김영삼 대표는 “위기적 상황”이라고만 표명했다.

오늘의 위기는 ‘여우형 인간들’의 지배방식에서 비롯
 우리 사회의 위기는 다른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이른바 ‘여우형 인간들’의 지배방식 때문이다. 이탈리아 수리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여우형의 사람들이 설쳐대는 사회를 서술하고 있다. 그것은 정치와 경제의 영역을 정치적 권모술수에 능한 정객들과 파렴치한 법률가가 독점하고, 지적 궤변가 및 투기자 그리고 대중을 조작하는 자들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했다. 그같은 여우형 인간들이 기승을 부리는 상황이 규제되지 않고 방임된다면 사회적 균형이 밑바닥부터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강경대군 치사사건과 잇따른 분신은 6공화국의 민주화 지연과 공안정국이 빚어낸 갈등과 불만의 표출이다. 여우형 인간들로 인해 빚어진 사건을 우리는 너무 자주 접해왔다.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밀실에서의 3당합당도 그 하나이다. 합의각서·뇌물외유·수서비리 등 대형 정치사건은 물론이요, 페놀유출사건이나 원진레이온 중금속 중독사 역시 그 결과이다.

 《시사저널》은 이러한 오늘의 시국을 구조적인 데서 비롯한 것으로 판단하고 위기정국에 대한 인식을 세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위기의 양상은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적 모순과 갈등에 의한 것이므로 피부로 느끼는 것보다 크며, 둘째 위기의 원인을 보는 여권과 야권의 시각이 제각각이어서 정치권 스스로 처방을 내리기 어려우며, 셋째 80년 이후 최대의 위기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이번 위기가 87년 6월항쟁 때와 비교할 때 성격이나 전개양상에서 몇가지 심각한 차이를 보인다고 평가한다.

 첫째 87년 당시는 전두환씨의 잔여 임기가 1년 미만으로 끝나가는 시점이었으나, 지금은 대통령의 임기가 2년 가까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정권퇴진 구호가 나오고 있으며, 일부 국민이 심정적으로 이에 동조하고 있다. 둘째 그 당시에는 분열되지 않은 두 김씨라는 대체세력이 존재했으나(결국 분열됐지만), 지금은 국민적 지지를 받는 대체세력이 없다. 셋째 6월항쟁 당시에는 물가가 안정되고 3저 효과로 수출도 신장세에 있었으나, 지금은 물가폭등과 수출부진 등으로 경제상황이 악화일로에 있다. 넷째 공권력 남용으로 노사관계는 당사자끼리 풀어나갈 수 없는 왜곡된 국면에 처해 있다. 다섯째 부동산 투기와 집값 폭등으로 국민의 삶 자체가 허탈해진 데다가 만연된 공해로 마실 물과 숨쉴 공기까지 걱정하며 살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적 헌정질서와 경제적 시장질서가 뒤틀려 있는 오늘의 상황에 만약 국제질서의 탈냉전화가 없었다면 극우정변이든 극좌혁명이든 무언가 터지고도 남을 만한 정황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의 상황은 분명히 시대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전환은 대변혁을 통해서, 적극적 민주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전환의 시기에 우리는 역사가 순환하면서 던지는 질문, ‘혁명과 타협’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세력은 과거의 노스탤지아에 젖어 강경통치의 부활을 꿈꿀지도 모른다. 그런 조짐이경제난이 극심한 소련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편 격심한 갈등이 초래한 사회적 질병은 새로운 결합력을 보이지 못하면 혁명적 상황을 예비하는 단계로 진전할 수도 있다. 혁명은 예기치 않은 상황의 결과로 폭발할 때까지 오랫동안 눈에 띄지 않은 채 진행된다고 했다. 통치자의 머리 위에 새로운 무명의 힘, 즉 여론의 힘이 솟아올라 기성 질서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심을 침식할 때 혁명은 예비된다.

 우리는 혁명이 여러 세기를 넘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노대통령이 “국민이 원하면 백번이라도 항복하겠다”는 공약을 실천할 때는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시사저널》은 갈등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국민합의체적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거국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러나 노재봉 내각의 사퇴나 시국사범 석방 따위의 일회적 대증요법은 구조적 모순과 갈등을 해소하는 본질적 해답이 될 수 없다. 《시사저널》이 ‘위기타개를 위한 대토론’을 특별기획한 소이도 이러한 상황인식 때문이다.

 격심한 갈등이 빚어내는 위기상황은 새로운 ‘결합력’에 의한 해답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