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균 우글 영안실 원시 수준 못벗었다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1.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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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처리 안해 감염 위험…법규정 낡아 바가지 쓰기 일쑤


전염성이 강한 질병을 앓던 환자가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환자는 곧장 영안실 사체안치실로 옮겨졌고 병원과 영안실에는 비상이 걸렸다. 담당 의사가 유족과 영안실 직원들에게 예방약을 복용케 한 다음 장의를 치렀다. 사망자가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에 다니던 교회의 장례부에서 염부터 발인까지 맡아 처리했는데 시체를 직접 주무른 염사들은 아무도 예방약을 복용하지 못했다. 가족들이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평소에 방역에 대한 경각심이 없었던 탓이기도 하다. 나중에 사망자가 전염성이 강한 질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영안실 관계자에게 전해 들은 염사는 얼굴이 노래졌다. 영안실 관계자에게 부탁해 유족이 복용한 약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내 시중 약국에서 구입, 복용하는 등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이상은 최근 서울의 모종합병원 영안실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이 병원은 유족과 영안실 직원에게 예방약이나마 나줘주는 배려를 했지만 대부분의 병원은 환자가 죽어 일단 병원문을 나서면 '나 몰라라' 방치하는 실정이다. 영안실은 영안실대로 사체처리에 대한 별다른 행정규제가 없기 때문에 지극히 원시적인 방법을 답습해오고 있다.

염사가 손만 닦고 가정으로 돌아간다면…
  전염병 환자가 아니더라고 일단 환자가 죽음을 앞두게 되면 저항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각종 균의 침투를 받게 되고 숨을 거둔 다음은 일종의 세균배양실험실 같은 상태가 돼버린다. 모든 사체처리가 극히 위생적이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가정에서 장례를 치르는 경우는 아예 논외로 하고 비교적 위생적으로 사체처리를 한다는 종합병원 영안실의 경우를 보자. 영안실에 사체가 도착하면 사체안치실에 냉장보관을 하게된다. 그 다음 영안실 소속의 직업적인 염사나 교회 및 성당에서 온 교우 염꾼들이 사체를 바로 펴고, 깨끗이 닦고, 피부봉합을 하고(교통사로 등으로 사체가 크게 훼손된 경우), 수의를 입히는 엽습작업을 한다. 문제는 우선 이들 염사들이 사체에서 들끓고 있는 병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태세를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더러는 가정의례법 규정대로 가운이나 마스크를 갖추고 작업을 하기도 하나 대부분은 '쐬주'의 힘을 빌거나 '기도'의 영험을 믿고 사체를 떡주무르듯 한다. 물론 이들은 자신이 만지고 있는 사체와 주위에 있는 사체들이 공기전염 가능성이 있는 질병을 앓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병원 규모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서울시내 종합병원 영안실의 경우 각종 질병과 사고로 사망한 사체10여구가 함께 보관되는 경우도 있다.

 사체안치실에 드나드는 사람은 염사들뿐만 아니다. 유족들도 수시로 드나들고, 목사나 신부들고 찾아와 신도들과 함께 기도를 드리곤 한다. 병원 영안실 안치실마다 '주의를 요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지만 사실상 개방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그 주위에서 돗자리펴고 술마시고 고스톱치며 밤샘하는 문상객들고 안전하다고는말할 수 없다.

 전국적으로 허가받아 영업을 하는 장의업소는 4백30여개소에 이른다. 여기에다 각 교회나 성당에는 운영하고 있는 장례부나 연령회 등 '무허가업소'를 합치면 장의업소는 2만개소가 넘는다. 결국 염사도 2만명이 넘는다는 얘기인데 이들이 염습을 끝내고 간단히 손만 닦고 가정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결코 작은 일은 아닌 것 같다. 장의업 종사자나 그 가족의 건강에 대해서 학계에서 조사가 이루어진 바는 아직 없으나 실제로 영구차 운전기사 중에는 안질이나 피부병 등 괴질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선 4년제 대학 나와야 장의사 된다
 "영구차는 냉장실에서 꺼낸 관을 싣고 짧게는 1~2시간, 길게는 4~5시간 동안 장지를 향해 덜컹거리며 달려갑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온도가 올라가게 되면 위생처리가 전혀 안된 관 틈으로 온갖 잡균들이 빠져나오게 될 것입니다. 장지에 도착해 운전기사가 영구차 문을 열면 그때 잡균들이 운전사를 덮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운전기사들이 앓고 있는 괴질에 대한 종합병원 영안실 관계자의 원인분석이다.

 의약행정을 책임지는 보사부에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방역과의 이덕형 의사는 "현재 법적으로 사체처리에 관한 특별한 규정은 없다. 1종전염병 환자의 경우 화장을 하고 이장을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을 뿐이다. 현대의학의 보급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사체에 의한 전염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만 환자는 사망 직전 대개 많은 합병 증상을 보이게 마련인데 의학적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그런 사체를 다루는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미국에선 대부분의 주가 주거지역에서 장례지내는 것을 법으로 금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선 유족들도 일단 전문 방무처리사가 사체에 대한 방부방역을 한 다음에야 고인을 만날 수 있다. "사체를 방치하면 공기를 통한 오염 등 공증보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년간 이론을 공부하고 2년간 현장에서 실기를 배워 방부처리사가, 4년제 대학을 나와야 장의사가 될 수 있다. 방부처리사는 간호학 해부학 등 사체 처리에 필요한 의학기초지식을 두루 섭렵해야 하며 장의사는 의학지식과 함께 각종 종교의식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춰 고인과 유족이 편안하게 이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 줄 수 있어야 한다. 사망자는 사체공치소라는 지정장소에 안치되는데 의사라도 함부로 드나들수 없도록 돼 있다. 만약 관계자들이 질병을 앓게 될 경우 병인을 쉽사리 추적할 수 있도록 출입자를 철저하게 체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0조2항에 따라 염사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는 있다. 염사가 되려면 관계법령 및 염습이론과 실무에 대해 12시간의 기본 교육을 받고 또 매년 6시간의 보충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교육내용이 부실하고 그나마 교육을 받는 사람도 드물어 염사들은 '시체 묶는 기술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국장의업협회 서울시지부 노명현 업무과장은 "정부가 81년부터 염습비를 5만원에 묶어놓았기 때문에 사람 구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염사들은, 한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유족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보다는 차라리 노동일을 하겠다고 얘기하고 있다. 게다가 요즘에는 교회나 성당에 일을 뺏겨 전업하는 사람이 많아 전문인력의 양성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신도 바가지 씌우는 일부 교회성당
 노씨는 또 "사체가 심하게 손상됐거나 부패했을 경우에는 피붙이들도 코를 싸잡고 외면하기 일쑤이다. 염사들은 그런 사체도 저승으로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돌보고 있다. 그런데도 사회에선 사람대접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염사들은 대부분 자식에게조차 자신의 직업을 숨기고 있다. 장의업이 전문화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 관계자 ㄱ씨는 우리 나라의 장의업이 원시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체종말처리과정이 보다 과학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병원이나 사직당국이 우선 사망자의 사인을 분명히 규명해야 하며 그 자료를 토대로 전문인력이 사체를 위생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ㄱ씨는 "장의사나 염사는 미국의 경우처럼 대학 정규교육까지는 못받더라도 최소한의 의학상식과의전지식을 갖춰야 한다. 특히 사망자의 가족과 친지들을 보호하기 위해 병원미생물학과 간호학 기초를 이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경은 최근 서울시내 6개 종합병원 영안실이 유족들로부터 장의물품안치료 등을 정부고시가격보다 2~5배씩 받아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서울시에 행정처분토록 통보했다. 그러나 정작 고발당한 당사자들인 영안실측은 대부분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정부고시가는 10년 전인 81년 서울시 고시 제168호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서 이미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충청남도에서는 88년 12월에 수의와 관값을 자율화한 상태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영안실측에서는 "광역의회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가장 힘없는 곳을 상대로 한건 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정치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정부측의 수사가 수박 겉핥기라는 지적도 있다. 영안실 업자들이 엄청난 임대보증금과 월세를 병원에 지급하고 있기 때문에 유족들은 바가지를 쓸 수밖에 없는데 그같은 구조적 모순을 경찰이 알면서도 덮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안실 운영권 프리미엄이 2억~3억원에 이른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기업화된 교회나 성당의 장례부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많은 교회나 성당이 가난한 이들의 장례를 도와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부 큰 교회에서는 일반 장의업자 빰치게 신도들에게 바가지를 쒸운다는 얘기도 들린다. 중앙대부속 용산병원 영안실의 ㄱ씨는 "몇몇 교회는 정말 해도 너무한다. 신도들을 봉으로 아는 것 같다. 유족들이 터무니없이 바가지를 쓴다 싶을 때는 장의물품 원가를 넌지시 알려주곤 한다"고 말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서, 또 죽은 사람들의 저승길이 뒤숭숭하지 않도록 장의제도를 전반적으로 정비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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