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바다 잃은 소래포구 ‘격랑’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1.05.0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화약, 새 법률 시행 하루 전 매립면호 따내 … 어민은 ‘생존권’ 주장

옛날 생각만으로,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인천의 소래포구를 찾는다면 실망하기 쉽다. 서해 앞바다에서 금방 잡아온 생선을 팔고 사려는 사람들로 항상 붐비던 수도권 유일의 자연어항 수산시장이 올봄부터 반 철시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포구 앞바다 매립과 관련한 한국화약과 어민들의 갈등이 깊어짐에 따라 고기잡이가 중단돼 예전의 소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소래포구는 송도아래 인천시 남쪽 끝, 새로 생긴 시흥시와 맞닿은 조그만 만 안에 있다. 말굽 모양의 만을 채우고 있는 바다는 한쪽은 인천시, 다른 쪽은 시흥시에 속해 있다. 그런데 이 바다의 일부가 메워지는 바람에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당면한 문제로는 종전의 뱃길이 매립지로 들어감에 따라 어선들이 드나들기에 불편과 위험이 많아졌다는 것이 지만 그보다 더욱 근본적인 것은 생존권 차원의 문제다. 소래가 결국 내륙으로 변하고 말아 포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매립 후 ‘용도변경’ 가능성 의심받아
지금은 인천시 남동구 논현 2동인 소래 바닷가는 일제시대에만 해도 포구가 아니고 염전이 많은 곳이었다. 여기를 지나는 유명한 수원 ~ 인천 협궤철도도 소금을 수송하기 위해 일제가 놓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염전 옆(고잔동)에는 조선화약 공판주식회사라는 일본인 경영의 화약 공장이 있었는데, 이 공장이 한국화약주식회사 인천공장 전신이다.

전쟁이 나자 황해도 등 이북지방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소래 앞바다에는 비로소 고기잡이 돛단배가 뜨기 시작했다고 이곳 원주민들은 말한다. 약 3천명의 소래인구 중 원주민은 lO~20%, 피난민 출신이 50~60%, 나머지는 60년대 이후 전라도 충청도 등지에서 이주해온 선원출신들이다. 포구가 된 지 30년이 채 안되는 이곳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새우젓을 비롯한 갖가지 어물을 값싸게 사고 바다구경도 할 수 있는 ‘관광명소’가 됐으나 이제 또다시 어부와 고깃배가 없는 마을로 되돌아가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화약이 기존공장 앞바다, 경기도 시흥시 정황동의 1백46만평을 메우는 공사를 추진한 것은 5공 때인 지난 84년 7월. “화약 공장의 특수성 때문에 성능시험장용 부지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는 것이 매립을 결정한 배경이라고 한국화약 관계자는 말한다. 그러나 소래어민들은 “자기네 공장 코앞 바다에 매립허가를 받았다는 것은 처음부터 점찍어 놓고 관계당국에 로비를 벌여 따낸 특혜임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발이익을 1백% 환수토록 고친 공유수면매립에 관한 새 법률이 시행되기 하루 전인 86년 12월30일, 문제의 매립면허가 떨어져 결정적인 특혜의혹을 사고 있다. 허가 관청은 경기도였으며 당시 도지사는 전 총무처장관 김용래씨였다. 새 법 시행 일주일 전에 전국적으로 허가된 매립사업은 모두 13건으로 주민과의 충돌이 가장 컸던 제주 시 탑동 5만평도 여기에 해당된다. 이 가운데 한국화약의 매립지가 가장 큰 규모이다. 이에 대해 한국화약측은 “이미 84년부터 추진된 사업으로 85년 1차 허가를 받고 최종허가용 서류를 제출해놓은 상태였으므로 구법에 따라 허가가 난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개정된 공유수면매립법은 사업시행자가 공사비와 이의 21%(적정이윤 10%, 금융비용 11%)에 해당하는 매립지만 갖고 나머지는 모두 국고에 귀속토록 한 반면 구법은 도로 등 기초시설을 제외한 나머지 매립지를 모두 사업자가 갖도록 돼있다.

한국화약은 공사비 1천여억 원을 들여 1백46만평의 땅을 얻게 됐다. 현재 소래지역 땅값이 주택지는 평당 1백50만원, 상업지는 2백만~3백만 원이므로 매립지의 가격은 평당 1백만 원씩만 쳐도 1조4천6백억 원에 이른다는 것이 소래어민들의 계산이다. 그래서 이들은 “엄청난 개발이익을 한 기업에 보장하는 매립면허를 취소하고 소래포구를 살려내라” 고 주장한다.

소래어민들을 더욱 걱정스럽게 하는 것은 바다매립이 이것 하나로 끝나지 않고 장차 소래 주변이 뱃길만 남겨놓고 모두 메워진다는 사실이다. 위쪽인 송도 연안이 새로운 관광지로 매립 개발되고, 맞은편 시흥시 어항 대체시설 매립과 시화지구공단부지 매립이 90년대 말까지 완료되면 소래 포구는 사면이 내륙 상업지역화 할 전망인데, 일부 어민은 “고기 잡고 살려면 시흥시 어항대체시설로 이주할 수밖에 없으니 한국화약이 매립지에서 주거용 땅을 떼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국화약측은 이를 ‘부당한 요구’ 라며 “어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항로를 안전하게 뚫어주고 그동안 조업을 못한 부분에 대해 보상해주는 것이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17일 해상시위 이후 격화되고 있는 어민들의 ‘투쟁’은 매립공사로 인한 2백23척의 포구어선 입출항 장애가 발단이 되긴 했으나, 배가 잘 다닐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는 이미 어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 ‘매립면허 취소’와 ‘이주대책 마련’이란 두 목소리가 섞여 있긴 하지만, “일시적 눈가림이 아닌 장기적인 생존권 보장요구”라는 점에서는 어민들의 주장이 일치하고 있다. 사태는 공정 50% 선에서 매립공사가 중단되는 데까지 이르렀으나 한국화약은 여전히 “안전한 신항로준설과 적절한 보상” 수준에서 어민들과 타협을 보려 하고 있다.

민중당 등 소래 문제에 개입하고 있는 정당과 재야단체 사람들은 “시화지구와 송도 등 소래주변 매립개발사업이 끝나고 서해안고속도로가 건설되면 한국화약 매립지의 땅값은 족히 평당 2백만 원을 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한국화약은 몇 조원에 달하는 이 땅을 용도 변경해 상업 ·위락시설 용지로 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더 큰 ‘소래사태’ 끊이지 않을 것
한국화약측은 “화약 업종을 그만두지 않는 한 시험장은 없으면 안 되는 것이며 다른 목적으로 쓰려 했다면 갯벌 준설토가 아닌 산토로 매립했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안전성 등을 고려해 주거지역을 피해 바다를 태한 화약성능시험장은 92년 완공 이후 5~6년 안이면 각종 주거 ·상업지역 으로 둘러싸이게 되는데, 과연 이때에도 화약성능을 시험하는 곳으로 계속 남게 되겠느냐고 어민들은 의심하는 것이다.

건설부의 91년도 업무보고에 따르면 오는 2001년까지 모두 3억7천3백만 평의 공유수면이 매립된다. 약 10조5천억 원의 사업비가 들어가며 이 결과 국토면적은 37% 가량 늘어나게 된다. 해양 전문가들은 이 대목에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국토면적이 느는 대신 생산성이 먼 바다의 l4~20배, 대륙붕의 5~10배가 높고, 어류 및 조류의 서식지일 뿐 아니라 홍수조절과 오염물질 여과기능도 갖는 귀중한 자원인 갯벌이 그만큼 없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 이다.

정부는 이러한 갯벌을 포함한 공유수면 매립사업을 계속 확대, 2010년까지 18억 평을 메운다는 장기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소래포구의 문제는 이 같은 과정에서 생겨나고 있는 하나의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매립사업이 앞으로 어민이나 생태계 보호보다 지역개발과 사업자의 이익 쪽에 기울어져 추진된다면 더 큰 ‘소래’가 끊이지 않을 것이고 머지않은 장래에 국민 적인 후회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