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과 소련 관계 일지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1.04.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소관계는 고르바초프의 등장 이후 급속하게 발전해왔다. 그는 86년 블라디보스토크 선언과 88년 크라스노야르스크 선언을 통해 한국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88년 서울올림픽은 관계발전의 큰 전기가 됐다. 이때부터 양국간에 경제협력과 인적·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졌다. 89년 4월 무역사무소 교환개설에 합의하고 90년 2월 영사처를 개설하면서 양국관계는 제도화 단계에 돌입했다. 이후 지난해 3월 당시 김영삼 민자당 최고위원의 방소, 6월 사상 최초의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 9월 역사적인 국교수립, 12월 모스크바 정상회담 등 약1년 사이에 양국관계는 숨가쁘게 발전해왔다.

 한·소관계가 이렇게 급속하게 가까워지는 동안 북한·소련관계는 상대적으로 소원해졌다. 역사적으로 북한의 대소외교는 항상 대중국관계와의 관련 속에서 이루어졌다. 북한은 정권 창립기에는 소련과의 관계를,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중국과의 관계를 발전시켰다. 소련에서 스탈린 격하운동이 전개될 당시에는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했다가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일어났을 때는 소련과 가까워졌다.

 61년 5월과 65년 2월 소련 최고위 간부로는 처음으로 코시긴 당시 소련총리가 북한을 방문했다. 이후 70년대 들어 북한의 대중·소외교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가 83년 한·중·일 동맹체제가 구축되면서 소련과의 군사적 밀착을 강화했다.

 한편 통일원에서 발간된 《북한개요 ’91》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수상시절이던 1949년 2월22일, 56년 6·10월, 57년 11월, 59년 1월, 61년 6·10월, 66년 5월, 84년 5월, 87년 5월 등 11차례에 걸쳐 소련을 방문한 바 있다.

 고르바초프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소련관계는 소련의 노선변화, 한·소접근 등을 이유로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올해부터 소련이 대북 무역관계를 경화(국제무역에서 통용되는 화폐)로 결제하기로 한 것은 북한경제에 심각한 위협요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당시 소련 외무장관이었던 셰바르드나제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 주석이 접견을 거부한 것은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북한은 소련과의 관계악화를 중국과의 동맹체제 강화 및 대일 수교교섭을 통해 극복하려해왔다.

 올해 들어와서는 북한·소련관계에서도 지난해의 험악했던 관계를 청산하고 조심스럽게 서로의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