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일 공휴일제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1.04.1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기초의회 선거일은 임시공휴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55%의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선 투표일 휴무제를 계속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임시공휴일 양산으로 사회·경제적 손실이 커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찬.  한정일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전 건국대 사회과학대학장. 건국대 정외과 졸.

● 투표일 공휴일제를 찬성하는 이유는?
 투표일을 휴무일로 정한 본래 취지는 유권자들을 좀더 많이 선거에 참여시키기 위해서다. 이번 기초의회선거의 투표율이 저조하다고 해서 휴무제를 없애야 한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투표율이 낮았던 것은 다른 의도가 개입됐기 때문이다. 사전에 충분한 홍보없이 정부가 전격적으로 선거를 치른 것도 잘못이고, 공명선거라는 이름 아래 선거 분위기를 딱딱하게 만든 정부의 일방적인 홍보태도도 그릇된 것이다. 특히 텔레비전 등 언론 매체가 정부의 방침에 동의하는 학자들의 주장만 반영한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 광역의회선거·단체장선거·14대 총선·차기 대통령선거까지 합치면 앞으로 2년 동안 5차례의 선거를 하게 된다. 투표일을 임시공휴일로 할 경우 생산성 저하 등 국가경제에 끼치는 악영향이 크다는 주장이 있다.
 선거를 자주 치르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유권자의 자질을 높이고 올바른 선거풍토를 자리잡게 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기업의 생산성 저하도 고려해야 할 사안이기도 하나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다. 지자제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지역 주민, 즉 유권자의 ‘참여’다. 투표일 휴무제를 택하지 않아도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보장된다면 모르지만, 유권자를 최대한 선거에 참여토록 하는 방법은 역시 휴무제다.

● 이번 시·군·구기초의회 선거일도 공휴일이었다. 하지만 투표율은 55.0%에 머물렀다. 선거일은 휴무일로 한 탓에 오히려 투표율이 저조한 것 아니냐 하는 분석도 있는데.
 공휴일이라 많은 유권자들이 놀러갔고, 그래서 기권자가 많았다는 것은 전혀 논리에 맞지 않는다. 본말이 바뀐 해석이다. 우리는 이제 처음 기초의회선거를 치렀다. 한번밖에 안해보고 이렇다저렇다 말이 많은 것은 조급한 판단이다. 더욱이 이번 선거는 정부가 여러 상황을 왜곡한 선거였다. 겉으로는 자유로운 공명선거라고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 ‘동토선거’나 다름없었다. 휴무일이었기 때문에 투표율이 낮았다고 보는 시각 자체가 이미 정부의 그릇된 홍보에 물든 것이다. 만약 휴무제를 폐지한다면 그나마 낮은 투표율이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다음 광역의회 선거 때부터 휴무제를 폐지한다면 정부는 제도적으로 투표행위를 막는다는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 프랑스나 미국 등 외국에서는 투표일을 휴무일로 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선거를 치른 경험이 많고 국민의식도 높아졌다. 따라서 선진국처럼 투표일을 공휴일로 따로 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
 외국의 선거제도는 각양각색이다. 외국의 경우를 무조건 기준으로 삼게 되면 ‘식자우환’ 꼴이 된다. 미국이나 독일 같은 나라는 각 州마다 선거형태가 다르다. 각 나라의 고유한 상황을 무시한 채 외국의 경우를 우리나라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려는 것은 외국의 경우를 핑계삼아 악용하려는 저의가 있다고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 과거 투표일 공휴일제는 집권세력에 의해 자기에게 유리한 지지기반을 동원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전례가 있다. 지금도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집권세력이 마음만 먹는다면, 관권선거는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히려 선거에 대한 무관심을 부채질하고 동토선거를 만드는 게 집권세력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는 어떻게 개선돼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선거야말로 정치적인 행위다. 국회의원선거만 정치성을 띠고 지방의회선거는 정치성을 띠면 안된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 지방의회선거는 행정행위가 아닌 정치행위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기초의회 의원선거에도 정당의 개입을 허용했어야 했다. 기초의회야말로 정치의 훈련장이기 때문이다. 그점을 무시하고 정부와 일부세력이 분위기를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했다. 광역의회선거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면 곤란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자유로운 선거여야 한다. 투표는 주권자의 선택행위이며,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후보자 얼굴도 모르고 투표하는 것을 말도 안된다.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할 만한 최소한의 홍보와 시간이 있어야 한다. 둘째 투표는 지역 주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므로 유권자도 자기의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반.  조창현 한양대 교수. 지방자치연구소장. 전 한양대 행정대학원장. 연세대 법학과 졸.

● 투표일 공휴일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1948년 5월10일 제헌국회 의원선거 투표일은 임시공휴일이었다. 그 당시 투표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한 배경을 알아야 한다. 당초 정했던 투표일은 5월9일 일요일이었다. 그러나 일요일에 투표할 수 없다는 기독교계의 반대에 부딪혀 투표일을 그 다음날인 5월10일로 바꾸고 그 날을 임시공휴일로 정한 것이다. 게다가 제헌국회 의원선거는 우리 역사상 처음 실시하는 선거였기 때문에 투표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할만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80%에 달했다. 유권자들이 아라비아 숫자를 읽지 못해 막대기 숫자로 후보자의 기호를 표기하는 시절이었으니 투표일을 휴무일로 정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후 우리는 13번의 국회의원선거를 비롯해 많은 선거를 치렀다. 유네스코 보고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2%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다. 이처럼 교육수준이 높은 나라에서 투표일을 휴무일로 하는 예는 없는 것으로 안다.

● 사회·경제적 손실 문제도 공휴일제를 반대하는 주요 논거 중의 하나다. 하지만 투표율이 낮은 것을 고려해볼 때, 국민의 정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공휴일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앞으로 우리는 광역의회·기초자치단체장·광역자치단체장 선거 등 지방선거, 14대 총선, 대통령선거 등을 잇따라 치러야 한다. 6공화국의 임기내에서만 매년 거의 한번 내지는 두 번의 선거를 치러야 하게끔 돼 있다. 선거와 관련된 사무를 한꺼번에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번 시·군·구기초의회 의원선거도 광역의회 의원선거와 동시에 실시되지 못했다. 그러니 지방의회·자치단체장·국회의원·대통령 선거를 한꺼번에 실시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우리 정치 일정상 잦은 선거가 불가피하다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예사롭게 선거를 치를 수 있는 각오와 훈련이 필요하다. 투표일을 계속 휴무일로 할 경우 1년에 한두번씩 사회적으로 엄청난 노동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개인사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거라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려는, 정치에 참여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선거는 일상생활에 타격을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연스럽게 치러져야 한다. 굳이 투표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주권행사 행위가 생활화돼야 할 필요도 있는 것 아닌가.

● 1960년 12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때의 투표율 38.3%를 제외하면 이번 기초의회선거 투표율 55.0%는 사상 최저다. 공휴일제를 폐지하면 투표율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데.
 과거 집권세력은 자기 자치세력을 동원해 쉽게 이기려고, 즉 선거결과에 유리한 영향을 끼치도록 하기 위해 투표일을 휴무일로 정했다. 투표 당일의 날씨가 어떨지 미리 조사하는 일도 있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는 그런 선거풍토에서 벗어날 때가 됐고, 또 특정 정파의 정략이 쉽게 먹혀들지 않는 사회가 됐다. ‘동원정치’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오직 주권의 귀함과 신성함을 아끼는 유권자만이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정도다. 유권자 의식이 중요한 것이지, 투표일을 공휴일로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 국민의 정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공휴일제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사람도 많다. 공휴일제를 폐지하더라도 유권자의 투표율을 높일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이 있는가?
 투표는 주권을 행사하는 행위다. 그리고 투표율은 주권을 가지 유권자가 자기주권을 행사할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사실 투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여분도 안된다. 선진국에서는 투표 당일 유권자가 투표소에 가서 투표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에 한해 각자의 직장에서 이를 양해하도록 돼 있다. 그것은 새삼스럽게 지적할 필요도 없는 관례다. 그 정도의 관례를 만드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 아닌가. 휴무를 해야만 투표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불합리한 주장이다.

● 우리나라의 선거풍토와 관련해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 한 표를 행사한다’는 투표행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유권자가 좀더 명확하게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투표일에 일을 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국가에서 투표가 얼마나 중요한 행위인가를 유권자들에게 정확하게 인식시키는 일이다. 투표 행위의 의미와 중요성을 계도하는 시민교육이 더 시급한 사안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