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석유시장 주무르기
  • 조동성(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 승인 1991.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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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프전쟁 이후 국제적인 세력균형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단극화 체계로 결정되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어렵게 얻은 모처럼의 국제적 지도력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남겨놓고 있다. 특히 국제적 관심을 끄는 부분은 미국의 석유정책이다. 미국의 영향력이 강화된 만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위상에도 변화가 생겼고, 이에 따라 미국의 유가관리정책도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짐작할 수 있는 미국의 정책으로는 중동경제를 부활시키기 위한 고유가정책을 들 수 있다. 전쟁으로 파괴된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복구에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바, 전후복구 문제를 승전국의 입장인 미국이 외면한다면 또다시 정국이 불안해지게 될 요인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만일 자국경제, 나아가 세계경제의 단기적인 회복을 더욱 가치있는 것으로 판단할 경우 미국은 유가상승을 되도록 억제하는 저유가정책을 쓸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다.

석유수출국기구 위상 하락
 지난 2월20일 부시 행정부는 국가에너지전략(NES ?the National Energy Strategy)을 발표했다. 그것의 목적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고도의 에너지 관리기술을 개발하며, 에너지 공급부족에 대한 미국의 적응력을 높이는 것이다. 국가에너지전략은 미국 국내 석유생산량을 2010년까지 하루 3백80만배럴로 증가시키고 천연가스의 생산과 소비도 증가시켜 장기적으로 석유, 특히 중동의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에너지 부족에 대비, 미국의 산업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핵발전소 등 대체에너지를 개발?활용하는 데 필요한 연구개발비용을 파격적으로 늘리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또한 고속전철의 도입, 태양에너지의 활용, 전기를 이용한 운송수단의 개발 등을 통해 구조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결국 미 국가에너지전략의 내용은 근본적으로 에너지에 관한 한 외부의 영향을 극소화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까지 ‘유가관리’라는 표현을 쓸 정도의 직접적인 행동을 보인 적이 없다. 미국의 에너지부는 대체에너지개발 등의 활동을 하는 부서이지 유가에 대해 직접 개입하는 부서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단기적?구체적으로 미국이 석유시장에서 어떤 직접적인 행동을 취하겠다는 계획을 천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세계석유시장에서 석유수출국기구가 차지하고 있던 위상이 변함없으리라고 말할 수는 없다. 미국이 석유수출국기구의 영향을 덜 받게 된다면 그것은 곧 이 기구의 힘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미국의 정책이 성공을 거둘수록 석유수출국기구는 미국의 석유생산 관리단체로 전략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것은 에너지차원 이전에 종교적?정치적 문제들을 모두 미국의 의도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할 때 가능한 것이다. 여하튼 미국의 정책이 석유시장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이 시점에서 미국이 어떠한 유가정책을 쓸 것인가에 대해 예상을 하고 이에 대비하는것은 어렵고도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저유가 정책으로 귀착할 듯
 현재로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대안은 미국이 자국의 경기를 살리기 위한 정책을 우선적으로 세우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부시의 지위를 유지 강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미국은 그 지위를 바탕으로 세계경제 부흥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다는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미국이 어떤 정책을 세울 것인지에 대한 예측은 두가지 측면에서 고려해보아야 한다. 그 한가지는 걸프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함으써 유가가 단기적으로는 안정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분위기에서 다소 자신있는 정책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고, 또 한가지는 중동의 불안이 전쟁으로 현실화된 사례가 남게 됨으로써 장래에 대한 불안이 좀더 가시화되었고 이에 대비하는 보다 구조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정책결정자는 최근의 변화에 따라 나타난 현재의 낙관적인 상황과 당위론적으로 희구하는 장래의 바람직한 모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현재 얻게 된 미국의 리더십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유지 강화할 것인가, 그리고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긴장완화정책을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기조의 기본방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역시 국내경기의 활성화와 세계경제의 회복을 위한 저유가정책으로 귀착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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