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못판다” 4재벌 사연과 속셈
  • 김재일 차장ㆍ장영희 기자 ()
  • 승인 199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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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새재 도립공원. 경칩이 훨씬 지났는데도 주흘산 자락에는 혹독한 추위가 맴돌고 있다. 제1관문에서 3관문까지 가는 길 양 옆으로 침엽수림이 울창하다. 삼림지대가 눈앞에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해발 6백50m 지점에 ‘대성탄좌 조령산업備林 특수영업구’란 대형간판이 서 있다. “정부가 땅을 반강제로 사라고 해놓고 이젠 팔라니 넋을 잃을 지경이다”라고 대성탄좌문경임무소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대성탄좌는 문경지구 7백만평과 안동지구 1천만평 등 1천7백만평에 대한 정부의 매각지시를 거부하고 있다. 대성탄좌측은 이땅의 보유가 ‘5ㆍ8조치’의 기본정신에 어느 것 하나 위배되는 사항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우선 이땅은 60년대말~80년초까지 정부의 강력한 권유로 사들였다고 주장한다. 삼림청의 ‘산업비림소유명령’에 다라 문제의 땅을 억지로 떠맡다시피해 여태까지 조림을 잘해왔다는 것이다. 대성탄좌는 74년 우수 篤林家법인으로 선정됐고 88년 대통령 표창장을 받았다. 安一 그룹기획담당이사는 “이땅을 팔라는 것은 회사 문을 닫으라는 것과 같다. 사형선고다. 사원들은 직장을 잃게 된다. 이땅은 삼림업을 영위할수 있는 최소 규모다. 우리는 상장회사인데 선의의피해를 보는 주주들은 또 어쩌란 말인가”라며 구제를 호소했다.

89년 봄 거센 노동쟁의로 문경탄광이 폐쇄된 이후 대성탄좌의 주업은 삼림업이다. 대성측은 지난해 4월말에는 탄광의 자산(16억원)을 정리하고 있었으며 6월말로 정리를 모두 끝냈다고 밝힌다. 지난해 10월에 개정된 법인세법 시행규칙(18조9항)은 주업종을 총수입(매출액) 금액이 큰 것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신관리 규정에 따르면 이땅은 비업무용이지만, 법인세법상으로는 업무용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이땅은 여전히 팔아야 할 대상이다. 지난해 4월 말을 기준으로 비업무용으로 판정됐기 때문이다.

대성은 행정소송 등 법적 호소는 마지막 수단일 뿐이라고 강조하면서 관계요로에 시정을 호소하고 있다. 대성은 지난 5일 대출금(당좌대월 한도기준) 22억원을 갚아버렸고 지급보증도 전혀 없어 금융상의 제재조치는 받지 않았다. 현재 이땅의 시가는 평당 4백원 남짓이다. 1천7백만편의 땅값은 대충 68억원으로 추산된다.

정부의 비업무용 땅 매각 방침에 반발하고 있는 재벌은 대성그룹만이 아니다. 한진은 제주도의 제동목장, 롯데는 서울 시천동의 제2롯데월드 부지, 현대는 서울 역삼동 사옥부지를 팔지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어느 편이 이길 것인가. 세인의 관심은 이4개 재벌과 정부의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쏠려 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5ㆍ8조치는 부동산투기와 땅값폭등에 대해 여론이 악화될 대로 악화됨에 따라 체제수호 차원에서 취해진 ‘고단위 처방’이었다. 재벌이 비업무용 땅 강제매각과 관련, 5ㆍ8조치 입안 실무 책임자였던 강봉균 경제기획원차관보는 당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흐지부지된다면 정부는 변명의 여기자 없게 된다. 청와대에 특별대책반이 설치됐다는 것은 대통령이 책임진다는 말과 같다”고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단순히 재벌들이 4건의 땅을 매각하느냐 안하느냐는 문제 이상의 상징성을 갖는다. 정부가 스스로의 체통을 세우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업무용으로 판정된 땅을 매각시켜야 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초강경 카드’앞에 관련 재벌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부 제재조치 별효과 없어
그러면 재벌은 왜 정부의 제재조치를 무릅쓰고 버티는가. 우선 이 고비를 넘긴 다음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피려는 심산일 수가 있다.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처음에는 추상같던 부동산대책들이 시간이 가면서 흐물흐물해져 형체를 찾을 수 없을 정도가 돼왔기 때문이다. 재벌들의 치열한 눈치작전은 땅 매각 마감시한인 3월4일에 24개 재벌이 무더기로 매각대상 땅을 성업공사에 위탁한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재벌들은 청와대 지시라는 거역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순응하는 척하는 ‘성의’를 보였으나 심기가 편할 리 없다. 공개입찰 등 성업공사 매각방식에 따를 경우 시가의 절반도 못받아낼 공산이 큰 데다가 매매차익의 80%를 세금으로 물고 나머지는 은행대출금을 갚아야 한다. 손에 들어오는 돈 없이 금싸라기 땅을 읽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제재내용이란 것이 따지고 보면 별게아니다. 매각하지 않은 땅의 기준가격에 해당하는 은행대출금에 19%의 연체이자를 적용하면 현행 이자율보다 6.5~9% 포인트 높은 이자를 내면 된다. 지급보증 최고요율도 1.5%에서 2.25%로 높아질 뿐이다. 여신중단 조처가 취해진다 해도 제1금융권에서만 대출을 받지 못할 뿐이며 그룹 전체가 아닌 개별기업에 국한돼 있다. 그룹내 다른 회사에서 끌어다쓰면 그만이다. 이러한 제재수단을 버티기작전으로 나오는 재벌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이 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재벌들이 매각대상 땅을 팔지 않음으로써 얻는 손익은 어떻게 계산될까. 그리고 그들이 버티는 논리는 무엇인가. 한진그룹의 제주도 제동목장 4백51만평은 지난 72년 약 18억원에 매입한 것이다. 당시 황무지에 불과하던 땅에 20년 동안 총 2백10억여원을 투자해 지금의 목장으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한진측은 밝혔다. 현재 제동목장에는 직원 1백20명이 소 2천8백여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3억여원. 현지인들은 이땅의 시가가 평당 2만원은 족히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따지면 한진이 매각하지 않고 있는 3백90만평의 시가는 7백80억원에 이른다. 한진의 한 직원은 매입시부터 지가상승률과 투자액을 감안한 목장의 기준금액(취득가액에 건설부 발표 지가변동률을 곱한 것)을 3백억원 정도로 추산했다. 제동목장의 은행대출금 총액은 지난 2월말 현재 기준금액의 10분의 1도 안되는 24억4천만원. 연리 19%의 연체 이자율을 적용하면 4억6천여만원이다. 1년에 기껏해야 2억2천만원 정도를 지금보다 더 내면 된다.

그러나 제재조치로 인한 손익을 따지기 전에 한진측이 정작 억울해 하는 사정은 다른데 있다. 우선 주력업종인 목축업보다 광업으로 인한 매출액이 더 많다는 이유로 내린 정부의 비업무용 판정에 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한 간부는 “축산업의 적자보전을 위해 부업으로 석회석 광업에 참여한 것이다. 89년12월 은행감독원은 업무용으로 판정했는데 90년4월 개정된 관계세법에 코가 꿴 꼴이 됐다”고 불평했다.

더구나 제동목장은 정부의 권유로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투자하면서 가꾸어온 사업인데 지금와서 비업무용이라며서 매각하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목장을 경영하는 제동흥산은 지난 76년 축산진흥의 공로로 최각규 당시 농수산부장관의 표창장을 받았다. “최각규씨가 언제는 잘했다고 표창까지 하고서 지금은 경제기획원 장관으로서 같은 땅의 매각을 강요하는 총책의 자리에 있다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 결여와 더불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한진의 한 간부는 말했다. 그는 현단계에서 제동목장을 팔 수 없다는 것이 회사의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롯데와 현대의 경우는 입장이 조금 다르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 롯데월드 부지는 관심을 모으고 있는 땅이다. 롯데는 88년 1월 서울시 체비지 입찰에서 1천24억원이란 낙찰가로 이땅을 불하받았다. ‘1개월내 현금상환이면 20% 할인’이라는 조항을 이행해 8백19억원에 사들였다. 취득세 등록세를 합쳐 취득가총액은 8백65억원이 들어간 셈이다. 이땅은 롯데물산 호텔롯데 롯데쇼핑 등 3개사가 공동소유하고 있다. 당시 단독입찰 등으로 특혜가 아니냐 하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롯데측은 5천억원을 들여 이땅에 33층짜리 관광호텔과 면세점 백화점 씨월드(해양관광시설) 식물원 등 복합건물을 세워 한국판 디즈니랜드를 만든다는 화려한 구상을 갖고 있다.

“이런 대규모 사업이 1년내에 진행되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애초에 사업기간이 88년 1월부터 95년6월까지였고 올 하반기 착공이 목표였다”며 현행 비업무용 땅 판정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이 회사 관계자는 주장했다. 롯데는 이땅을 불하받은 후 88년8월 재무부의 ‘외국인투자인가’를 받았으며 이후 내무부에서 이 사업에 대한 토지취득허가를 받았다. 이 사업에는 국내 3개 회사외에도 (주)롯데 등 5개 일본회사와 로베스트 에지라는 스위스회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미 이들이 송금한 돈만 해도 5백억여원에 이르고 있는데 지금와서 추진이 안된다면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라고 롯데측은 말한다.

롯데는 서울시에 사업계획심의서를 보내 인가절차를 밟았으나 교통체증 유발 등의 이유로 그동안 3차례 반려됐다. 롯데의 한 가부는 “서울시의 권유사항을 반영하면서 사업을 추진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된 것이다. 지금와서 땅을 팔고 계획을 백지화하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며 땅을 계속 보유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인근 부동산업자인 ㅂ씨는 “이곳 땅값은 평당 적게 보아 2천만원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총 5천3백34억원이 된다”고 말한다. 이땅의 취득가액이 8백65억원이고 88년1월부터 현재까지의 지가변동률이 2백64%이므로 기준금액은 2천2백84억원이다. 그러나 이땅의 소유회사인 3개사의 대출금은 4백억원. 기준금액이 많아도 금융상 제재는 대출금을 넘지 않으므로 4백억원에 대한 불이익을 당하면 그만이다. 연체이자(연19%)를 적용하면 연간 30억원 정도 더 내면 된다.

현대의 경우는 또 다르다. 서울 강남구 지하철 역삼역 4거리에 테헤란로와 도곡동 들어가는 길을 끼고 있는 약 4천평의 직사각형 땅이 현대의 사옥부지다. 예전에 밭이었던 부지에는 옥수수대 등이 말라비틀어진 채 서 있다. 땅 한쪽켠에는 “당 부지는 현대산업개발(주)의 소유로서 이부지에 있는 무허가 농작물과 가설물은 앞으로 24시간 이내에 즉시 수확 또는 철거해야 하며 이 시한 내에 수확 또는 철거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항은 불법행위자에게 그 책임이 있음을 경고합니다”라는 다소 위협적인 내용이 적힌 팻말이 박혀 있다.

현대는 이땅을 86년4월 토지개발공사(토개공)로부터 약 1백74억원에 사들였다. 현대측은 비업무용 판정에 대해 매입 직후부터 사옥건축을 추진해왔으나 교통환경ㆍ고도제한 등을 이유로 수도권정비심의위원회에서 3번씩이나 퇴짜를 놨지 회사가 투기목적으로 놀린 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건설부에 따르면 이 부지는 86년1월을 기준으로 90년말에는 값이 3배로 뛰었다. 즉 이땅의 기준금액은 5백52억원이다. 현대산업개발의 현재 은행대출금 총액은 기준금액의 절반도 안되는 2백44억원. 연체이자율을 적용하면 1년에 지금보다 22억원을 더 내면 된다. 주변의 한 부동산업자는 이 땅의 시가를 평당 4천만원 정도로 추산했다. 총 1천6백억원으로 매입시보다 약 10배가 오른 셈이다.

무절제한 땅투기로 인한 ‘자업자득’
현대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다. 토개공이 이 부지의 강제환수 통보를 해왔기 때문이다. 토개공은 3년이란 기간을 명시하고 용도를 지정해서 땅을 공급했는데 현대는 그기간뿐 아니라 1년간의 유예기간도 넘기면서 사업을 시행하지 못했으므로 계약해지 사유가 성립된다고 주장한다. 정부와 토개공의 협공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측의 공식적인 입장은 ‘매각보류’다. 처음의 ‘매각 절대불가’에서 후퇴한 것이다. 포기할지 안할지는 아직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고 앞으로 상황의 흐름을 살펴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李龍萬 은행감독원장은 “필요하다면 다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처분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할 방침이다”라고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제재 조치로 재벌의 마음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고 여신중단 조치라야 그룹 전체에 대해 취해지지 않는 한 별 효과가 없다.

5ㆍ8조치는 처음부터 어느 정도 무리수였으나 통치권의 누수에 대해 신경이 곤두서 있는 정부는 어떻게 하든 끝장을 봐야 하는 입장이다. 관련 재벌들은 이번 사안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설득력있게 버티고 있다. 그러나 현재 그들의 고충은 예전의 무절제한 땅투기로 인한 ‘자업자득’이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정부의 조치는 적법성 문제의 차원을 떠나 악화된 여론을 등에 업고 재벌의 도의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초부터 48대기업의 총 보유부동산가격 17조6천억원(89년 기준) 중 6%에도 못미치는 1조원에 해당하는 토지가 비업무용으로 판정된 데 대해 재벌을 봐준다는 여론이 비등했던 터다. 이제 국민이 주시하는 가운데 정부와 재벌의 한판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정부가 물러서기에는 여론의 부담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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