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假面도 벗기자
  • 김동선 (편집국장 대우) ()
  • 승인 1993.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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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서열 밖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유사 권력이야말로 투명한 정치를 막아 세상을 혼탁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세태를 풍자한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가 인기다. 가사가 곱씹을수록 맛이 있고, 가수의 노래 부르는 표정도 가사만큼이나 재미있다. 그 노래를 부른 탤런트 신신애는 가수로 전업할 것을 고려중이라니 그 노래의 폭발적 인기를 짐작케 한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잘난 사람 잘난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대로 산다/…/내말 좀 들어라/여기도 짜가/저기도 짜가/짜가가 판친다/…”

 이 유행가 가사의 감칠맛은 무엇보다도 가짜를 ‘짜가’로 표현한데 있다. 가짜가 워낙 판치고 있으니 가짜라는 말로는 대중을 사로잡을 수 없기 때문에 가짜를 짜가로 바꿨을 것이다.

 우리 현실이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가 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권력과 돈 때문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검은 권력과 검은 돈의 지배를 받다 보니 세상 천지가 온통 ‘짜가 세상’이 된 것이다.

금융실명제는 ‘짜가 세상’ 청산하는 신호탄

 그러나 실명제 전격 실시로 이제 검은 돈이 지배하는 시대는 끝났고, 세상도 투명해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교묘한 수단이 개발돼 검은 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검은 돈이 지배하는 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됐다. 그래서 실명제 실시 하나만으로도 김영삼 정부를 개혁은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후유증을 극복하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지만, 실명제 실시가 ‘짜가 세상’을 청산하는 청신호가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실명제를 실시하는 것만으로 우리 사회가 과연 투명해질 수 있을까.

 노태우 정권 때까지만 해도 정치권에서 ‘실세’니 ‘실력자’니 하는 말이 공공연하게 사용되었다. 물론 요즘의 정치 기사에서도 실세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지만,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는 대통령의 권력과 버금가는 실세들이 존재했다. 공교롭게도 그 시대를 풍미했던 실세 두 사람이 지금은 감옥에 갇혀 있어 ‘인생지사 새옹지마’임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실세의 권력이란 게 최고 권력자와 지근 거리에 있으면서 ‘독대’를 자주함으로써 나온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들의 권력이란 왕조 시대 환관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역사가 저물면 회상이 남는다는 말이 있지만, 실세의 권력이란 역사가 저물어도 회상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거세당한 남자들인 환관들의 권력이란 게 무슨 가치가 있었던가.

 여기서 秦나라 최고 실력자 趙高의 운명을 한번 살펴보자. 그는 거세당한 남자로서 시황제의 환관 우두머리였다. 중국 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한 시황제는 오직 여색에 탐닉하며 불로장생을 꿈꾸었다. 그래서 시황제는 24시간 자신을 보살피는 조고 이외에는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시황제는 殿舍만도 2백70동이나 되는 으리으리한 궁궐 속에서 미녀들과 조고만 상대했지 신하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결재 서류는 조고가 운반했고, 따라서 나중엔 조고가 “이게 조서요”했고 그러다 보니 환관 조고가 ‘類似皇帝’가 돼 버렸다. 말하자면 기원전 210년경에 중국대륙에 가짜 황제가 나타난 것이다.

권력 행사에도 이름표 달아야
 그러나 나라가 이 판국이 되면 오래갈 수 없는 일. 조고는 시황제가 죽자 그 죽음도 한동안 숨기며 칙서를 위조해 시황제의 장남을 제치고 막내 胡亥를 등극시켜 놓고 12명의 공자와 10명의 공녀, 그리고 모든 중신과 그 가족은 물론 노복들까지 처형해 버린다. 그리고 이 피비린내 나는 숙청은 민심을 이반시켜 진나라는 창업 15년 만에 유방의 손에 넘어가 버렸다. 가짜 황제 때문에 나라가 멸망한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환관은 황제가 지근 거리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자주 실력자로 등장했다. 조고처럼 ‘유사 황제’는 되지 못했다 할지라도 검은 장막 속에서 권력을 행사한 예는 수없이 많다. 따라서 권력 서열 밖에서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환관이나 할 짓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유사 권력이야말로 세상을 가장 혼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명제 실시로 검은 돈의 흐름은 차단됐지만, 8·12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역겨운 정치 행태는 어떻게 청산할 수 있을까. 물론 실명제가 정치에서도 투명한 효과를 가져 오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옛 시대의 그 더러운 관행과 악습에 물든 정치인들이 과연 투명한 정치를 해낼 수 있을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속담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현재 정치권에서는 ‘새정치’를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여기도 짜가/저기도 짜가’라는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온통 정치인들의 얼굴만 떠오르는 것이 비단 필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실명제 실시는 개혁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돈에 이름표를 달듯이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얼굴에서도 진면목을 드러내는 것이 개혁의 종착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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