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성 분출하는 ‘무서운 아이들’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3.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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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가 주장하는 첫 신세대론 출간…“새 가치 창출 능력 지녔다”

신세대에 의한 신세대를 위한, 최초의 본격적 신세대론 《신세대 : 네 멋대로 해라》가 현실문화연구 출판사에서 나왔다. 스스로를 ‘문화적 사건을 기획, 제작하는 프로덕션’이라고 소개하는 ‘미메시스’ 동인들이 공동 집필한 이 책은 매우 도전적이고 급진적이며 또한 선동적이다. 기성의 가치관·제도·사회를 비판할 때 이들은 도전적이고, 새로운 인간과 사회를 주창할 때 이 신세대론은 급진적이며, 신세대들을 불러모을 때 이들은 선동적이다. 인간 역사 권력 자본주의 성 가족 교육 등 도처에다 이들은 ‘논쟁점’을 설치하고 있다.

 그간의 신세대 논의는 주로 언론에서 앞서 나갔는데, 오렌지족과 같은 특수한 하위 문화를 조명하거나, 영상 세대·컴퓨터 세대라는 매체적 측면, 아니면 록 카페나 홍대앞과 같은 새로운 풍속에다 카메라를 들이댔거니와, 거의 모두가 신세대(문화)를 어른의 위치에서 나무라기만 했다. 신세대를 ‘물려받은 풍요를 거침없이 누리는, 종말론적인 철부지’라고 불렀던 것이다.

 지금까지 기성 사회는 신세대의 발언과 귀를 기울지 않았다. 신세대 또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표되는 대중문화 또는 연예인들이 그들의 몇 안되는 변호인단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최근 ‘서태지와 아이들’이 두 번째 음반 <하여가>를 내자, 신세대들은 발매 20여일 만에 50만 장을 사버렸다. 연대감의 표현이었고, 그것은 동시에 기성세대를 향한 항의 표시였을지도 모르다.

신세대의 목소리 들어본 적 있는가
 신세대는 그들의 ‘적’으로 삼고 있는 구세대와는 전혀 다른 정치·사회·경제·문화적 경험을 통과한 세대들이다. 그들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생을 마감할 세대이며, 이미지 시대의 소비자들이고, 컴퓨터와 대중음악 및 텔레비전을 통해 세계적인 시야를 갖고 있는 전례가 없는 세대이다. 이 책의 편집인인 엄 혁씨(미술 평론가)는 “우리가 당면할 사회적 불협화음은 경제적 맥락에서 인식되는 계급 갈등보다는 문화적 혹은 세대 간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더 심각할 수 있다”면서 그들을 인정하든 하지 않든 신세대를 주목해야 하는 배경을 다음과 같이 들었다.

 “사실 우리는 신세대를 모른다. 그들에게서 노출된 ‘욕망의 육체와 정신’이 무엇을 지시하는지, 어디를 지향하는지 알지 못한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생물학적 관계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감수성과 이미지를 재단하고 처벌하려고 했다. 이 신세대론이 그들을 이해하는 방편으로만 활용되기보다는 ‘우리’와 ‘그들’ 그리고 동시대 문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신세대인 미메시스가 주창하는 신세대론의 핵심 개념은 ‘사회적 개인’ ‘미래가 아닌 지금·여기’ ‘서로의 믿음에 바탕을 둔 인간 교류’ ‘자유’ 등이다. 그들은 이와 같은 신세대의 새로운 세상을 위해 컴퓨터 프리랜서 광고 미니스커트 대중음악 영화 비디오 인종문제 같은 소재를 통해 욕망 광기 열정 사랑 성 삶 콤플렉스 죽음 자유 소외 노동 놀이 시간 신화 종교 등 모든 문제를 감성적 접근법으로 들춰낸다. 이 접근은 감성의 혁명과 감성을 실천하기 위한 분석인데, 이 과정에서 그들은 신세대를 주어로 하여 자기네 생각이 얼마나 포괄적이고 근본적이며 무시할 수 없는 능력을 소유했는지를 구세대에게 펼쳐 보인다.

 이 때의 펼침은, 자기네를 철없는 아이들로 보는 기성세대에 대한 설득이나 부탁의 언어가 아니다. 이들이 최고의 음악인(3J)중 하나로 꼽는 짐 모리슨의 묘비명-‘더이상 탄원은 없다. 돌파하라’-이 이들의 행동 강령이다.

 신세대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구세대의 오물을 쓸어내고 시간과 공간의 교차점에서 형성된 새로운 소우주라고 극찬한다. 그들이 보기에 서태지는 ‘20세기의 가장 창조적인 아티스트 가운데 한사람’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리하여 인간의 아름다움과 진실, 열정과 파워, 에너지와 스피드, 자유와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 역사가 철학자 과학자 혁명가로 그들에게 비친다(82쪽 기사 참조).

 “자유와 열정으로 넘쳐나며 서로의 벽을 무너뜨리는 인간적인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는 순간 이 비인간적인 사회를 유지하는 질서는 복될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비인간적 사회 속의 인간이란, 이들의 눈에는 계획의 노예, 시간의 노예, 상식과 질서의 노예, 상품의 노예, 미래의 노예로 보인다. 각 개인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며 자유롭게 자기 삶을 결정하는 사회 속의 개인이 이들이 특히 힘주어 말하는 ‘자유로운 사회적 개인’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전형인 자유로운 개인과 레닌주의의 사회적 개인이 ‘양자 요동’(양자 통합이 아니라 순간순간 양자가 서로 뒤바뀌는)하는 개념이다. 이들은 자유로운 사회적 개인이 열린 마음으로 서로 교류하는, 감성적 활동이 뿌리내린 사회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 신세대론은, 결국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며 확신이다. 따라서 이들은, 신세대가 그 주인공이 될 ‘새로운 인간’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가족 학교 결혼 성 광고 신화 예술 종교는 물론 국가까지도 거부하는 급진적 성향을 나타낸다. 영화 <서편제>의 판소리보다 3J의 한 사람인 제니스 조플린의 노래를 더 좋아한다. <서편제>와 서태지를 놓고 이들은 이렇게 외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아니다. 가장 세계적인 것이 한국적인 것이다”라고.

 미니스커트의 사회심리학을 분석하면서 이들은 대학가의 급속한 변화에 주목한다. 89년에 불붙었던 이른바 ‘미니스커트 논쟁’은 신세대와 구세대 가치관의 일대 접전이었다. 미니스커트가 신세대였다면, 미니스커트를 반대하는 ‘도서관파’는 구세대의 지배 질서에 가장먼저 편입된 부류였다고 이들은 보았다. 미니스커트가 대변하는 신세대는 ‘표현하지 않는 감성에 대한 증오’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미니스커트라는 기호 속에도 이중성이 있어서, 상품화되어 버린 개성의 빈곤을 읽는 한편으로 ‘억압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의지, 다름아닌 삶의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있는 모든 억압·구속에 대한 승리가 이들 신세대의 최후 목적지이다. 그 승리의 선지자들을 이들은 대중음악의 선구자들, 예컨대 전지구를 무대로 자율적인 대중예술 활동을 처음으로 현실화한 비틀즈로부터 60년대의 지미 헨드릭스를 포함하는 3J와 우드스톡 축제, 그리고 히피운동에서 찾는다. 반문명·반전을 기치로 내걸었던 60년대 미국의 대중음악은 ‘싸워서 얻는 자유’를 노래했을 뿐만 아니라, 전자 기타가 개발되면서 전지구인이 하나의 노래를 공유하는 대중음악의 시대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굳이 60년대의 구조주의와 형식주의 그리고 포스트모던주의의 이론과 직접적인 연관은 맺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마르크시즘을 옹호하면서도 맹목적인 추종자와 무지한 비판자 양측으로부터 마르크스를 구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소외의 원인을 추적하면서, 마르크스의 소외는 그것이 ‘사회적 범주이지 인간 본질에 뿌리내린 존재론적 범주가 아니었음’에 주목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칸트·헤겔·마르크스·다윈·프로이트의 후예라고 밝힌다.

“신세대 재단할 잣대가 없다”
 90년대의 신세대는 60년대의 동승동, 70년대의 신촌, 80년대의 대학 문화와는 판이하다. 엄 혁씨는 구세대와 신세대의 특성을 각각 하모니(이성) 대 비트(감성문화), 오리지널(창조) 대 짜깁기(모방미학), 원색(강한 주체의식) 대 파스텔색(중성적 주체의식)으로 대비한다. 이같은 비교말고도 90년대 신세대는, 이전의 신세대가 좌파로부터는 지지를 받았지만, 현 신세대는 진보진영으로부터도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또 구별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엄씨는 “해체의 방법론으로 볼 때 신세대들은 우리의 고정관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가치 창출이라는 혁명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신세대를 재단할 잣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미메시스의 《신세대…》는 공격적이다. 매우 급진적인 선언문인 것이다. 이제 ‘첫 출정가’를 부르는 이 신세대론이 과연 생산적인 신세대 논쟁을 견인해 나갈 것인지, 보수·진보 양쪽으로부터 ‘돌’을 맞을 것인지, 아니면 그냥 무시당하고 마는 것은 아닌지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또, 무엇보다 이 신세대론에 대한 신세대 자신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李文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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