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 편집국 ()
  • 승인 1992.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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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아시아개발은행 가입하나

 사회주의적 폐쇄성을 고집해온 북한도 최소한 경제면에서는 폐쇄성을 벗어나려는 여러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및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접촉을 여러번 시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개발은행(ADB)의 가입요건을 수차 문의했고, 유엔개발계획(UNDP)과 '두만강지역 개발계획' 회의를 개최했다. 5월 초에는 흥콩의 아시아개발은행 25차 연차총회에 앞서 북한의 고위층이 아시아개발은행에 가입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북한은 오랜 경제 침체를 타개하기 위하여 외국자본과 선진기술 도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엔개발계획의 주도로 두만강지역 개발계획이 원만히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유엔개발계획은 자금동원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아시아개발은행과 같은 다국간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외자를 도입해야 계획대로 실행할 수 있음을 최소한 북한의 대외경제 전문가들은 실감하고 있으리라고 본다. 북한이 아시아개발은행에 가입하려면 대내외적으로 선결하여야 할 몇가지 문제가 있다. 대내외적으로는 우선 아시아개발은행의 회원국으로서 이 기구가 요청하는 경제사회 통계와 정보를 공개하여야 한다. 또 아시아개발은행의 융자와 기술원조를 받자면 차관사업과 관련된 문제를 놓고 대화하고 협의할 의무가 따른다. 간단한 생산 통계마저 상황에 따라 통제하여 온 북한이 전반적인 경제통계와 정보를 밖으로 쉽게 공개할지 의문이다. 북한 당국이 정책을 두고 국제기관과 대화하고 조정하는 것을 어느 정도나 수용할 수 있을지도 속단하기 어렵다.

가입해도 개방 않으면 '회원 권익' 어려워…우리가 도와야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한다 하더라도 대외적인 요건 또한 만만하다고 볼 수 없다. 신규 가입에 대해 아시아개발은행 회원국들의 동의를 얻으려면 출자지분율이 높은 선진 각국의 지지를 얻어야한다. 아시아를 중요시하는 일본의 입장은 북한의 가입에 유동적이라고 치더라도 구미 제국의 입장은 북한이 국제적 이미지를 개선하지 않는 한 지지하는 데 소극적일 공산이 크다. 설사 북한의 가입이 의결된다고 하더라도, 구미 회원국은 근년에 아시아개발은행에서 일부 개발도상 회원국에 취한 태도에 비추어 상징적인 대북한 기술협력사업은 동의하더라도 큰 규모의 대북차관사업은 쉽게 승인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천안문사건 이후 중국의 차관요청에 아시아개발은행의 집행부서는 업무실적을 올리기 위하여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였으나, 이사회의 소수 구미 선진국은 인권문제를 이유로 인도주의적인 투자사업 이외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 바 있다. 오랜 회원국인 베트남도 통일 이후 개방화정책을 추구하면서 아시아개발은행 융자를 희망하나 미국과 관계개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한건의 융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에 비추어 북한의 가입이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아시아개발은행으로부터 조건이 좋은 외자를 도입하자면 풀어야할 실마리가 너무나 복잡하다고 하겠다.


물론 당이 결심하면 북한은 이러한 대내외적인 문제를 단기간에 모두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의 가입에는 최소한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북한은 오늘날까지 고집하여 온 폐쇄성으로 국제차관의 정치경제학에 익숙하지 못하여 아시아개발은행 가입과 이에 따르는 혜택에 대하여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여기는 감이 없지 않다. 근래 회원국이 된 몽고와 남태평양 도서 국가들은 아시아개발은행의 한정된 재원을 도입하기 희망하는 다른 개도국들과의 경쟁에서 설득력이 있는 투자사업계획을 작성하고 소화할 능력이 없어 회원국의 권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투자계획을 작성할 능력과 내자를 동원하고 외자를 소화할 능력이야말로 북한이 아시아개발은행에 가입하기 앞서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건이다.


우리나라는 아시아개발은행에서 오래 전부터 12개 이사국의 하나로 활약하여 왔고, 이미 차관국에서 졸업하여 대외원조 공여국 대열에 서있다. 따라서 고위급 남북회담이 서서히 진전을 보이는 이즈음 남북관계 개선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의 아시아개발은행 가입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급격한 남북교류가 체제유지에 위협을 준다고 느끼는 북한에 대해 직접 협조보다는 국제기관을 통하여 관계개선과 이해증진을 도모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대북한경제협력은 아시아개발은행과 같은 국제 금융기관에 공동참여해 북한의 거부감을 줄이며 위험의 분산을 꾀할 수 있겠다. 우리로서는 아시아개발은행에 대한 북한의 접근을 주시하며 대국적 견지에서 가능한 한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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