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터질 것만 같은'전쟁 백화점'
  • 모스크바.김종일(자유 기고가) ()
  • 승인 1993.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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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 지역, 소련 붕괴 이후 인종.종교 갈등 분출…강대국 개입 땐 사태 악화

 '코카서스는 전쟁 백화점'. 코카서스 산맥을 끼고 벌어지는 이 지역의 분쟁을 이보다 더 적절히 표현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현지에서 카프카스라고 부르는 이 지역은 다양한 인종과 종교와 이에 따르는 언어 문화 관습 그리고 관점 차이 때문에 걸핏하면 씨족 간의 다툼이 벌어져 왔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 이런 작은 다툼은 민족과 종교의 이름을 내세운 무자비한 살육전으로 변했다.

무기상들에게 더없이 좋은 고객
 이런 저런 이유로 카프카스는 탈냉전 이후 무기상들에게 더없이 좋은 고객이 되고 있으며, 중앙아시아의 화약고로 등장하고 있다. 옐친 대통령의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고위 관계자를 현지에 급파하는 등 갖은 노력을 하고 있으나, 여러 민족이 얽히고 설킨 채 각자의 주권과 종교만 내세우고 있어 러시아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의 말이다.

 그 단적이 예가 아제르바이잔 사태이다. 아제르바이잔 사태의 불씨는 아베르바이잔 영토 안에 있는 나고르노 카라바흐 자치공화국에서부터 비롯됐다. 나고르노 카라바흐 자치공화국 인구의 90% 이상이 기독교도인 아르메니아인이며 나머지가 회교도인 나고르노 카라바흐인이다. 종교와 인종을 달리하는 양쪽은 4백여년 동안 보이지 않는 민족.종교 갈등을 겪어왔다. 그러다 소련이란 거대한 통제자가 사라지자 상황이 급변했다.

 이 다툼은 회교 공화국이 아제르바이잔과 기독교 공화국인 아르메니아와의 분쟁으로 번져 지난 4년여 동안 끝없는 살상과 파괴가 계속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의 아불파스 엘치베이 대통령은 전쟁 패배와 경제난 등으로 고전해 오다 게이다르 알리예프 최고회의 의장에게 축출당했다.

 알리예프 의장은 67~69년 아제르바이잔의 KGB 의장을 역임한 공산 보수파 출신이며, 의장이 되기 직전까지 아불파스 엘치베이 대통령과 권력을 다퉈 왔던 인물이다. 알이예프 의장은 초기에 전권을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6월21일 반란군을 실제로 지휘하고 있는 수라트 구세이노프 소장은 엘치베이 대통령이 고향으로 잠적함에 따른 정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전권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었다고 선언함으로써 아제르바이잔이 내전 국면에 놓였다.

 실각당한 아불파스 엘치베이 대통령은 그간 미국과 인접 회교국을 넘나들며 미국에서는 경제원조를, 터키를 중심으로 하는 회교국가들에게서는 관계증진을 모색해 오다 끝내 이렇다할 어떤 것도 받아내지 못한 채 축출됐다.

 아제르바이잔 사회문제연구소 아크메드 가쉬미 소장은 최근 러시아 RIA통신과의 인터뷰에서"현재의 사태가 국민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점에 관해 아제르바이잔 최고회의측도 동의했다"라고 말했다.

 한편 인접한 기독교 국가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에서 벌어지는 최근의 사태를 남의 일로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르메니아와 터키의 국경 사이에 있는 아제르바이잔 영토인 나히체반 자치공화국 때문이다(지도 참조). 아르메니아의'악성 종양'이라 일컬어지는 이곳은, 회교계인 아제르바이잔의 영토인데 실각된 엘치베이 대통령과 알리예프의장의 고향이기도 하다. 아르메니아측은 아제르바이잔의 내전이 나히체반으로 번질 경우에 대비해 24시간 경계하고 있다. 만약 분쟁이 확대될 경우 지난 4년여 끌어왔던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민족 분규는 불안한 휴전에서 다시 불붙는 전쟁으로 확대될 게 뻔하다.

중동에 이어 새로운 화약고로
 아르메니아와 같은 기독교 국가이면서 카프카스 내 최고의 알부자 나라인 그루지야의 앞날도 그다지 밝지 못하다. 국민적 영웅이며 옛 공화국 대통령인 감사후르지야와 현 대통령이자 국제적인 인물인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와의 사이가 극도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제르바이잔 사태에 고무받은 감사후르지야측은 전열을 재점검해 정권 재창출을 꾀하고 있다고 격월간지 《카프카스》의 한 기자가 밝혔다.

 또한 그루지야 영토 안에 있는 압하스 자치공화국과 남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의 끊임없는 독립 요구도 그루지야 입장에서 볼 때는 셰바르드나제와 감사후르지야 간의 권력 다툼만큼이나 커다란 골칫거리다. 압하스에서는 이미 3년6개월 동안 분리 독립 전쟁이 지속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그루지야 공군이 미그기를 동원해 압하스 내의 러시아인 집단 거주지를 무차별 폭격함으로써 러시아 정부측으로부터 전에 볼 수 없었던 강한 비난과 견제를 받았다. 러시아는 만약 분쟁이 생기면 자동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걸어 놓았다.

 남오세티야와 북오세티야는 같은 회교 자치공화국으로 서로 통일을 원하고 있다.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오세티야가 그루지야로부터 독립해야 하고, 북오세티야는 러시아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남오세티야는 구루지야와 소모전을 계속하고 있다. 또 북오세티야는 러시아와 분쟁을 일으키자마자 러시아가 3만명의 공수 병력을 투입해 전세가 환연히 기울어지면서 주춤한 상태이다.

 체첸 역시 양대 민족인 체첸족과 잉구시족이 서로 다른 정부를 구성하기를 원하고 있으나 조카르 두다예프 대통령이 무력으로 제압하고 있다고 러시아 텔레비전과 신문은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두다예프 대통령의 제1 정적이자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는 젊은 야라기 마모다예프(40)는'두다예프 제거'발언을 서슴치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잉구시 종합 대학의 아지예봐 마지나 교수는 국면이 악화될 경우 두다예프 대통령의 호전적인 성격으로 미루어 한 차례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여하튼 카프카스 지역이 중도에 이어 새로운 화약고로 지목되는 이유는 △무기를 사들이기에 충분한 석유를 갖고 있고 △가로로 누운 코카서스 산맥을 무대로 한 산악전이 벌어질 경우 전세가 쉽게 판가름 날 수 없으며 △각 민족이 자신들의 공동체 생활을 고집하고 있어 종족 간의 분쟁이 끊임없이 계속될 수 있다.

 또한 기독교 공화국인 그루지야와 아르메니아가 회교국들에 둘러싸여 있어 회교공영권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다. 끝내는 아제르바이잔처럼 공산수구 세력이 회교 세력과 결탁하여 정권 획득에 성공함으로써 다른 국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투르드>의 한 기자는 러시아가 개입하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며 유엔의 분쟁 조정도 기대할 바 못된다"고 지적한 뒤"국제적인 경제 원조가 선행 조건이며, 강대국들이 제국주의적 망상으로 카르카스를 자기 영향권 밑에 두려 하면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유고에서의 참상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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