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대신 ‘자유’ 찾는 신자유주의 시대 반항아들
  • 파리 · 류재화 통신원 ()
  • 승인 2006.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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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학생들, 새 고용계약법 ‘실력 저지’ 성공

 
지난 4월10일 황소고집을 부리던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총리가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  최초고용계약법(CPE·20인 이상 사업장의 기업주가 26세 미만 고용인을 채용할 경우, 첫 2년 동안은 정당한 이유 없이도 해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을 사실상 철회한 것이다.

이로써 위기로 치닫던 프랑스는 일단 진정 국면에 들어선 듯 보인다. 그러나 대학가는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기보다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신중히 후반전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철폐’ ‘폐지’라는 단어가 공식화되지 않은 새 고용법이 산 채로 매장되었으니 언제 되살아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총리의 ‘항복 문서’가 나온 다음 날인 4월11일에도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가두 시위 및 집회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시위대 규모는 훨씬 줄었다. 2천여 명 학생들만이 도시 중심가에서  허울뿐인 ‘기회 균등’ 법률안의 완전 철폐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대학들은 일제히 총회를 갖고 수업 재개와 관련해 찬반 투표를 했다. 상당수 대학들은 교문을 묶어놓았던 쇠사슬을 걷어내고, 건물 입구마다 층층이 쌓아놓은 책상과 걸상 바리케이드를 치움으로써 수업에 복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몇몇 대학들은 여전히 수업 거부를 결정한 상태다.

마지막 고삐를 당겨 최초고용계약법의 맏형 격인 신고용계약(CNE·CPE와 마찬가지이나 20인 이하 사업장에 해당) 및 곧 제정될 이민법 철회 투쟁까지 얻어내자는 강경파들과, 명분은 건졌으니 옥쇄 전투로 만족하고 이 선에서 멈추자는 현실적 온건파로 반고용법 진영도 세가 양분되고 있는 셈이다.

국회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의원들은 집권당(UMP)이 지난 4월11일 제출한, CPE를 대체할 새 법안 검토에 이미 들어갔다. 대화 및 협상 창구도 훨씬 더 활짝 열렸다. 이번 전국 시위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일약 스타로 떠오른 좌파 계열의 학생 노조 프랑스전국대학생연합(UNEF) 의장 브뤼노 쥘리아르도 토론 탁자에 합류했다. 정부와 집권당, 야당인 사회당 파트너들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제정하게 될 대체 법안에는 상대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업장의 16~25세 청년 고용인들을 위한 여러 보호 조항을 상정하고 있다. 가령 고용 첫해에는 한 달에 4백 유로(약 47만원)선을, 둘째 해에는 2백 유로 선을 국가가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전세계적 경제 지배 논리인 영미식 신자유주의에 이미 익숙한 나라들에게 프랑스 젊은이들의 저항은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게을러터진 개구리들, 변화를 두려워하는 겁쟁이들, 과잉 보호를 받아 계속 달라고만 요구하는 철부지들, 과거의 환상만 좇는 시대 부적응자들. 이런 표현을 들이대며 앵글로색슨계 보수 언론들은 프랑스 특유의 현상을 비꼬았다.

아시아 등에 주로 기사를 송출하는 미국 CNN의 한 기자는 더욱 불리한 계약 조건에도 순응하며 장시간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아시아인들에게 프랑스 젊은이들의 시위 양상은 거의 ‘이국적’이기까지 하다고 비난했다.

논란 와중에도 기업가들은 침묵 일관

신자유주의 관점에서는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는 권리를 고용주에게 줌으로써 고용주가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려는 의지를 갖게 하고, 그럼으로써 노동 시장이 유연해지고, 실업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웨덴, 독일, 영국 등 이미 최초고용법 형태의 기간제 계약을 통해 실업률을 훨씬 떨어뜨린 성공 사례도 수없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유연성’보다는 ‘안전성’을 도모해온 프랑스식
 
국가사회 복지주의 경제 모델에 이미 길들여진 프랑스인들에게는 이 노동 유연화 정책이 사주들에게만 유리한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다. 프랑스 젊은이 70% 이상이 안정적인 공기업에 채용되기를 희망할 정도로 고용 안정성은 이들에게 절대 원칙이다. 2년 쓰고 버려질 소모품 같은 운명인데, 무슨 희망을 가지고 일하겠느냐는 것이다. 프랑스 젊은이들은 ‘시장’ ‘경쟁’이라는 단어를 무서워하면서도 강한 확신을 갖고 혐오한다. 그것은 결코 행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 시장의 흐름을 자유 시장 논리에 맡기는 대신, 국가가 나서서 법으로 정하고 규제하는 것도 프랑스식 사회경제 모델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기업이 고용자를 정당한 동기 없이 해고해야 하는 경우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되었다. 재미 있는 것은 최초고용법 논쟁이 기업주들의 이해 관계와 직결된 중대 사안인데도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기업인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달 넘게 공방전을 벌이는 동안에도 텔레비전의 뉴스 및 토론 프로그램에서 기업인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경제 분석가, 경제 전문 기자들의 논평 또한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자들의 마이크는 정당과 노조 및 학생운동 대표들에게로만 향해 있었다. ‘프랑스를 움직이는 것은 집권당과 CGT(노동총동맹)당, 길거리당’이라는 농담 아닌 진담이 나올 정도였다.

단순히 반고용법 투쟁 때문에 전 국민이 길거리로 뛰쳐나온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인들은 지난해 유럽연합 헌법안도 울트라리버럴리즘(극단적 자유주의)의 전령이라며 보기 좋게 퇴짜를 놓았다. 하지만 프랑스 경제는 ‘델로칼리자시옹(delo calisation:산업 시설 해외 이전)’의 위기에다 아시아 및 동유럽의 값싼 노동력이 프랑스를 침투해 들어오고, 청년 실업률은 더욱 높아지는 등 악화일로에 있었다. 특히 파리 방리외(외곽)에 모여 있는 이민자 빈민 청년들의 실업률은 60%에 육박했다. 지난해 11월
 
파리 방리외 폭동 사태는 프랑스에 몇 대째 살면서도 아프리카인으로, 아랍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이 소외자들의 응축된 절망과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다. 이런 와중에 2007년 대선을 의식하여 마음이 다급해진 드 빌팽 총리가 독단적으로 작성한 고용계약법을 국민 앞에 휘둘렀으니, 민심의 불타는 가슴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프랑스인들은 ‘혁명’만 할 줄 알지 ‘개혁’은 할 줄 모른다는 힐난이 나올 정도로 우파 정권의 잇단 개혁은 제대로 성공한 것이 없다. ‘개혁주의’는 흔히 강자가 약자한테 희생을 강요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여기고 있다. 프랑스 젊은이들은 왜 자신들만이 희생되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실업의 고통을 체험하지 않았던 68 혁명 세대들은 자유와 반권위를 위해 길거리로 나섰지만, 이제 그들의 자식들은 2006년 무엇을 위해 길거리에서 싸우는가. 순발력과 적응력, 근면성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이 세계화 시대에 프랑스 젊은이들은 너무 느리고, 안일한 것일까. 시대가 바뀐 줄 모르고 과거 유산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철부지들이라며 혀를 차는 ‘젊은 세대 혐오’ 증후군도 지금 프랑스에서는 퍼져 있다. 야만적 자본주의를 향해 저항하는 젊은 투사들, 이들을 도리어 보수주의자, 전통주의자로 부르는 혼돈이 프랑스에서 빚어지고 있는 것은 순전히 시대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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