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발식’탈피, 전문화 전환할 때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2.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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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환경 변화 '다각화' 경영은 수익성국제경쟁력에 불리

 
삼성전자 부천공장 인사부에 근무하는 金宣植씨(29)는 회사가 지어준 사내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그는 매일 아침 삼성이 만든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깨고, 계열사가 만든 전기밥통이 지어놓은 밥을 꺼내먹는다. 김씨는 삼성그룹이 만든 양복을 입고 출근한다. 계열 신문사가 발생하는 신문을 사들고 퇴근하고, 계열회사가 만든 텔레비전 수상기를 보다가 잠든다. 주말이면 잔혹 쇼핑을 하러 서울로 나가기도 하지만 형제회사인 신세계백화점이나 동방플라자를 벗어나진 않는다.

김씨의 일상사는 삼성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정작 그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이 사례는 재벌이 참여하는 업종이 얼마나 넓은지를 잘 말해준다. 공정거래법에 의해 지정된 대규모 기업집단은 87년 32개 집안 5백9개사에서 올해에는 78개 집단 1천56개사로 늘어났다. 물론 이것은 경제규모의 확대에 따른 당연한 추세하고 할 수 있다. 그러나 30대 기업 집단만은 놓고볼 때도 계열회사의 수가 84년에 2백58개사에서 올해에는 5백74개사로 늘어났다. 이것은 재벌들이 이 기간 동안 여러 업종에 새롭게 참여해왔음을 잘 보여준다.

재벌에 대해서 상반된 시각이 존재하듯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 혹은 다각화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 재벌에 호의적인 사람들은 김씨의 예보다는 오늘날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한국의 대기업이 생산한 제품들이 일상생활의 일부가 돼버린 전형적인 미국인의 예를 들기를 좋아한다. (리처드 스티어즈제라르도 엉슨신유근 지음 《한국의 재벌》).

그들은 "한국의 경제적 성공에는 이른바 재벌이라고 불리는 한국 대기업집단의 핵심적 역할이 숨어 있다"고 판단한다. 반편에 재벌의 다각화에 대한 전번적인 평가는 부정적이다.

 

“4~6개 업종 참여가 가장 위험하지 않다."

올해 3월 둘째주에 발행된 영국의 유력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석유화학제품에 대한 수요증가율이 둔화되는 데도 불구하고 삼성과 현대라는 두 재벌의 참여로 한국의 석유화학 관련업체가 13개로 늘어난 예를 들면서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은 '나도주의(Metooism)'의 소산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견해차이 에도 불고하고 문어발식으로 확장해온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효율적이지 않다는 명확한 근거는 없었다. 재벌에 대한 비난이 공정한 것인지를 판가름 할 이런 실증분석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건국대 催廷杓 교수(경제학과)는 재미있는 분석을 한다. "연구자들은 실증분석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연구주제가 민감하기 때문에 연구를 하려들지 않는다. 어떤 분석이든 시각이 다른 연구자들로부터 꼬투리를 잡히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대기업이 여러 업종에 진출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라고 알려져왔다. 동시에 여러 업종에 참여하고 있으면 설령 한 업종의 경기가 나빠지거나 사양화되더라도 괜찮다는 것이다. 현대 그룹이 현대중공업을 세우게 된 것은 건설업에 전념하는 데서 오는 위험부담 때문이었다. 기아그룹 역시 한 업종만 참여하고 있어 운영자금의 회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투자재원에 여유가 생기면 유통업에 진출하려는 강한 의욕을 갖고 있다. 요즘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하고자 하는 선경그룹이나 코오롱그룹도 같은 이유 때문에 다각화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산업연구원이 발행한 <대기업집단의 효율성 분석>이라는 논문은 이 동기에 입각한 재벌의 경영다각화 전략이 효과적이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우리나라의 30대 기업은 대개 10개 이상의 업종에 참여(19개의 업종분류에 따르면)하고 있다. 이 연구는 기업이 1~3개, 4~6개, 7~11개 업종에 참여한 경우의 위험 분산효과를 측정했다. 결과는 4~6개 업종에 참여한 기업집단의 위험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어발식 확장으로는 위험을 줄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를 진행한 梁元根 연구위원은 "연구결과는 산업환경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재벌은 더 이상 다각화를 통해 위험을 분산시키지 못하며, 정부정책이나 시장여건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한국의 산업이 짧은 기간에 발전해왔기 때분에 사람이나 돈과 같은 자원을 쉽게 구할 수 있던 재벌들은 많은 업종에 진출하더라고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그러나 지금은 산업환경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어서 전처럼 여러 업종에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중요산업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과 세계의 일류기업을 비교해보면 왜 재벌이 계열사 가운데 내실있는 소수의 기업을 키우지 않으면 안되는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전자자동차와 석유화학산업에서 한국 대기업들의 매출액은 세계일류기업의 4~10%에 불과하며, 자기자본비율(총자본에서 자기자본이 차지하는 비율)도 대체로 취약한 형편이다.

작년 중반 연세대 鄭求鉉 교수(경영학)가 발표한 <한국기업의 다각화 전략과 국제경쟁력>이라는 글도 비슷한 결과를 제시했다. 우리나라 재벌은 선진국 기업에 비해 다각화 경향이 높으며, 특히 비관련 다각화 전략을 많이 추구해왔다. 기업집단의 84~89년의 자료를 기준으로 할 때 전문화된 기업집단이 다각화된 집단보다 수익성이나 성장성이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화된 기업은 수출이나 직접투자도 많이 해서 다 국제화되어 있으며 국제경쟁력도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는 74~84년의 결과와는 크게 다르다. 정교수는 "이같은 결과가 80년대 후반 이후의 달라진 기업환경을 반영한 것인지는 추가로 연구해봐야 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지난 4월29일 李龍萬 재무부 장관이 전경련회관에서 한 연설내용도 이같은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그는 "산업의 초기개발단계에서는 대규모 기업집단이 비관련산업으로 문어발식으로 확장한 것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됐지만 성숙단계에서는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하면서 업종전문화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여신관리제도 개편을 통한 업종전문화 정책도 이런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30대 재벌을 중심으로 주력업체 3개를 정하여 이 업체에 대해서는 여신규제를 해제해서 전문화를 유도한다는 것이 이 제도의 골자이다. 그동안 이 제도에 대해서는 재벌의 업종전문화를 유도한다는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경제력 집중을 더욱 심회시킨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주력업체를 3개로 한정하는 대신 주력업체와 업종이 비슷한 업체는 그 수에 상관없이 주력업종으로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업종전문화 정책을 개편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비난과는 달리 경영다각화는 대기업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의 孔柄淏연구위원은 "한국의 대기업은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 여러 업종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선진국과 달리 관련기업이 육성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다른 중소기업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다각화하는 것이 훨씬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문어발식 확장전략이 어쩔 수 없는 대안이었다는 사실은 한국과 대만의 신발산업에서도 입증된다고 지적한다. "향국의 신발산업은 거의 비슷한 환경에서 출발했다. 대만은 이미근처에 홍콩 이라는 국제항구가 있어 무역에 익숙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중소기업 위주의 신발산업 구조가 정착되었다. 반면에 한국은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발제조업체가 관련산업에 모두 참여하는 대기업으로 발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논리에 따른면 정부가 펴야 할 정책은 재벌의 문어발식 다각화 전략을 유발한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된다. 기업이 자유롭게 어떤 산업에 진입하거나 그 분야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주야 한다는 것이다. 석유화학 산업에 때한 과잉투자로 참여기업들이 피해를 입는다면 해당기업들은 앞으로는 스스로 깨닫고 몸을 사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 기업이 최대의 이윤을 남기면서 생존해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분야에 참여하는 '다각화'와 '재벌화'와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지적은 귀담아들어야 한다. 최정표 교수는 "재벌 총수가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위하여 기업을 늘려가는 것은 다각화로 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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