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도보통지’는 민족문화의 정화
  • 편집국 ()
  • 승인 1991.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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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무예논쟁 / 무예인 임동규씨, 육태안씨 주장에 반론 제기
다음 글은 수벽치기 전수자 육태안씨의 투고 “중국무술 베낀 무예도보통지”(본지 65호 73면)에 대한 林東圭씨의 반론이다. 육씨는 위 투고에서 본지 63호(1월3일자) 전통무예 관련기사 가운데 “《무예도보통지》를 근거로 한 18기·24반무예가 전통무예”라는 내용을 반박했다. 육씨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 임씨는 현재 광주에서 ‘민족무예도장 경당’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 편집자 주>

 민족문화 유산의 정화라고 일컫는 고려청자가 중국 송나라 자기의 모방이었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모방으로 시작했으되 중국 것을 능가, 우리의 민족문화를 대표한는 세계적 명기로서 명성이 드높다. 창조한 지난날의 기반 위에 한걸음씩 전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는 서로 교류되기 마련이다.

 조선왕조 정조 14년(1790)에 완성된 《무예도보통지》는 중국의 《기효신서》나 《무비지》를 모전으로 하여 중국무예, 우리의 전통무예, 일본의 무예를 집대성한 동양무예의 정화이며 결정판이다. 다시 말해 《기효신서》나 《무비지》를 막연히 베낀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과 체질에 맞게 새롭게 창조함으로써 그 이론적·기술적 수준을 현저하게 고양시킨 것이다. 즉 《무예도보통지》는 동양 삼국의 최정예가 격돌했던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2백여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속에서 국왕을 비롯하여 당대의 일류 명사와 재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민족문화 유산의 정화이다.

24반무예는 조선의 ‘정식’ 국방무예
 또한 《무예도보통지》는 圖(그림)와 譜(설명), 총도와 총보를 상세하게 체계화함으로써 그 이론적 수준과 기법의 새로운 창조를 기하고 있어 중국의 《기효신서》《무비지》나 일본의 《三才圖譜》를 훨씬 능가하는 무예서 중의 으뜸이다.

 수벽치기 전수자라고 하는 육태안씨는 자기 무예의 정통성을 부각하기 위하여 민족적 정서가 담겨 있으며, 겨레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온 국방무예로서의 24반무예가 실린 《무예도보통지》에 대해 중국무술을 베꼈고, 우리의 전통무예가 아니라고 강변함으로써 민족문화 유산의 정화를 폄하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수벽치기와 그 ‘형제뻘’인 택견이 민족무예이며, 무형문화재로까지 지정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민간전수로서 은류(隱流)해왔고 《무예도보통지》의 24반무예는 조선왕조가 정식으로 채택한 국방무예이다. 임진왜란 이래 3백년간 왕조의 체제를 수호하고 겨레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문화적·역사적 가치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수벽치기·택견은 민화이고 24반무예는 정규회원이 그린 격조와 세련이 넘치는 그림이라고 하겠다.

 외래문화의 홍수 속에서 잊혀지고 왜곡되는 민족문화 유산을 전승한다는 동료적 입장에서 서로 격려하고 협력하며 공동 대처해가야 할 입장을 잊은 채 수벽치기·택견 이외의 전통무예가 없는 것처럼 호도하는 인격 수준이라면 구태여 논쟁할 가치가 없는 것이지만, 모처럼 대학가를 중심으로 뿌리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는 민족무예 보급운동이 터무니없는 오해로 좌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진실을 밝히고자 할 뿐이다.

 《무예도보통지》를 연구하는 데는 쿵후류의 중국무예를 기반으로 접근하는 방법과 일본무예(검도)를 기반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상정할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24반무예가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복원하는 데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양 무예의 뿌리는 고구려 무예
그런데 ‘경당’ 무예는 본인의 경력이 증명하듯이 《무예도보통지》 이외의 어떠한 무예에도 접근한 예가 없고 순수하게 그 자체만으로 이를 재현한 것이고, 이의 연구과정에서 동양무예의 뿌리는 고구려 무예라는 결론을 얻었다. 중국인들이 고구려로부터 무예를 전수받았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부정했던 것은 고구려에 대한 적개심과 그들의 자존심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동양화 중에는 중국화도 있고 조선화도 있으며 일본화도 있어서 각기 독특한 경지를 열어왔다. 이들간에 유사성이 발견된다고 해서 ‘사대주의’를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동양무예 중 중국·조선·일본무예가 각기 독자적으로 발전해온 것에 대해 문화사상과 사대주의로 귀결될 필연성을 갖는다고 강변할 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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