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만은 갠 날, 여의도는 흐린 날
  • 워싱턴·이석렬특파원 ()
  • 승인 1991.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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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이라크 무력충돌 피할 듯…국내에선 군의료진 파견 놓고 여야 긴장
 페르시아만에 국군 의료진을 파견키로 한 정부의 결정은 새해 벽두부터 정국의 쟁점이 되어 여·야간의 격돌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2월까지 2백명 규모의 군 의료진을 현지에 파견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이 알려진 지난 5일, 평민·민주·민중 등 야권3당은 “군의료진 파견은 간접적인 참전행위로서 전투병력 파병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요지의 성명을 각각 발표하고 1월24일로 예정된 임시국회에서 파병동의안 처리를 저지할 것을 다짐했다.

 알려진 바로는 정부측이 이미 사우디 정부와 주둔지 비용분담 등 구체적인 문제들을 협의중이어서 페르시아만 사태는 이제 한국민에게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 분쟁 당사국인 미국과 이라크 외무장관의 제네바 회동이 성사되어 페르시아만 위기가 대포보다는 대화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9일의 제네바회동을 앞두고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은 “만나서 최후통첩을 재확인하는 것이 내 임무이지 협상을 할 여지란 전혀 없다”고 딱 잡아떼었다. 그러나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은 “미국이 일방적인 통고를 하는 그런 회담이라면 왜 만나겠는가. 모든 문제를 놓고 가닥을 추려나가자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라고 딴 소리를 했다. 아지즈 장관은 또 팔레스타인 인민들이 자유롭게 그들의 나라를 세우고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이라크에게 쿠웨이트 침공을 희석시키고 중동의 맹주임을 과시할 수 있는 一石二鳥의 효과가 있기 때문에 미국은 이를 한사코 거부해오고 있는 터이다.

 하지만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19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아랍의 영토를 강점한데 대해서는 침묵하고 유독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합병’한 일을 두고 문제삼는 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억지라면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포함한 중동의 모든 문제를 이번 기회에 협상의제로 삼자고 마치 자기가 중동의 대표자인 양 기세좋게 나오고 있다.

 최근 프랑스의 주도로 유럽공동체 12개국이 제시한 해결방안이 이라크의 쿠웨이트로부터의 전면 무조건 철수를 골자로 미국이 바그다드를 무력으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마지막으로 중동문제 전체를 국제회의를 열어 협의한다는 내용이고 보면 이라크의 주장이 억지로만은 들리지 않는다.

 에드워드 히드 전 영국총리의 방문시 후세인 대통령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문제 등을 광범하게 다룬다는 확고한 약속을 하면 쿠웨이트로부터 철군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 부시 미국대통령은 전국민에 대한 라디오 방송에서 “1월15일 마감은 유엔결의를 지키라는 것이지 그날 이후 당장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그는 “쿠웨이트에서 완전 철군만 하면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하지 않는다”고 처음으로 이라크에 대한 무력 행사 보류의 뜻을 비치기도 했다.

 타협을 하지 않는다고 겉으로는 큰소리를 치고 있는 미국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후세인의 목을 조를 데까지 조르기 위한 위협적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부시는 작년 10월1일 유엔총회에서 페만 해결을 위한 몇가지 기본입장을 밝힌 일이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미 타협의 여지가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라크와 쿠웨이트간에 분쟁이 있는 유전이나 섬 등에 대해서는 공평한 입장에서 두 나라끼리 협상을 하는 데 동의하고 페만 지역내 국가간의 새로운 질서개편, 특히 핵무기개발문제 등을 국제간 협의를 통해 모색해보라고 제의했던 것이다.

 제네바 회동을 마친 베이커 장관이 사담 후세인을 따로 만나게 될지 아직 모든 것이 유동적이지만 어쨌든 말문이 트인 워싱턴이나 바그다드는 이제부터 열띤 외교공방전을 벌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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