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교류보다 ‘남남 교류’더 시급
  • 박성준, 노순동 기자 ()
  • 승인 2000.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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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없는 각개약진 현실 무시한 상호주의 경계해야

올가을  남한의 영화 팬들은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북한 영화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 기획자들이 몇 년간 벼르고 별러온 북한 영화제가 드디어 10월에 열리기 때문이다. 1회때(1996년)부터 북한영화 상영을 기획한 영화제측이 이번 영화제를 위해 점찍어 놓은 영화는 <내 고향> <신혼부부> <성장의 길에서> <2부작> <춘향전> <꽃 파는 처녀> <피바다>이다. 영화평론가 이효인씨가 낙점한 이들 작품은 한결같이 현대 북한 영화를 대표한다. 이 영화제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개막작을 북한 영화로 내걸겠다고 밝혔다.

봇물 터지는 교류 기획 달라지는 문화 지도
영화 분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영화 배우에서 대북 문화 사업가로 변신해 뉴스 인물로 떠오른 김보애씨(NS21 대표 92쪽 인터뷰 참조)는 지난 6월 평양교예단의 서울 공연을 성사시킨 데 이어 최근에는 MBC와 손자고 이미 북측과 합의된 남북 통일 대중음악제의 서울 답방 공연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빠르면 오는 10월께 열릴 이 음악제는 대강의 논의를 마무리하고 공연 날짜를 확정하는 것만 남겨 놓고 있다.

문단 학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이문구)는 연내 성사를 목표로 작가 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벌써 몇 차례 북측에 학술 교류를 제의한 단군학회(회장 김정배 고려대 총장)는 오는 10월3일 평야에서 열리는 북한 개천제 행사 학술 대회 때 공식 참가하는 방안을 북측과 합의했다.

이들 계획이 예정대로 실현된다면 남북한 교류사에 또 하나 신기원이 열리다. 제 3국이 아닌 한반도에서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아닌 문인 또는 역사학자 들이 그것도 집단적으로 만나 본격 토론을 벌이는 것은 분단이래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분야에서 남북 문화교류 사업의 현 주소를 일러주는 인사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조심스럽다.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기 전에 계획을 발설했다가 번번이 일이 틀어지는 사례를 수없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구체적으로 북한의 어느 쪽과 일을 추진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남북한 공동 학술 대회의 협상 실무를 맡고 있는 최광식 교수(고려대박물관장)는 남한 학자가 참여하는 학술 대회 개최에 원칙적인 합의를 보아다는 것 외에는 어느 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문학 학술 연극 영화 음악 미술 무용은 물로 전통 예술(북한에서는 민족 예술)체육 바둑 그리고 인터넷 교류에 이르기까지 남한의 문화계 전 부문이 남북간 문화 교류 물결로 요동치고 있다. 남북 두 정상이 이른바 6.15 선언을 통해 양측 문화를 서로 교류하자고 합의한 이래 새롭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최근 진행되었거나 추진되고 있는 남북한의 문화 교류는 속도나 범위에서 남한의 문화 지도를 바꾸어 놓을 정도로 폭발적이다. 서울을 다녀간 평양교예단과 조선국립교향악단에 쏟아졌던 남쪽의 높은 호응도는 이같은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문화 교류 대열에 기성 세대는 물론 대학생까지 줄을 잇고 있다는 사실은 다가올 일 중 눈여겨 볼 대목이다.

최근의 남한의 주요 대학 학생들은 북한의 문화 유적을 답사하겠다며 방북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바로 방북신청서를 내지 못하는 까닭은 북한으로부터 공식 초청장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번거로운 절차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방북 신청을 준비하는 학교는 10여 군데에 이른다.

관심을 끄는 문화 교류 사업 가운데는 인터넷 게임도 있다. 세계적 수준인 북한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술을 남한의 잘 발달된 하드웨어 기술과 결합하려는 것이다. (주)하나로통신이 북한의 민족경제협력련합회 산하 삼천리총회사와 손잡고 인터넷 바둑 게임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북한은 세계 최고의 바둑 프로그램 이라고 평가된는 은바둑 프로그램을 이미 개발해 놓았는데 (주)하나로통신측이 이를 인터넷 게임으로 재개발할예정이다.

최근 남북한 문화 교류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말 그대로 봇물 터지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고 대게의 교류가 북한의 문화 상품을  남쪽이 받아들이는 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잡음과 시행착오가 잇따르고 있다.

잡음이 이는 주된 요인은 대부분의 문화 교류 사업이 분기기에 편승하거나 단발성 행사로 진행 되기 때문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6.15선언 이 후 각종 행사를 위한 북한 주민 접촉 신청이 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분위기를 타고 기획된 탓에 현실성 없는 행사가 많다라고 말한다.

일부 언론도 눈꼬리를 매섭게 치켜뜨고 있다. 저쪽에서는 떡 줄 생각을 하지 않는데 이쪽에서는 벌써 김칫국을 들이키고 있다 괜스레 남쪽에서만 호들갑을 떨어 북측의 몸값만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이 이미 이루어지 몇몇 교류 사례를 집중 거론하며 남북 문화 교류 양상이 북한이 주도하고 남쪽이 일방적으로 구애하는 식으로 흐르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일부 언론은 특히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서울 공연을 문제 삼는다. 이 교향악단의 서울 공연은 애초 민간 공연 기획사인 CNA가 북측 창구인 조선 아세아 태평야 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와 손잡고 남북 정상회담 이전부터 추진해온 대형 기획이다. CNA측은 공연 성사를 위해 북측에 이미 100만 달러에 이르는 거금을 쏟아부은 상태였다.

그런데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 이 발생했다. CNA측 계획이 북측의 돌연한 태도 변화에 의해 깨진 반면 똑같은 단체에 대한 KBS의 초청은 받아들여진 것이다. CNA측은 즉각 반발했다. CNA측은 법원에 KBS측 공연에대해 공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비록 가처분 신청 건이 법원에의해 기각되는 바람에KBS 초청 공연은 예정대로 열렸지만 일부 언론은 이 사건을 상업주의와 한건주의가 빚어낸 남북 문화 교류 소동의 표본이라고 질타했다.

미술계에서도 한바탕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지난 8월 중순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단이 서울과 평양을 상호 방문했을 때 서울을 찾은 북한 조선화의 거장 정창모씨의 개인전이 위작 시비에 휘말려 무산된 것이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추진한 정창모 개인전은 당사자인 정씨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전시회에 걸릴 작품에 진품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전시회 취소 소동의 전말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미술계 주변에서 북한에서는 유명 화가의 작품이 못되어 돌아다니다는 매우 기초적인 사실도 확인하지 않은 채 작품을 반입한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문화교류 속도전으로는 안돼
전문가 집단은 이같은 일이 벌어지는 원인과 그 대안에 대해 일부 언론의 논조와는 사뭇 다른 분석과 처방전을 내놓고 있다. 가장 먼저 지목되는 것은 6.15선언 이후 문화 교류 흐름의 변화이다. 민속학자 주강현 박사는 남부한 문화교류방식은 6.15선언을 기점으로 정반대로 뒤집혔다라고 강조한다.

즉 6.15선언 이전 선민후관식 문화 교류에서 6.15선언이후 선관후민으로 역전했다는 것이다. 선민후관식은 문화 교류 상황에서 저마다 사업에 달려들어 일을 벌였다. 바로 그 것이 6.15 선언 이후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이 선관후민으로 바뀜으로써 남북 문화 교류에 혼란을 부채질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남북한의 상이한 체제에 대한 몰이해도 문화 교류에 대한 오해와 시행착오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수요 공급이 균형을 이루어가는 문화 시장을 축구장에 비유하자면 북한은 조기 축구장 수준이지만 남한은 월드컵 경기장 수준이다. 따라서 남한의 문화 수요가 북한에 비해 큰 것은 매우 당연한 현실인데도 이를 상호주의 시각에서만 파악해 부정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실상을 무시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통일연구원 이우영 연구원은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상호주의 시각은 바로 이런 점에서 자칫 남북 문화 교류의 방향을 잘못 끌고 갈 공산이 크다라고주장한다.

현재 남한의 문화계는 분야별로 저마다 다양한 논리와 근거를 내세우며 남북 교류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대중  음악 분야는 사회적 통합력이 높고 비교적 쉽게 교류할 수 있어 이른바 편의성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분야이다. 미술 분야는 건축 공예는 물론 무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형 예술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다. 학술 부문의 경우 단군학회의 움직임에서 감지되듯이 비교적 논란이 적고 공동 연구의 필요성이 많은  그러면서도 민족 동질성을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인 고대사 연구 부문이 우선 교류 대상으로 떠오른다.

문제는 문화인 또는 전문가들 내부에서조차 과연 무엇을 골라 어떤 수준으로  북측과 주고받을 것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문화 교류를 위한 남북 대화에 앞서 원치과 기준과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남남 협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미술 평론가 강성원씨는 남쪽에서 갈팡질팡하는 데에는 교류 문제가 워낙 갑작스러운 현안으로 떠오르게 된 저간의 사정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의지만 강했지 논의를 차분히 진행하지 못해온 우리전문가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음을 통감한다라고 말했다.

남한과 달리 비교적 일사불란하게 문화 교류에 대처해 온 북한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북한은 남한과의 문화 교류에 명분과 실리라는 이중 잣대를 적용해 왔다. 체제 유지를 위한 명분과 실리 둘 가운데 이도 저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남측의 교류 제의는 대부분 묵살했던 것이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북한의 일관된 정책 방향을 알면서도 정부 당국이 마땅한 대응책을 세우지 못한 데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분명한 원칙과 기준을 정하지 못하고 문화인들의 타오르는  교류 욕구에 물꼬를 제대로 터주지 못함으로써 무질서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술계의 경우 지금도 암암리에 속칭 나카마(중개상)들이 문화 교류의 최전방에 나서서 본질을 흐리게 하는 일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최근 들어서야 창구라는 것을 만들었다. 지난 7월 말 문화관광부 실 국장  산하 단체 기관장 분야별 대표성을 띤 민간 인사 등 34명을 구성원으로 하여 발족한 남북문화교류추진위원회가 그것이다. 이위원회는 발족 다음 날인 7월25일 첫 회의를 가진 지 한 달이 넘은 지난 8월25일에야 겨우 2차 회의를 열었다.

남북한 민속학을 연구하고 있는 주강현씨는 이런 식으로는 위원회가 제구실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문화계에서는 북한과 교류할 때 동질성을 먼저 볼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는 등 중요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거니와 이 위원회가 이같은 토론을 정리하고 문화 교류 문제에 원칙과 기준을 정해 줄 수 있을지 심각한 회의가 든다는 것이다.

정부가 문화 교류의 중요성과 그 방법론을 새롭게 인식하지 않는 한 남북 문화 교류에 따른 남한 내부의 혼선 즉 남남 갈등 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의선 복원보다 문화교류가 더욱 까다로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문화는 시간이 걸린다. 다시말해 문화 교류의 궁극적인 목표인 민족 동질성 회보과 정서적 통일 기반 조성은 결코 속도전으로 해결할 수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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