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사회 ‘제3의 길’ 열다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6.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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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연합, 민단·조총련 골 메우며 ‘원 코리아’ 운동 박차

 
지난 3월21일 일본 도쿄 시내에 자리한 마쿠하리 메세 국제전시장에는 일본인 4만여 명과 재일동포 1만여 명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이색 행사가 열렸다. 통일교에서 주관한 ‘천주평화연합 일본대회’였다. 연단에 나선 김봉호 전 국회 부의장이 재일동포 차별의 역사와 사례를 열거하며 일본 정부와 국민의 자성을 촉구하자 일본인 참석자들은 돌연 숙연해졌다. 재일동포들이 모여 앉은 열에서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이날 참석한 재일동포는 평화통일연합 소속 회원들이었다. 이 단체 구말모 회장은 “조국에서 정치인이 일본에 찾아와 이렇게 후련하게 동포의 심정을 대변해준 일은 처음이어서 다들 감정이 북받쳤다”라고 말했다.

짧은 기간에 회원 1만여명 확보

 민단과 조총련으로 상징되는 일본 재일동포 사회에서 그 틈을 비집고 평화통일연합이라는 제3의 단체가 조용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004년 7월 민단과 조총련의 화해협력을 촉진하겠다며 창립된 이 단체는 민단과 조총련에서 이탈한 동포들이 주축이 되어 이끌고 있다. 재일동포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국내에서 옥고를 치른 조총련계 구말모씨가 회장을 맡았다. 또 1970년대 북한 텔레비전에 민족 반역자로 공개 수배될 만큼 물불을 가리지 않고 조총련 와해에 앞장섰던 오사카 출신 민단 고문 황칠복씨가 고문으로 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을 한데 묶은 이는 통일교 문선명 총재였다. 통일교 국내 책임자인 황선조 회장은 “냉전시대에 승공을 기치로 내걸고 활동했던 문총재가 1991년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과  전격 회동한 직후 민족화해와 협력에 관한 11개항의 합의사항을 기반으로 민단과 조총련의 화해 촉진 기구 창설을 주선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초 특정 종교적 색채 때문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보던 주위 예상과 달리 평화통일연합은 삽시간에 일본 전역에서 재일동포 1만 여명을 회원으로 확보했다. 이들이 일본 사회에서 내건 기치는 ‘원코리아 운동’이다. 구말모 회장은 “기존 민단과 조총련이 동포 사회에서 구심점을 잃어가자 수백개 동포 조직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이들이 갈등하면 관동대지진 때처럼 동포들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위기의식 아래 우리는 동포 사회 통합운동을 벌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평화통일연합을 특정 종교 단체가 조직원을 빼내가는 것쯤으로 여기고 경고 서한까지 보냈던 민단과 조총련에서는 이들이 일본 전역에서 재일동포들로부터 바닥 민심을 얻어가자 서로 협력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지난 2월 새로 뽑힌 민단 하병옥 단장은 평화통일연합과도 손잡고 민족화해운동을 펴겠다고 밝혔다. 민단 출신이 많아서인지 이들과 거리를 두려던 조총련 조직은 1991년 김일성 주석과 문선명 총재가 비밀 회동한 포옹 사진이 공개되면서 부정적 태도가 많이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조총련에서는 최근까지도 문-김 회동 사실을 일반 회원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날 행사장에 참석한 조총련 인사는 “6·15 정신에 입각해 일본에서 민족연합체를 만들자는 이 단체의 정신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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