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 우리에게 물어봐”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6.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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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들, 정치 뉴스로 여론 좌지우지 대선 주자들 ‘좋은 뉴스 공급’ 적극 나서

대권 레이스에서 선두권을 질주하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 그의 가장 큰 적은 누구일까? 안정감을 무기로 여전히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고 건 전 총리? 대구·경북(TK) 지역의 확실한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한나라당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박근혜 대표? 이해찬 총리의 사퇴를 관철시키며 ‘몽골기병’의 저력을 확인시켜준 정동영 당의장?

 
아니다. 바로 이명박 자신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의 입이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서울시 봉헌 발언을 시작으로 ‘돈 없이 정치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돈정치 발언을 거쳐 ‘한국이 OECD 국가가 된 것은 미국 덕이다’라는 친미 발언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구설을 생산하고 있는 그의 세치 혀가 지지율을 갉아먹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대목이 있다. 이시장의 입을 적으로 만든 매개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지난 3월16일 오전,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많이 본 기사’ 정치 섹션에는 이명박 시장의 무료 테니스 파동 기사 두 건과 ‘위대한 의자’ 전시회에 이시장 사진을 끼워 넣은 사건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이날만이 아니었다. 이시장에게 불리한 가십 기사는 며칠 동안 계속 올라왔다. 이런 반이명박 기사는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포털 사이트를 탓할 수도 없다. 의도적인 편집이 아니라 클릭 수에 따른 편집이었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누리꾼(네티즌)들에게 ‘반이명박’이 하나의 코드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시장의 해프닝은 숱한 ‘이명박 패러디물’을 낳으며 사이버 공간에 반이명박 정서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 코드가 유의미한 이상 이시장에 대한 가십 기사는 앞으로도 포털 사이트에서 상품성 있는 기사로 계속 오르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포털 사이트 정치 뉴스의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 바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다. 구설을 직접 만들어내는 이시장과 달리, 구설을 직접 만들어내는 이시장과 달리, 박대표는 주변 인물이나 주변 사건에 의해 피해를 보고 있다. 최근 박대표를 ‘미국에 치마폭을 들어 보이는 더러운 창녀야 유신 창녀야’라고 비방한 북한의 시가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주로 주변 인물이 일으킨 문제로 화를 당하고 있다.

한나라당, 곤욕 치른 뒤 대책 마련 나서

대표적인 주변 인물이 바로 박대표의 측근격인 전여옥 의원이다. ‘DJ 치매 발언’을 비롯해 많은 구설을 일으킨 전의원 역시 이시장처럼 누리꾼들의 반응이 뜨거운 편이다. ‘DJ 치매발언’의 경우도 인터넷 뉴스 공급 업체인 <브레이크 뉴스>의 기사가 유포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의원에 대한 누리꾼의 반감이 박대표로 전가되는 양상이다.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는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 역시 누리꾼들의 반박근혜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눈여겨볼 것이 있다. 최의원 사건의 파장이 확장되는 형국이다. 최의원 사건과 관련해 뼈아픈 기사를 가장 많이 쏟아낸 곳은 대표적인 진보 매체인 <민중의 소리>였다. 법사위원장으로서 국가보안법 통과를 지연시킨 최의원에 대해 <민중의 소리>는 동해시를 직접 찾아가 차별화한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이런 <민중의 소리> 기사는 포털 사이트를 통해 곳곳으로 전파되었다.

이처럼 미디어로서 포털 사이트의 영향력이 급부상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 초기 화면에 나오는 기사는 때로 신문 1면 기사나 텔레비전 9시 뉴스에 나오는 보도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네이버 박선영 뉴스팀장은 “포털 뉴스는 특히 의제 설정 기능이 뛰어나다. 지하철 결혼식 등 포털을 통해 대형 이슈가 되는 일이 최근 들어 자주 발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포털 사이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포털 사이트 시작 화면에 오른 기사 때문에 곤욕을 치른 몇몇 한나라당 의원실에서는 포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한 의원 보좌관은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고치려면 이중고에 시달린다. 기사를 공급한 언론사에 연락해야 하고 포털 사이트 관계자도 설득해야 한다. 이슈 전파 속도에 비해 수정 속도는 턱없이 느리다. 당이 제대로 핫라인이라도 구축하고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지난 대선과 총선의 패인을 인터넷에서 찾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왔다. 정치인 팬클럽의 힘을 보여준 ‘노사모’에 필적할 ‘박사모’가 조직되었고, <서프라이즈>와 <오마이뉴스>에 대적할 우파 정치 웹진과 정치 전문 인터넷뉴스가 창간되면서 어느 정도 진용도 갖추어졌다. 의원별로 각자 블로그도 만들어서 누리꾼들과의 스킨십을 늘렸다. 

청와대, 가장 효과적으로 포털 이용

문제는 포털 사이트였다. 누리꾼들이 정치 기사를 정치 웹진이나 정치 전문 인터넷 뉴스에서 직접 읽지 않고 포털 사이트에서 소비하면서 무게 중심이 포털 사이트로 이동해왔다. 포털 사이트가 중심이 되면서 이들 뉴스 공급 업체 사이에서도 반상의 구별이 생겨났다. 포털 사이트에 서비스를 하느냐 못하느냐 여부에 따라 영향력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털 사이트에서 한나라당은 다소 소외되어 있다. 일간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들이 진보적인 성향의 정치 전문 인터넷 뉴스에서 주로 정치 뉴스를 공급받기 때문이다. 한 한나라당 관계자는 “벌써부터 청와대에서는 포털 가지고 다음 대선을 치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비해 한나라당은 너무나 안이하다. 아직 포털을 미디어로도 인식하지 않고 있다”라고 자조했다. 현재 한나라당은 포털 사이트를 미디어를 관리하는 부서가 아닌 블로그 등 인터넷 관리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뉴미디어에 대해 둔한 감수성을 보이는 동안 뉴미디어의 구심점이 포털 사이트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은 바로 청와대다. 3월23일 ‘노대통령과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는 청와대가 포털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이벤트는 포털사이트들의 숙원 사업이었다. 안티포털 운동을 이끌고 있는 미디어 비평가 변희재씨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 ‘신권언유착’이라고 비난했다.

청와대 외에 포털 사이트 공략에 열을 올리는 곳은 각 대권 주자들 캠프다. 캠프의 포털 전략은 2단계 과정을 거쳐서 진행되고 있다. 후보에 호의적인 인터넷 뉴스사를 만들어 이를 포털 사이트의 뉴스 공급 업체로 등록시키거나 포털 사이트에 뉴스를 공급하거나 공급할 예정인 곳을 공략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변희재씨는 “포털 사이트는 편집권을 행사하고 있는 엄연한 미디어다. 일부 포털 사이트 중에서는 뉴스 공급 업체에 보충 취재와 추가 취재를 지시하기도 한다. 대권 주자들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활용하는 데에만 안달이 나 있다”라고 비난했다. 

‘노대통령과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를 기점으로 포털 사이트들은 정치 뉴스의 중심으로 더욱 다가갈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다음의 서준호 뉴스팀장은 “올해 지방선거, 내년 대선, 내후년 총선까지 선거가 연이어 열리면서 정치 뉴스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치 스트레이트 기사에 이어 정치 해설 기사까지 클릭 수가 많이 나오고 있다. 정치 섹션을 강화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2002년 대선에서의 네티즌, 2004년 총선에서의 인터넷 매체에 이어, 차기 선거에서는 포털 사이트가 이슈를 주도하는 핵심 변수가 되리라는 것이 정가의 중론이다. 누가 ‘포털 정치’의 수혜자가 될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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