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에 불지른 ‘탁신의 배신’
  • 방콕 · 정나원 통신원 ()
  • 승인 2006.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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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총리, 탈세 의혹으로 최대 위기 맞아

 
새해 벽두부터 소용돌이치기 시작한 태국의 정치 불안 사태가 갈수록 혼돈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수도 방콕에서 2월 들어 연 3주째 시위 인파 수만 명이 모여 “탁신 옥파이(탁신은 나가라!)”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퇴진 압박에 시달리던 탁신 총리는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하지만 태국의 3대 야당은 총선 보이콧으로 배수진을 쳤다. 반정부 시위대는 3월5일까지 무조건 사임하라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탁신 총리의 집권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태국 국민들을 극도로 분노하게 한 발단은 탁신 총리의 싱가포르 신년 휴가 여행이었다. 진짜 여행 목적이 밝혀진 때는 1월23일이었다. 이 날 탁신 총리의 아들·딸이 보유한 태국 최대 정보·통신업체 ‘친(Shin) 코퍼레이션’의 지분 49.6%를 모두 싱가포르 국영 투자 기관인 테마섹 홀딩스에 매각한 사실이 발표되었다. 이 거래에서 탁신 가족은 7백33억 바트(약 1조8천5백억원)라는 엄청난 시세 차익을 챙겼다.
 
문제는 그 엄청난 수익에도 불구하고 탁신 가족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탁신 총리는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는 거래였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매각 발표 직후, 탁신 가족의 탈세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친 코퍼레이션의 주식이 ‘조세 피난처’로 알려져 있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의 앰플 리치 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로 이전되었다가 테마섹 홀딩스로 되팔린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앰플 리치는 1999년 탁신 총리가 단돈 1달러로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다. 말 그대로 ‘종이 회사’인 것이다.

탁신 총리 가족의 편법 거래와 탈세 의혹에 대한 여론이 비등하자 태국 증권거래위원회가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 총리 아들은 주식 인수 공시 규정을 위반한 것이 확인되었지만 탁신 총리의 경우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결론이 났다.
 
하지만 태국 국민들은 이미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국가의 최고 수반이 세금 한 푼 안 내고도 장사하는 법을 ‘모범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재집권 당시 70%대까지 치솟았던 탁신 총리의 지지도는 2월 초 30%대로 곤두박질쳤다.
 
시민·정계 양쪽에서 협공받아 ‘사면초가’

태국 국민의 분노는 2월4일, 방콕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대대적인 탁신 규탄 대회로 폭발했다. 이 날의 대규모 군중 집회에는 10만명 가량의 인파가 모여 1992년 민주화 시위 이래 14년 만의 최대 정치 집회로 기록되었다. 이후 시민운동 그룹의 ‘국민 민주주의 연대’가 발족되고, 방콕의 지식인과 학생·샐러리맨들이 합류해 2월 말 현재까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태국 상원의원 28명은 헌법재판소에 총리의 경제 행위 위헌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탁신 총리는 시민과 정계 양쪽으로부터 협공을 받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2월16일, 탁신 총리는 잠시 위기 국면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태국 헌법재판소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상원 의원들의 탄원서를 기각했던 것이다. 탁신 총리는 2001년에도 반부패위원회에 의해 재산 은닉 혐의로 한 차례 태국 헌법재판소에 회부된 전력이 있다. 당시 탁신 총리의 일부 재산(약 1천억원)이 운전수와 가정부·경비원 명의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8개월 동안 진행된 조사 끝에 당시 태국 헌법재판소는 탁신 총리에게 ‘면죄부’를 발부했다. 이 결정은 신임 총리에 대한 국민의 높은 지지도를 고려한 ‘정치적 결단’으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똑같은 면죄부라도 그 효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오히려 탁신 총리의 정치 생명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었다. 2월19일, 급기야 1992년 민주화 시위를 주도했던 잠렁 스리무엉 전 방콕 시장이 반(反)탁신 규탄 대회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는 탁신 총리를 정계에 입문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잠렁의 폭탄 선언에 힘을 받은 반탁신 집회 주최측은 2월26일 20만 인파를 모아 탁신 총리에게 치명상을 입히겠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탁신 총리는 집회 이틀 전, 전격적으로 조기 총선이라는 카드를 던졌다. 선제 공격을 취한 것이다.
 
탁신 총리의 입장에서 조기 총선은 불리할 게 없는 전략이었다. 현 태국의 소요 사태는 방콕에만 한정되어 있는 데다, 그의 강력한 지지 기반인 농민층이 1천9백만 태국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넘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 조사 또한 60% 가까이가 총리 유임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3월에 접어들면서 조기 총선 파동은 야당측의 ‘총선 거부’라는 반격으로 예측 불허의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탁신 총리는 4월2일 여당 단독 선거라도 치르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조기 총선 카드로 맞불…결과 예측 불허

우선 현 태국 헌법상 무소속 출마가 불가능하며 정당 등록은 선거 공고일 90일 전에 확정되어야 한다. 또한 선거구 유권자의 20% 이상을 득표해야 당선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의원 정족수 5백명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의회 개원이 불가능하다. 현재로는 태국의 집권 여당이 이 모든 조항을 충족시키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설사 가능하더라도 파행 선거가 불가피해 정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 

태국 3대 야당이 ‘총선 보이콧’이라는 태국 정치사상 전대미문의 결정을 내린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다. 하지만 야당측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국민 민주주의 연대가 총리의 무조건 사임을 요구하는 마당에, 탁신 총리와의 협상 테이블로 돌아갈 경우 안게 될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총리와 야당, 시민운동 그룹이 한 밧줄에 매달려 암벽을 오르고 있는 형국이다. 이를 지켜보는 태국 국민들은 마음을 졸이고 있다.
방콕·정나원 통신원
 
우선 긍정적인 평가. 그는 경제 성장의 업적을 높이 평가받는다. ‘탁시노믹스’라 지칭되는 이중 궤도 경제 정책이다. 시장 개방을 통해 외자 기업을 적극 유치하되, 동시에 내수 진작과 틈새 산업 육성으로 국내 경제 기반을 튼실하게 다지겠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태국은 1기 집권기(2001년~2005년 초)에 6%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해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에서 신속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반면 정치 개혁 면에서는 오히려 후퇴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비판은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현 집권당의 ‘거대 권력’에서 말미암았다. 집권당에는 탁신 총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재벌 기업가들이 집결해 있다. ‘정경 유착’ 정도가 아니라 ‘최고 경영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아예 한 묶음으로 ‘정경 일치’인 셈이다. 부정·부패 스캔들이 터져 나와도 태국 정치에는 이를 구조적으로 견제하고 통제할 만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최근 ‘탈세 의혹’으로 탁신 총리가 겪는 위기는 바로 최고 경영자와 국가 지도자 사이의 ‘이해 관계 충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라고 볼 수 있다. 즉 태국 국민들은 탁신 총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공익을 우선시해야 할 국가 수반이 재벌 기업가로서의 사적인 이해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자신 없으면 물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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