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살림꾼’ 선출복잡 미묘한 3파전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6.02.2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크바시니예프스키 폴란드 전 대통령은 미국에게구미가 당기는 인물이다. 수라키앗 태국 부총리는 아세안의 지지를 받고 있다.

 

2001년 유엔 총회에서 한국이 56번째 총회 의장국이 되자, 국내 유엔 연구의 권위자인 고려대 강성학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이 사건을 ‘한국 외교사의 한 분수령’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그는 철학자 칸트의 표현을 빌려 이 사태를 ‘장엄한 순간’에 비유하기도 했다.

한국은 유엔과는 1940년대 정부 수립 때부터 1950년의 한국전쟁을 거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음에도,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남북 대결이라는 특수 상황 탓에 1991년에야 겨우 유엔의 정식 회원국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사실에 비춰볼 때 1991년 한국의 유엔 가입은 강교수의 표현대로 실로 ‘장엄한 순간’이었다.

그런 한국이 국제 외교 무대에서 또 한번 장엄한 순간을 맞겠다고 나섰다. 반기문 외교부장관이 지난 2월14일 외교부 청사에서 내·외신 기자 회견을 갖고 ‘차기 유엔 사무총장 도전’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이후 한국은 벌써 반장관이 사무총장이라도 된 듯 도취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서울의 주요 언론은 ‘반장관의 경쟁력’에 서둘러 초점을 맞추었고, 정치권도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 또는 반장관측의) 협조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 응하겠다’고 전폭적인 지원을 다짐했다. 또 다른 유엔 권위자 박수길 전 유엔 대사는 동아일보 기고문을 통해 ‘한국인의 유엔 사무총장 가능성은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라며, 국민의 적극적 성원을 촉구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판단이 ‘열쇠’

반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도전에 대한 온 국민의 성원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국가적 자신감과 ‘충분히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발원하고 있다.

우선 반장관 본인의 발언을 들어보자. 반장관은 2월14일 ‘공식 선언’ 하루 전, 파이낸셜 타임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반장관은 한국인이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할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음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한국은 첫째 평화와 안정을 성취했고, 둘째 경제적으로 성공했으며, 셋째 민주주의를 일궈냈다는 것이다. 반장관은 또 ‘이 모두는 유엔 헌장에 명시된 유엔 창설의 기본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며,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유엔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모델’이라고도 강조했다.

그렇다면 반장관이 선출될 가능성은? 외교부 관리와 학계 전문가, 정치권 인사 등의 판단을 종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쪽이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 있다. 전에는 유엔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북한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이 또한 사정이 다르다.” 국회 외무통일위원회 소속 한 여당 의원 보좌관이 전하는 정치권 정서의 단면이다.
 
여기에 더해 외교부의 한 관리는 시기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비록 미국은 부정하고 있지만, 유엔 사무총장 선출에 지역 순환제 관행이 관철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때를 놓치면 앞으로 5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라는 것이다.

바깥 세계의 지한파 인사들 중에도 한국 출신 유엔 사무총장이 나오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사도 적지 않다.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 개번 매코맥 교수(역사학)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반장관의 출마에 대해 논평을 요청한 <시사저널>에 “한국은 이웃나라에 대해 득이 되는 방향으로 자신의 입지를 넓혀 왔고, 특히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왔다는 면에서 모범이 될 만한 국가이다. 이런 면에서 반장관이 유엔이라는 국제 사무의 중심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이는 희망의 징조가 될 것이다”라고 답해왔다.

하지만 유엔 사무총장은 후보가 소속한 국가의 자격 또는 후보 개인의 경쟁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유엔 사무총장의 경우는 철저하게 강대국들, 더 좁혀 말해 유엔 운영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 상임 이사국 5개국(P5)의 의사와 판단이 ‘결정적인 열쇠’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 총회에서 뽑힌다. 그러나 총회의 역할은 ‘고무 도장’에 불과하다. 우선 유엔 사무총장은 비상임 이사국 10개국(2년 임기)이 포함된 안보리 15개국에서 여러 복수 후보 중 한 사람을 투표로 가려 추천한다. 특히 이 중에서 P5가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가진 ‘거부권’ 때문이다. 상임 이사국 중 4개국을 포함해 안보리 이사국 14개국이 특정 후보를 지지해도, P5 한 나라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14표의 지지는 그대로 쓸모가 없어진다.

유엔 주재 미국 대사 “지역 순환제 원칙 없다”

현재까지 반장관의 경쟁자로 국내외 언론에 지목되는 인사는 대여섯 명이다. 우선 아시아쪽에 2004년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했던 수라키앗 태국 부총리(00쪽 딸린 기사 참조)와 스리랑카의 자얀타 다나팔라 전 유엔사무차장, 동티모르의 호세 라모스 호르타 외무장관이 있다. 유럽 방면에도 폴란드의 전직 대통령 알렉산더 크바시니예프스키와 라트비아의 여성 바이라 비케-프라이베르가 거론된다.

과연 P5는 이들 중 오는 9월을 목표로 한 차기 사무총장에 최종적으로 누구를 낙점할 것인가. 먼저 미국부터 살펴보자.

숙명여대 홍규덕 교수(정외과)는 미국의 향후 유엔 운영 구도를 볼 때, 반장관의 최대 라이벌은 폴란드의 크바시니예프스키 전 대통령이 될 공산이 크다고 전망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성적표상 크바시니예프스키는 ‘미국의 입장에서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인물이며, 궁합도 잘 맞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우선 그에게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무게감이 실린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누구보다 앞장서서 폴란드가 병력을 보낼 수 있도록 힘을 몰아준 인물도 크바시니예프스키였다. 지난해 미국이 주도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의 확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도 그였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대유엔 외교를 책임지고 있는 존 볼턴 유엔 대사가 반장관의 출마 선언 직후인 2월16일 유엔에서 행한 발언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볼턴은 이 날 안보리 의장 자격으로 코피 아난 사무총장과의 월례 오찬이 끝난 뒤 마련한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두 가지 중대한 화두를 던졌다. 

볼턴은 우선 지금까지 당연시해온 ‘지역 순환제’ 원칙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그는 “지금까지 역대 사무총장이 지역별로 서유럽에서 세 명, 라틴 아메리카에서 한 명, 아프리카에서 두 명, 아시아에서 한 명이 나온 반면 동유럽에서는 한 명도 없었다”라고 지적하며, ‘지역 순환제 원칙은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볼턴 대사는 미국이 차기 사무총장으로 ‘강력한 실행 능력을 가진 관리자’를 원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관리 능력도 중요하지만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엔을 제대로 개혁할 인물을 고르겠다는 것이다.
 
볼턴 대사의 이같은 발언을 종합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크바시니예프스키이다. 물론 그에게도 장애물은 있다. 폴란드와 인접한 러시아가 과연 가만히 있겠느냐는 것이다.

‘지역 순환제’ 관행에 따른 ‘아시아 순번’을 기정 사실로 간주할 때 사정은 한층 더 복잡해진다. 여기서 변수는 중국 못지않게,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ASEAN)이 될 공산이 높다. 현재 아세안에서 반장관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는 태국 재무장관과 외무장관을 두루 거친 수라키앗 부총리이다.

최근 반장관의 출마 선언과 본인의 잇단 문제점 노출로 상승세가 많이 꺾인 것이 사실이지만 수라키앗 카드는 여전히 위력적이다. 중국과 아세안, 일본과 아세안, 중국과 일본의 아세안을 둘러싼 영향력 경쟁의 한복판에 태국이라는 나라가 있고, 수라키앗은 바로 그 태국 출신 후보이기 때문이다. 홍규덕 교수는 “중국이 동북아 구도의 중요성을 크게 볼 때 반장관의 사무총장 선출을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아세안의 입장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아세안은 이미 ‘수라키앗 지지’를 공식 선언한 상황이다.

여기에 일본이 끼어들 경우, 중·일간 영향력 경쟁의 효과로 수라키앗의 몸값이 높아질 공산이 있다. 일본은 현재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으로서 사무총장 선출에서 P5만큼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일본은 경제력이 여전히 세계 2위이며, 유엔에 대한 기여도 면에서는 세계 1위의 위상을 갖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미국과 동맹 관계를 한층 강화하고 있으며, 중국과는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일본의 아소 타로 장관은 지난해 12월 동남아 국가들을 염두에 두고 ‘일본의 아시아 전략은 아시아에서 일본이 사상적 지도국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반장관이 만약 이같은 난관을 두루 극복하고 유엔 사무총장이 된다면, ‘우리도 마침내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했다’는 국가적 자긍심 외에 한국에 어떤 실익이 돌아올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회의론과 낙관론이 엇갈린다. 여기서 다시 핵심은 ‘P5 정치학’이다.

“분단국 대표가 지도자 대접 받을 수 있을지 의문”

먼저 회의론. 강성학 교수는 “유엔 사무총장의 지도력은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통해서도 발현되는 것이 사실이나, 기본적으로는 P5 정치학에 의해 좌우된다”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분단국 한국인 출신 유엔 사무총장이 P5 국가로부터 얼마나 지도자 대접을 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라는 것이다.

다음 낙관론의 주된 근거 또한 P5 정치학에서 출발한다. 유엔은 심지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이라도 일방적으로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데 오히려 묘미가 있다는 것이다. 외교부의 한 관리는 “사무총장의 입지에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물론 회의론자든 낙관론자든 모두가 지적하는 또 다른 우려 사항은 있다. 최근 들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한국은 국제 사회에서 중심 역할을 맡아본 경험이 일천하고, ‘우리’라는 좁은 틀에 갇혀 남들이 한국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 여전히 의식 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문제·인권 문제 등 국제 사무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한반도 사안에 대해 한국 정부가 향후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많은 국제 관계 전문가들이 자질과 경력을 겸비한 반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출마 선언을 반기면서도, 출마 선언의 ‘전격성’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장관의 출마 선언이 있기까지 한국과 유엔의 관계 재설정 문제는 한 번도 공론의 장에 붙여진 바 없었다.

 
 
1945년 유엔 출범 이후 사무총장 자리를 거쳐간 ‘세계최고 외교관’은 현직 코피 아난 사무총장을 포함해 모두 일곱 명이다.

초대 사무총장은 노르웨이 출신의 트리그브 할브단 리(Trygve Halvdan Lie, 1946-1952)가 맡았다. 리 사무총장의 손을 거쳐 1948년 유엔 총회에서 남한 총선거 실시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언이 나왔다. 그는 1950년 유엔의 한국전쟁 개입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옛 소련의 미움을 사, 사무총장 재선에 실패했고 3년간 임기를 연장하는 데 그쳤다. 사무총장의 공식 임기는 5년이다.

 
 
2대 사무총장 다그 함마르셸드(Dag Hammarskjold)는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 경제학 교수 출신으로, 중동과 아프리카의 분쟁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그는 재직 중인 1961년, 콩고 내전을 중재하러 가는 길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고, 그 해 12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3대 사무총장은 미얀마의 우탄트(U Thant)가 맡았다. 그 뒤를 오스트리아의 쿠르트 발트하임(Kurt Waldheim)과 페루의  하비에르 데 페레스 데 케아르(Javier de Perez de Cuellar)가 차례대로 이었다. 

 
 
역대 사무총장 중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이는 이집트 출신의 6대 사무총장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Boutros Boutros-Ghali)이다. 1992년 취임한 갈리는 안보리의 확대 개편, 유엔 상비군 창설, 재정독립 수단 확보 등을 통해 유엔의 힘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들의 지지를 받았던 갈리의 ‘강력한 유엔 만들기’ 계획은 미국과 충돌을 빚었다.

매들린 울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은 당시 갈리의 행보를 보며 “미국이 유엔을 존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엔이 미국 이익의 대체적 보장자는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갈리는 미국의 견제로 1996년 사무총장 연임에 실패했다.

갈리의 뒤를 이은 이가 7대 코피 아난(Kofi Annan, 1997~현재) 사무총장이다. 그는 아프리카 가나 출신으로, 선거 당시 미국측이 그의 선출을 도왔다. 아난 총장은 1997년 사무국을 축소·개편하고 유엔 예산을 줄이는 등 미국의 요구대로 유엔 개혁을 실시했다. 하지만 현재 아난 총장은 유엔 내부의 부패 문제 등이 불거져 ‘원군’인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홍규덕 교수(숙명여대·정치외교학)는 “코피 아난은 유엔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으로 노력했지만 완벽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 일을 차기 사무총장에게 넘길 수밖에 없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홍교수는 또 “갈리나 코피 아난이 비교적 자기 목소리를 냈지만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라며 역대 사무총장들은 대부분 강대국의 이익에 휘둘려 왔다고 지적했다.
변진경 인턴기자

 

 
하지만 사무총장에게 세계적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그 자리가 엄청난 ‘정치적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헌장 제99조에 따르면, 사무총장은 ‘국제적 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협한다고 인정되는 사항에 대해 안전보장이사회의 주위를 환기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만약 회원국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거나, 때론 도전과 위험에 직면하더라도 사무총장은 유엔의 가치와 권위를 지켜야 한다”라는 것이 유엔 사무국의 공식 설명이다.

‘창조적 긴장 관계’(creative tension)라고 표현되는 이러한 사무총장의 정치적 권한을 펼치는 통로는 다양하다. 사무총장은 유엔이 연간 발행하는 유엔 활동 보고서를 통해 향후 국제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슈를 제기하는 ‘의제 설정자’ 기능을 할 수 있다. 또한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국 정상들과 고위 관료들을 만나 자신이 설정한 세계적 이슈를 알리고 관심을 촉구할 수도 있다. 박수길 전 유엔대사는 “유엔 사무총장은 자신이 판단하기에 중요한 세계적 이슈를 국제 사회에 던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교황과 비슷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무총장의 정치적 권한은 사무총장 개인의 정치적 역량이나 강대국의 논리에 따라 얼마든지 커지거나 작아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홍규덕 교수(숙명여대·외교정치학)는 “유엔헌장이 명시한 사무총장의 정치적 권한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사무총장의 의견이 미국 등 강대국의 의견과 충돌할 때는 거의 아무런 권한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변진경 인턴기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