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우 강 적시는 '음악의 영혼'
  •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
  • 승인 2006.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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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모차르트 탄생 2백50주년 맞아 ‘황홀한 콘서트’ 잇달아

 
1월27일 저녁 7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호엔잘츠부르크 성(Festung Hohensalzburg) 이 바라다 보이는 돔 성당 뒤편의 카피텔플라츠(Kapitelplatz). 머리 위에 위용을 자랑하는 거대한 성의 어두운 그림자가 버티고 있는 가운데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대작곡가 모차르트(1756-1791)의 2백50주년 생일을 맞아 이를 축하하는 무료 음악회가 이곳에서 열렸다. 영하 15도의 강추위 속에서도, 백발의 노인에서부터 고사리 손을 호호 불며 부모님 손에 이끌려온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몰려온 1만여 명의 관객은 역사적인 순간에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하고 있었다.

세레나데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가 달콤한 댄스 음악으로 포장되어 몸을 흔들게 하는가 하면 강렬한 비트의 록음악으로 변신한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드넓은 광장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오페라 <돈 지오반니>에 나오는 ‘카탈로그의 노래’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교수인 지휘자 이윤국씨가 창단한 잘츠부르크 캄머 필하모니 단원들에 의해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게 다시 태어났다. 환호하는 ‘모차르트 마니아’들의 갈채는 저 아래 시내 중심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잘자크(Salzach) 강 밑으로까지 퍼져갔다.

‘2006년 버전’으로 변신한 ‘모차르트 열린음악회’가 열리기 1시간 전, 묀히스베르크 산의 바위를 뚫어 만든 2천4백석 규모의 잘츠부르크 축제극장.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은 오스트리아 대통령, 각국 대사, 유럽의회 의원들을 손님으로 초청해 클래식한 무대를 연출했다. 일본 출신의 피아니스트 미쓰코 우치다가 먼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5번 연주를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았다.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무려 2분이 넘는 긴 서주를, 피아노가 나오기 전에 이미 비수로 찌르는 듯한 강한 리듬을 구사하며 객석을 마비시켰다.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한 기돈 크래머와 유리 바슈메트는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에서 러시아 식의 모차르트를 들려주었다. 토마스 햄프슨(바리톤), 르네 플레밍(소프라노)은 모차르트 콘서트 아리아를 멋들어지게 불러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소금의 도시’ 잘츠부르크는 2006년 현재 ‘모차르트의 도시’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시내 곳곳에는 모차르트의 사진과 광고판으로 거의 도배하다시피 하고 모차르트 관련 상품이 넘쳐나고 있다. 모차르트가 없다면 아마도 ‘유령의 도시’ 일 잘츠부르크는 그의 탄생 2백50주년을 맞이해 최고의 호황을 구가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같은 날 오전 11시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음악원 콘서트홀에서는 ‘2006 모차르트 주간(Mozart Woche)’의 메인 오프닝 콘서트가 펼쳐졌다. 잘츠부르크 시장과 오스트리아 문화부장관의 축사에 이어 잘츠부르크 출신의 거장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무대에 등장해 준비해 온 장문의 연설문을 낭독했다.

현악 4중주단 공연도 매진 행렬

 
“우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모차르트를 너무도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순수한 음악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 지휘자는 경제 가치 9조 유로(약 1경4백70조원)에 해당하는 모차르트에 대한 지나친 상업주의를 비판했다. 이어진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은 40명 빈 필하모닉 단원에 의해 작곡가 당시의 연주 방식으로 재현되어, 완벽한 울림을 자랑하는 홀 안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가기에 충분했다.

2월5일까지 계속된 올해 ‘모차르트 주간’ 페스티벌은 로저 노링턴이 이끄는 18세기 오케스트라,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이 정상의 메조소프라노 베셀리나 카사로바와 함께하는 성악무대 등이 잘츠부르크 전역의 공연장에서 동시 다발로 열렸다. 1월26일 저녁 미라벨 궁전에서 있었던 모차르트의 현악 사중주 연주회는 왜 오스트리아가 음악 선진국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한국에서는 세계 정상급 사중주단이 내한해도 객석이 텅 비어 안쓰러울 정도였던 현악 사중주이건만, 잘츠부르크에서는 매일같이 매진 사례를 이루고 있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초연된 빈에서도 이에 질세라 하루 뒤인 1월28일 저녁 7시 장 피에르 폰넬이 제작한 뉴프로덕션으로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새롭게 선보였다. 입석 자리까지 완전히 매진되어 숨쉬기조차 힘든, 19세기에 지어진 유려한 극장 안은 공연 전에 이미 그 열기로 달아올랐다. 페터 슈나이더가 지휘하는 빈 슈타프오퍼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추어 첼리아 코스테아(백작부인 역)와 타티아나 리즈닉(수잔나 역)이 부르는 ‘편지의 이중창’은 객석을 황홀경으로 만들었다.

모차르트 냉대한 빈, 모차르트 덕에 호황

 
살아 생전에 귀족 계급에 대항해 자신의 예술을 지켜가느라 빈 시민들의 냉대 속에 비참한 일상을 보내야만 했던 모차르트. 1791년 쓸쓸한 죽음 뒤에 초라한 장례식이 치러졌던 슈테판 성당에서 시작하는 빈 최고의 번화가 ‘케른트너 슈트라세’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모차르트로 인한 수입으로 지탱하고 있는 듯했다. 아예 모차르트 상품으로만 차려진 가게 두 곳은 한 예술가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웅변했다. 겉보기에 화려하지만 정작 홀의 음향은 엉망인 곳이 대부분인 우리 공연장과, 여기에 겉치레가 중시되는 우리 공연 문화와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윤이상을 낳은 통영이 세계적인 음악 관광 도시로 태어날 날은 요원한 것인가?

1월28일 오후 5시, 빈 동남쪽 외곽에 위치한 중앙묘지의 음악가 묘역. 베토벤·슈베르트·브람스의 묘에 둘러싸여 묘지조차 없이 기념비만 서 있는 모차르트의 자취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화환으로 덮인 기념비 상단의 수호천사가 해질녘 어스름한 빛을 받아 보는 이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은 예전의 진실된 언어로만 표현해야 합니다! 결코 부풀려지거나 과장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르농쿠르의 말처럼 모차르트는 2백50년이 지난 지금도 영혼으로 노래하고 있다.

그의 생일날 자정에 그 후예들이 공부하는 모차르테움 음악원 앞에 홀로그램으로 빛나던  “나는 좋고, 진정 어린, 그리고 아름다운 모든 것을 가지고 싶다”라는 모차르트의 외침이 모차르트 초콜릿과 대비되면서 이방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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