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역 병장들의 기억과 상처
  • 천정환(문화 평론가) ()
  • 승인 2006.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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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의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양심적 병역 거부권과 병역 의무가 조화롭게 공존하게 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권고한 것은 매우 잘 된 일이다. 왜 ‘국민의 혈세’를 써가며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기구를 운영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준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상식이 간과하기 쉬운 사각지대에 있는 인권문제를 먼저 나서서 제기해준다면, ‘국가’를 좀더 신뢰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대체복무제 도입 권고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가장 웃기는 것은 “그러면 군대는 누가 가란 말이냐?”라는 식의 사설이나 칼럼을 버젓이 내놓은 보수 세력과 일부 신문들의 반응이었다. 군대는 누가 가냐니요? 이 말은 사실 ‘톡 까놓고’ 말하면 현재 한국의 젊은이들은 아무도 군대에 안 가고 싶어 하고, 그들이 아무리 “군대 가야 사람 된다”고 부르짖어도, 군대 가보았자 인생에 도움 되는 것 하나도 없고, 2005년의 사건들이 보여주었듯 사람 되기는커녕 까딱 잘못하면 목숨마저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백한 것이 된다. 저런 말을 자랑스레 활자로 박아놓는 사람들은 참 놀랍다. 그들은 절대로 아들·손자들을 자발적으로 입대시킬 자신감이 없거나, 또는 군대라는 데는 자고로 울며불며 도살장에 소 끌듯 끌고 가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국군의 사기’가 저하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한데 문제는 아직 다수의 ‘국민’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의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이 ‘시기상조’라 생각하는 데 있다. 군대를 갔다 온 남성일수록, 군대에서 고생을 많이 했을수록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과연 그들이 ‘시기상조’라 생각하는 이유가 안보 상황에 대한 걱정 때문일까?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그들 예비역 병장들이야말로 대한민국 안보 상황을 훤히 꿰고 있는 분들이라, 사실 그렇게 많은 ‘땅개’가 전후방에서 ‘삽질’하며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대만 같은 분단 국가조차 대체복무제를 허용한다는 근거는 ‘뻔데기 앞에서 주름 잡기’ 정도밖에 안 된다. 

예비역 병장들의 심사는 단순 명쾌하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게 스티브 씨든 이회창님 아들이든, 군대 안 가는 꼴을 못 보겠다는 것이다. 즉, 군대 가서 당했던 그 인간 이하의 처절했던 기억을 잊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사실 ‘현역 3년’뿐 아니다. 동원 예비군과 지역 예비군에 민방위까지, 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군문(軍門) 앞에 일단 줄을 서면 국가라는 분은 어찌 그리 기억력이 좋은지 나이 40이 넘도록 철마다 이름을 딱딱 불러낸다. ‘개기면’ 가차 없이 불이익도 준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20여 년간의 그 모든 고생과 국가 앞의 긴장을 부당하게 ‘면탈’한다. 단지 부모 잘 만났다는 이유에서다.

군대에서 고생한 사람일수록 대체복무제 시행 반대

애국심 깊은 우리 ‘국민’은 때로는 ‘국익론’ 같은 공갈 앞에서 자기가 누군지도 잊어버린 채 잘나고 많이 가진 분들과 ‘우리는 하나’라 착각하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서는 어림도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이만큼 잘사는 나라’로 만든 평등주의는 병역 문제에서만큼은 참 확실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아직도 예비역 병장들에게는 가난하고 평범한 내 아들이 형평에 맞지 않게 ‘안 가면 더 좋을’ 군에 ‘끌려가서’ 인간 이하 취급당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없다. 즉 그들에게는 병역 면제의 사유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을 보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양심에 따른 병역 면제? 누구는 양심이 없나?”라는 방식으로밖에 생각지 못한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대체복무제가 ‘시기상조’라는 이들의 생각은 마음의 상처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따라서 병역 이행이 계층·학벌·재산 차이와 무관하게 진짜 평등·투명하게 되는 일, 그리고 ‘손해’를 무릅쓰고 입대하는 보통의 젊은이들이 군대 3년 동안 제대로 인권을 보장받는 것이 ‘시기상조’가 아니어야 이 상처도 치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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