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웨이브에서 아시안 웨이브로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6.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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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한류’ 시대에는 중국·일본 등과 공조 필수 …반한류 정서 잡고, 세계 시장 공략 ‘일석이조’

 
반한류·혐한류·항한류 능선을 넘을 수 있는 ‘포스트 한류’의 코드를 찾아라. 이것이 한류 최전선에 있는 대중문화 종사자들의 신년 벽두 화두다. 이들은 문화 침투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는 ‘한류’를 대체할 새로운 용어를 찾는 작업에서부터 포스트 한류의 코드를 찾고 있다.

한류 야전 사령관들이 포스트 한류의 새로운 코드로 찾은 것은 바로 ‘합류(合流)’다. 여기서 ‘합류’는 단순히 교류를 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일방향적인 한류를 쌍방향적인 교류로 바꾸자는 의미가 아니라 공동의 지향점을 갖자는 것이다. ‘합류’가 겨냥하는 것은 바로 세계 대중문화 시장이다.

이젠 한류(韓流)가 아니라 합류(合流)를 얘기할 때

아시아 시장에 국한된 ‘코리안 웨이브(Korean wave)’가 아니라 세계 시장을 겨냥한 ‘아시안 웨이브(Asian wave)’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 바로 한류 야전 사령관들의 주장이다. 집단과 집단의 갈등이 벌어지면 집단 내부의 갈등은 봉합된다는 사회학의 고전적인 이론을 응용해 반한류 능선을 넘어 세계 시장 진출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한류 관련 정책을 주관하는 정부나 국회, 그리고 한류 담론을 펴는 학계에서 ‘합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나라를 한류 스타로 키운 주호성씨는 “한류와 관련해서 지금까지 정부나 학계가 한 역할은 이미 차려진 한류라는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위치에 맞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아시안 웨이브’라는 공동의 비전을 통해 갈등 극복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김양래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 사무처장은 “중국 기자들을 초청해보니 그들이 한류에 대해서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 정부가 한류를 조장했다는 것이다. 반한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조심스럽게 역할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현업에서는 이미 합류가 대세

현업에서는 ‘합류’가 이미 대세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합류’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아시아권 최고 스타 비를 배출한 JYP엔터테인먼트다. 저우제룬()이라는 대만 가수의 CF를 비가 가져오면서 많은 견제가 들어오자 이들은 비에게 저우제룬과 함께 세계에 진출하고 싶다고 말하게 함으로써 반감을 누그러뜨렸다. JYP엔터테인먼트의 홍승성 대표는 “비의 미국 진출을 위해서도 반한류를 극복해야 했다. 가장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 바로 화교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아시아권이 힘을 합하는 데 정부가 역할을 해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칠검>(김소연) <신화>(김희선) <무극>(장동건) <퍼햅스 러브>(지진희) <묵공>(안성기) 등 최근 제작된 중화권 블록버스터 영화에는 모두 한국 배우가 주·조연으로 출연했다. 유위강 감독의 <데이지>에 전지현·정우성·이성재를 출연시킨 싸이더스HQ의 정훈탁 대표는 “중화권 감독들은 이미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을 통해 한국 배우들이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에 비해 합작이 활발하지는 않지만 드라마 제작에서도 다양한 방식의 합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차인표·장나라 등이 중화권 드라마에, 최지우 등이 일본 드라마에 출연했거나 출연 중이다. 제작비 3백억원의 블록버스터 드라마 <태왕사신기>에는 일본의 영화음악 대가 히사이시 조가 참여한다. 베트남에서 합작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는 F&C미디어의 김의성 대표는 “동남아 국가에게 한국은 좋은 전범이 되고 있다. 한국의 방식을 도입해 자국 콘텐츠의 질을 높이고 싶어한다”라고 말했다.

대중음악계에서도 2~3년 전부터 아시안 프로젝트를 준비해 왔다. 오래 전부터 중화권 스타 지망생을 모집해 교육한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이사는 “이제 아시아적으로 생각하고 아시아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역시 관지엔이라는 중국 가수의 프로모션을 준비하고 그룹 지니스에 중국 가수를 추가한 DR뮤직의 윤등룡 대표는 “어느 나라에서 스타가 나오느냐보다 어느 나라에서 스타를 만드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스타메이커 중심으로 아시아 대중문화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비를 발굴해 아시아권 최고 스타로 키워낸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이사는 비의 해외 공연 전후에 현지 오디션을 통해 스타 지망생을 발굴하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의 홍승성 대표는 “올해도 비는 대규모 아시아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몇몇 가수를 동행할 예정인데, 한국 가수보다는 아시아의 다른 가수를 데리고 갈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미디어도 '아시안 웨이브' 행렬에 동참

올해는 한국이 아시아 대중문화를 품는 원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 드라마의 해외 소개와 해외 판매를 주도했던 아리랑TV의 구삼열 대표는 “올해부터는 해외 콘텐츠를 한국에 소개하는 데 주목하겠다”라고 밝혔다. 아리랑TV로부터 방송 콘텐츠의 해외 판매 사업을 승계한 방송영상산업진흥원도 해외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들여올 예정이다. 방송영상산업진흥원의 김영덕 연구원은 “FTA를 대비하는 측면에서도 문화 블록화를 속히 이룰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인 교류가 필수적이다”라고 지적했다.

미디어들도 발 빠르게 ‘합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아시아 대중문화를 한국에 소개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런아시아넷이 대표적이다. ‘아시아와 함께 뛰자’라는 슬로건으로 만들어진 런아시아넷의 관심은 ‘역한류’다. 변희재 런아시아넷 대표는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의 문화와 세계의 문화가 소통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지금, 각국의 다양한 대중문화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아시아 각국의 대중문화 종사자들이 한국의 리더십을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대중문화를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수용했지만 자국화에 성공해 미국 대중문화를 게워낸 한국은 이들에게 훌륭한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김양래 처장은 “아시안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 한국이 주도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라고 말했다. 한류 전문 기자인 일본의 간노 도모코 기자는 “한국은 콘텐츠로 실력을 증명했다. 한국이 중심이 되어 잘 이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한류 야전 사령관들은 대륙을 넘어서는 순간 국적은 무의미해진다며 세계 시장에서는 아시아 콘텐츠가 함께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세계 대중문화 시장에서 아시안 웨이브를 주도할 수 있는 아시아 대중문화 코드로 꼽은 것은 크게 열 가지였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호러물, 중국의 무협과 누아르물, 태국의 액션, 인도의 볼리우드 영화, 한국의 드라마·대중음악·인터넷 게임이 바로 그것이다. 

세계 시장에 통할 10대 아시아 콘텐츠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중국의 무협은 이미 세계 시장의 주류 반열에 올라섰다. 일본의 호러물과 중국의 누아르물도 할리우드에서 조금씩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옹박> 시리즈로 중국 액션과는 다른 새로운 액션의 가능성을 보여준 태국과, 특수성이 강해서 아직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볼리우드 영화는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 

한국은 한국형 드라마와 세계 시장에서 K-pop이라 불리는 대중음악 그리고 인터넷게임 등에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가족 드라마를 중심으로 ‘아시아적 가치’를 내포한 한국 드라마는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어서 이미 중동과 아프리카, 중남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통신망을 바탕으로 세계 인터넷 게임 업계의 테스트 베드로 활용되고 있는 한국은 인터넷 게임도 주도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K-pop은 세계적으로 대세를 이루고 있는 흑인음악을 가장 잘 소화해 내고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오는 2월, 비의 뉴욕 공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을 두드릴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댄스 음악 위주에서 발라드와 록 음악 등 장르를 다양화할 예정이다. 윤등룡 대표는 “댄스 음악에 이어 앞으로 록 음악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미 가능성을 확인했다. 또한 한국의 우수한 비보이(힙합 댄스) 문화는 한류의 새로운 엔진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문에 응해주신 분들 :

간노 도모코 (일본·한류 전문기자)
김양래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 사무처장)
김영덕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연구원)
변희재 (런아시아넷 대표)
양경석 (국회 한류연구회 실무간사)
원소강 (대만 GTV 한국대표)
윤등룡 (DR뮤직 대표)
이형욱 (SSD 부사장)
홍승성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황동열 (중앙대 예술대학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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