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문명 융합’ 선진국?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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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 연예인 껴안고 중화주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 비판 안해

 
대중문화의 총화인 영화와 드라마 속에는 문명의 충돌과 융합 현상이 반영되기도 한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에는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인 미국이 겪은 문명의 충돌과 융합 현상이 나타나 있는 경우가 많다. 문명의 충돌은 주로 전쟁 영화를 통해서 나타난다.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을 비롯해 미국이 수행한 거의 모든 전쟁은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서 재해석되었다. 할리우드는 영화를 통해서 미국의 승리를 재확인했다.

문명의 융합은 할리우드 영화 안에서 새로운 문명에 속한 인물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새로운 문명을 대표하는 인물은 대부분 조연, 특히 악역을 맡는 경우가 많다. 흑인과 중남미 히스패닉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주류 영화의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위상 증가는 인구 증가에 따른 소속 인종의 영향력 증가와 궤를 같이한다.  

흑인과 히스패닉 다음으로 부상하는 배우는 아시아인들이다. 미국에서 아시아인들의 인구 증가와 영향력 증가에 힘입어 아시아 배우, 특히 중국 배우들이 속속 할리우드로 입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또한 대부분 악역 조연으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홍콩 누아르의 지존 저우룬파는 <리플레이스먼트 킬러>에서 킬러로 신고식을 치렀고, 홍콩 무협의 적자인 리롄제는 <리쎌웨폰 4>에서 중국계 갱 조직 보스로 등장하며 어렵게 얼굴을 알렸다. 최근 할리우드에 진출한 장쯔이 역시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게이샤의 추억>에 기녀로 출연한 그녀는, 비록 영화 속이지만 일본 남성과의 베드신 때문에 중국인들로부터 비난을 들어야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비슷한 과정을 한국 배우들도 겪었지만 반응이 중국처럼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최근 중화권 블록버스터 영화에 한류 스타로 얼굴을 알린 한국 배우들이 캐스팅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맡은 역할은 사회적 신분이 낮았다. 김소연은 <칠검>에 노예로 출연해 겁탈 당하는 장면까지 나왔으며, 김희선은 <신화>에서 후궁으로, 장동건은 <무극>에서 노예로 출연했다. 그러나 중국의 중화주의를 보여주는 이런 설정에 대해서 국내의 반발은 거의 없었다.

국내 시장에서도 이방인에 대한 적극적인 껴안기가 나타나고 있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 혼혈 연예인인 다니엘 헤니가 출연해 오히려 주연이었던 현 빈보다 더 많은 인기를 모았으며, <달콤한 스파이>의 데니스 오 역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최근 개봉한 <태풍>에서도 혼혈 연예인인 데이비드 맥기니스가 조연을 맡아 열연했다. 우리 배우의 해외 진출을 여유 있게 바라보고 이방인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이런 모습은 우리 대중문화의 성숙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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