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흑표범 지구 정복 나섰다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5.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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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한 아프리카 5개국 전력 분석

 
생명의 발원지 아프리카.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팀들은 놀라운 에너지를 발산하며 세상을 경악시키는 전통이 있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카메룬은 전 대회 우승팀 아르헨티나를 꺾었고, 2002 월드컵에서는 세네갈이 전 대회 우승팀 프랑스를 침몰시켰다. 나이지리아가 유럽의 강호를 꺾는 것은 이제 뉴스도 아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이미 지역 예선부터 아프리카발 돌풍이 불었다. 전통의 강호 세네갈·남아프리카공화국·카메룬·나이지리아가 지역 예선에서 나자빠졌고, 그 자리를 토고·코트디부아르·가나·앙골라 등 아프리카 서쪽의 작은 나라들이 차지했다.

이 변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프리카 축구 강호들은 하나같이 협회의 부정과 무능으로 대표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메추가 떠난 세네갈은 대표팀이 붕괴 위기에 처했었다. 특히 스타 선수들이 책임감이 없어 팀 조직력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이지리아의 카누·오코차 선수는 대표팀 차출 때마다 핑계를 댔다. 토튼햄 이영표의 동료 미도(이집트)도 마찬가지다. 세네갈의 골잡이 엘 하지 디우프는 틈만 나면 사고를 쳤다. 경기 도중 팬들에게 침을 뱉고, 음주 운전을 일삼았다. 최근에는 나이트클럽에서 여자를 때려 구속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비해 무명 국가 선수들은 월드컵을 향한 열망이 컸다. 자국 리그나 프랑스·포르투갈 등 축구의 변방에서 뛰고 있는 토고·앙골라·튀니지 선수들에게 월드컵이 유일한 탈출구다. 월드컵을 통해 스카우트의 눈에 들어야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다. 가난에 짓눌린 아프리카 선수들은 목숨을 걸고 월드컵에 임한다. 이 투쟁심이 아프리카 축구의 에너지가 되었다. 

토고
이런 이유로 우리와 같은 조에 소속된 토고를 얕잡아볼 수 없다. 가나와 코트디브아르에 비해 전력은 뒤지지만 그렇다고 우리 대표팀보다 전력이 뒤지는 것은 아니다. FIFA 랭킹 56위인 토고는 이번에 월드컵 본선 무대에 처음 나섰다. 하지만 이번 예선에서 ‘테랑가의 사자들’(세네갈의 별칭)을 비롯해 말리·잠비아·콩고 같은 강호들을 연이어 거꾸러뜨렸다.

토고라는 이름부터 생소하다. 1922년 국제연맹은 영국과 프랑스에 토고 통치를 위임했다. 토고는 1960년에 독립했으나 이후에도 프랑스와 경제 관계를 유지했다. 1967년 에야데마 전 대통령은 군부 독재를 시작해 올 2월 사망했다. 현 대통령은 전 대통령의 아들 파우레. 파우레 대통령은 토고가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하자 국경일로 선포하기도 했다.
토고는 북한과 친하게 지낸다. 1973년 1월 북한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에야데마 대통령이 몇 차례 평양을 방문하는 등 상호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과는 1974년 이후 국교를 단절했다가 1991년 다시 수교했다.

 
토고는 조직력이 단단한 팀이다. 지난해 토고 대표팀 사령탑에 취임한 케시 감독은 조직력을 중시하는 전술을 편다. 나이지리아 국가대표 출신인 케시 감독은 월드컵에 출전한 감독 중 유일한 아프리카 출신으로 아프리카 선수들의 특성을 꿰뚫어보고 있다.

토고는 특정 선수에게 많이 의존하지 않아 우리가 대비하기 껄끄러운 상대다. 프랑스 하위 리그 선수들이 주를 이룬다. 골키퍼 아가사는 안정환이 소속한 메스의에서, 공격수 도그베는 3부 리그 루앙에서, 쿠아미 아그보는 2부 리그 그르노블에서 뛰고 있다. 대표팀 주장인 장-폴 아발로는 4부 리그 팀에서 뛴다. 토고 리그의 코조 토수(로메 아가자)·쿠마이 마자바우(로메 AS 두안)도 눈여겨볼 선수다.

자국 리그 선수 가운데서는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아데바요르(AS 모나코)가 요주의 인물이다. 아데바요르는 큰 키(190cm)에도 불구하고 스피드와 기술을 겸비했다. 자신이 우상으로 삼는 나이지리아 카누 선수 스타일과 닮아 있다. 아데바요르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는 법이 없다. 그의 인생 철학은 “늘 행복하다. 항상 기분 좋게 하루하루를 즐기며 산다”라고 한다. 아데바요르가 이번 월드컵에서 스타로 뜰 가능성있는 재목임은 분명하다.
토고는 지역 예선에서 8실점했다. 그 중 4골을 전반 15분 이내에 허용했다. 경험 부족 때문이다.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 초반에 토고는 역대 한국팀처럼 자기 플레이를 못할 가능성이 있다. 초반부터 이 틈을 파고들어야 한다. 또 토고는 본선 티켓을 따낸 후 가진 파라과이(2-4 패)와 이란(0-2 패)과의 평가전에서 연패했다. 수비에 구멍이 있다.

앙골라
앙골라는 조 추첨에서 토고와 함께 만만한 팀으로 지목되어 구애를 받았다. 우선 국가부터 좀 알고 가자. 이번 월드컵 진출을 이끈 주장 아크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앙골라에 석유·전쟁·가난만 있는 것이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앙골라는 앙골라인민해방운동(MPLA)이 집권하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앙골라는 북한 단독 수교국으로서 한국과는 아직까지 정식 관계가 수립되지 않았으나, 근래 들어 섬유·신발 같은 공산품을 수입해 가고 있다.

포르투갈 출신 루이스 올리베이라 감독은 2001년 아프리카청소년축구대회에서 청소년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성인 대표팀 감독으로서 2006년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한국에서 히딩크가 누리는 인기보다 한 수 위다. 앙골라 팬들은 평생 계약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벤피카의 공격수 만토라스와 벤피카 출신 아크를 비롯해 피구에이리도·호아오 페레이라·마우리토나 제 칼랑가가 주력 선수다. 스타급 선수가 하나도 없어 전력 노출이 거의 없다는 것이 강점이다. 이번 대회 참가국 중 가장 낮은 피파 랭킹 62위인 앙골라는 예선에서 ‘슈퍼 이글스’ 나이지리아를 제치고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앙골라는 공용어로 포르투갈어를 쓰고 주축 선수들이 포르투갈 리그에서 뛰고 있다. 앙골라는 포르투갈과 첫 경기를 가진다.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은 두 나라 간의 대결을 앙골라 언론은 ‘피로 맺어진 형제의 대결’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코트디부아르
‘코끼리들’(코트디부아르 대표팀 애칭)은 이번 대회에서 사고를 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엇보다 멤버들이 훌륭하다. 첼시의 주포 드록바를 비롯해 아스날 포백 라인의 투레와 에부에, 오세르의 센터백 아칼레, 생티엔의 수비형 미드필더 조코라, 아인트호벤의 희망으로 주목되는 스트라이커 코네 등 다이아몬드 원석이 즐비하다. 게다가 프랑스 출신인 앙리 미셸 감독의 풍부한 경험이 상승 효과를 기대케 한다.

선수 가운데는 ‘코트디부아르의 박주영’ 바카리 콘을 주목할 만하다. 고국에서 ‘바키’라는 애칭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고 콘은 2004~2005시즌 프랑스 2부 리그 25경기에 나서 24골을 기록했다. MVP도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이 왜소한 스트라이커(1m63, 61kg)에 대한 프랑스 감독의 애정은 각별하다. 미셸 감독은 “같은 동작을 열 번 반복해도 콘은 아마 매번 득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코트디부아르는 아르헨티나·네덜란드·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 함께 ‘죽음의 조’에 속했다는 것이 불운이다. C조는 잉글랜드 첼시팀 동료들의 대결이 흥밋거리다. 코트디부아르의 디디에 드록바, 아르헨티나의 에르난 크레스포, 네덜란드의 아리옌 로벤은 모두 첼시 소속 공격수들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같은 조에서 만나게 되었다. 여기에 지난 시즌 함께 뛰었던 마테야 케즈만도 한 조에서 만났다. 첼시에서는 드록바가 붙박이 주전이었다.

가나
기자는 우리 대표팀이 제발 가나를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재능 있는 선수가 넘쳐흐르는 가나 축구는 ‘아프리카의 브라질’로 불린다. 대표팀의 애칭도 ‘블랙 스타스’이다. 대표팀에 즐비한 스타 선수는 물론 프랑스 스트라이커인 티에리 앙리, 독일의 스트라이커 아사모아, 미국의 ‘축구 신동’ 프레디 아두도 가나 출신이다. 블랙 스타스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네 번이나 우승했지만 유독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월드컵 본선에 처음 진출했다.

 
가나는 이번 월드컵에서 톱시드에 배정된 팀에 꿀리지 않을 진용을 꾸렸다. 2001년 세계청소년선수권 준우승 멤버가 알토란처럼 성장해 팀을 지탱한다. 스타들이 많지만 가나의 강점은 뛰어난 조직력에서 나온다. 스티븐 아피아(페네르바체)·미셸 에시앙(첼시)·술레이 알리 문타리(우디네세) 등이 지키는 허리는 브라질에 뒤지지 않는다.
첼시의 미셸 에시앙이 가나의 간판 선수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스티븐 아피아와 술레이 알리 문타리가 이번 대회를 통해 스타로 뜰 공산이 크다. 아피아는 2003~2004시즌 명문 유벤투스에 스카우트된 그는 첫해 세계적인 미드필더 에드가 다비즈(네덜란드)를 벤치로 밀어냈다. 현재 터키 최강 페네르바체의 핵심 멤버로 활동 중이다. 카카(브라질)의 감각과 다비즈의 투쟁심을 겸비했다는 격찬을 받고 있는 문타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명문 구단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가나의 공격수 아이작 보아케와 스무 살짜리 스트라이커 아사모아 그얀의 성장세도 두드러진다.  
가나는 지난 11월 본선 진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승리하며 14연승 가도를 달리고 있다.

튀니지
‘카르타고의 독수리’ 튀니지는 2002년에 이어 2006년 월드컵에 입성한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다.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다. 2004년 아프리카네이션스컵 대회에서 튀니지를 우승으로 이끈 로제 르메르 감독은 유럽과 아프리카 대회에서 모두 우승컵을 차지한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튀니지는 독일에서 열린 2005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아르헨티나에 2-1로 아깝게 패한 뒤, 호주를 2-0으로 꺾어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튀니지는 스페인·우크라이나·사우디아라비아와 한 조에 편성되었다. 조 배정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도 본선 진출로 만족할 것 같다. 튀니지는 유럽과 남미를 잠재울 특별한 무엇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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