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륙 임박한 초특급 태풍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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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4일 개봉 앞둔 제작비 1백50억원의 대작 영화 <태풍>은 과연 분단을 소재로 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전설을 이어갈 수 있을까.

 
제작비 1백50억원, 마케팅비 40억원, 한국영화 최대 프로젝트 <태풍>이 드디어 전모를 공개했다. <태풍>은 탈북자 출신의 테러리스트 씬(장동건 분)과 그를 추적하는 정보요원 강세종(이정재 분)의 쫒고 쫓기는 추격전이 영화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영화 관계자들은 <태풍>이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을 잇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흥행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 등 대박을 터뜨린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분단영화라는 것이다. 남과 북의 대립에서 오는 강한 갈등구조, 혹은 이로 인한 부조리한 현실, 그리고 이 때문에 고통 받는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들은 관객에게 강한 울림을 주며 흥행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영화적 재미와 별개로 영화의 얼개는 <태풍>의 흥행 여부를 알아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실미도>를 비롯해 분단영화들은 현실과의 개연성 때문에 많은 관심을 끌 수 있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판문점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태풍> 역시 ‘길수네 가족’ 등 탈북자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특히 핵이라는 남북의 공동 화두를 중심에 놓고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결합해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분단영화의 흥행공식 따르며 대박 노려

분단영화로서 <태풍>은 이전의 영화들이 이룬 성취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쉬리>와 마찬가지로 <태풍> 역시, 분단 상황이 초래한, 혹은 초래할 수 있는 문제에 주목한다. 남북 격차에 의한 갈등을 그린 <쉬리>처럼 <태풍>은 탈북자 인권문제를 화두로 삼고 있다. <쉬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갈등을 빚는 남과 북의 주인공이 서로 공감의 여지를 발견한다는 점인데, 이는 <공동경비구역 JSA>와 비슷한 설정이다. 그러나 <공동경비구역 JSA>가 전형적인 ‘버디 영화’로 진행된 것에 비해 <태풍>은 쫓고 쫓기는 추격이 중심인 ‘누아르 영화’로 제작되었다. 

영화의 얼개가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와 닮았다면, 그 알맹이는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과 닮았다. 이념을 뛰어넘는 형제간의 애틋한 정으로 휴머니즘을 보여준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태풍>은 탈북 남매의 정을 통해 분단이 파생한 운명적 비극에 탈출구를 제공한다. 판타지적인 구성으로 남북의  갈등을 해소시켰던 <웰컴 투 동막골>과 마찬가지로 <태풍> 역시 판타지적인 에필로그로 갈등을 갈무리한다.

<태풍>에서 주목할 만한 또 한 가지는 바로 ‘우리 현대사에 대한 로망’이다. 최근 제작되고 있는 분단영화의 경우, 현대사의 질곡을 풀어헤치며 영화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는 영화를 만드는 주체가 분단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이제 이데올로기적인 갈등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 이데올로기 갈등을 대신하는 것은 휴머니즘의 외피를 입은 민족주의다. 현재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민족주의가 깊이 침전되어 이들 영화는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미국을 극복하고 있다.

관람객 5백만명이 손익분기점

분단영화의 민족주의적 징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는 가상 역사극 <천군>이었다. 역사 판타지 <천군>은 김대중·김정일 두 남북 정상의 회담 이후 남북이 공동 핵개발을 했다가 미국에 의해 저지되는 상황을 배경으로 했다. 맥아더 장군을 비꼬는 것으로 시작한 <웰컴 투 동막골>은  무지몽매한 미군이 평화로운 동막골을 폭격하는 것을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막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 

<태풍>에서의 미국 역시 극복의 대상이다. 씬은 미 정보국이 비밀리에 운송하던 핵미사일 위성 유도 장치를 탈취한다. 이 사건과 관련해 한국 정부는 미국과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작전을 펼친다. 국정원이 한미연합사령부와 미국 펜타곤의 교신을 도청해서 미군의 작전을 파악하는 장면을 보면 <태풍>에 민족주의 코드가 짙게 깔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람객 5백만명이 손익분기점

물론 <태풍>은 할리우드 흥행 코드도 충실히 따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씬의 복수심을 활용한 위기의식 조장이다. 한국 정부에 의해 망명이 거부된 가족사를 안고 있는 씬은 태풍을 이용해 한반도에 핵폐기물을 뿌리려고 한다. 테러리스트를 이용해 선과 악의 이원적 대립구도를 확립하고 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태풍>은 다른 분단영화와 마찬가지로 휴머니즘으로 귀결된다. 이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씬과 강세종이 화해하고 선과 악이 합일이 되는 장면은 이 영화가 한국적 가치관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다른 분단영화들이 선명한 하나의 메시지를 추구하는 것에 비해 <태풍>은 너무 많은 것을 보여준다. 각각의 주제들이 유기적으로 녹아들지 못했다. 강세종이 씬을 너무 빨리 동정해버려서 추격의 스릴이 떨어진다는 것도 치명적이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맹렬히 전진하는 것과는 대비된다. 특히 잦은 회상 장면은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데, 누아르 영화로서는 치명적이다. 반면 보조 캐릭터들이 약하고 잔재미들은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

이런 영화적 단점을 <태풍>은 블록버스터의 스케일로 봉합한다. 특수효과에서 <태풍>은 분명 <쉬리>보다 진일보했다. 컴퓨터 그래픽은 이 영화가 가장 큰 성취를 이룬 부분이다.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 덕분에 영화는 강력한 뒷심을 발휘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장면을 볼 수 있다. 곽경택 감독도 여기에 가장 기대를 걸고 있다.

국내 관객보다 관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아시아 관객의 반응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어찌 보면 <태풍>은 무모한 도전일 수 있다. 해외 판매액을 감안해도 5백만명 이상이 봐야 손익 분기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곽경택 감독은 <태풍>을 아시아 프로젝트로 진행했다. 곽 감독은 “강력한 대통령, 자주적인 국정원, 충성스러운 군대가 우리에게는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다른 아시아 관객으로부터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킹콩>  등 경쟁작들 만만치 않아

영화계에서는 <태풍>이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흥행 계보를 이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후에도 분단영화가 줄지어 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정착하지 못하는 탈북자의 이야기를 다룬 <국경의 남쪽>, 한반도 통일 이후를 이야기하는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 프로젝트 역시 <태풍>의 성공 여부에 많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태풍>이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전설을 잇기 위해서는 험난한 파고를 헤쳐가야 한다. 분단 소재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기는 하지만 그 이면에는 처절한 패배의 역사가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흑수선>과 한석규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중간첩>은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외면당했다. <간첩 리철진> <그녀를 모르면 간첩> <동해물과 백두산이> <간 큰 가족> <천군> 등의 분단영화들도 흥행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경쟁작들의 도전도 만만치가 않다. <태풍>은 일단 <해리포터와 불의 잔>이 강력하게 구축한 흥행 능선을 뚫어야 한다. 개봉주에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피터 잭슨 감독의 <킹콩>을 극복해야 한다. 비록 <태풍>이 5백50개 개봉관을 확보하면서 최대 개봉관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지만 그 다음 주에 4백개 관에서 개봉하는 <작업의 정석>은 강력한 도전자가 될 것이다. 그 다음 주에도 <나디아 연대기> <청연> <왕의 남자> 등 국내외 대작 영화들이 단단히 버티고 있다. <태풍>이 이런 경쟁작을 물리치고 흥행 대박을 일굴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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