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힘’ 죽이기 배후와 해법 찾기
  • 구춘권(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대우교수·정치학) ()
  • 승인 2005.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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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 <위기의 노동> 최장집 편/후마니타스

최장집 교수가 펴낸 <위기의 노동>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복합적 위기의 성격을 분석하고, 그 근원을 파헤치려는 작업이다. 최장집은 이미 2002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저서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를 분석한 바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민주화 이후 민주 정부의 한계를 무엇보다 보수 독점의 정치적 대표 체제에서 찾았고, 이러한 체제가 작동할 수 있는 사회적 배경을 냉전반공주의의 유산과 연관시켰다. 이에 비해 <위기의 노동>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정치적 차원의 진단을 넘어,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토대에서 일어나는 균열과 파편화를 다각도로 분석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성격의 작업은 당연히 한 학자에 의해 수행되기 어려운 것이며, 따라서 이 저술에는 해당 분야 연구자 총 15명이 집필자로 참여하고 있다.

<위기의 노동>은 책의 제목처럼 한국 사회의 위기의 근원을 노동 문제로 진단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비정규직 확산, 중소기업 노동자 주변화, 성별화된 노동시장의 고착 등은 오늘날 노동시장의 구조변화에 대해 정부가 적극 대응하지 않는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또한 신빈곤층 양산, 빈곤의 여성화, 그리고 노숙자 문제 등도 노동 시장으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에게 사회적 시민권 부여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선봉으로 얘기되는 미국에서조차 이러한 현상들은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노동 시장 구조 변화와 노동 시장 배제가 야기한 현상들은 너무도 극적이며 너무도 격렬한, 마치 산사태와 같은 성격의 것이었다. <위기의 노동> 저자들은 그 이유를 두 가지 차원에서 찾고 있다. 

 
우선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위기는 민주화 이후 민주 정부의 무능력에 의해 증폭되었다. ‘외환 위기’ 이후 구조 조정은 노동측을 철저히 배제한 채 진행되었고, 정부는 경쟁력 제고와 노동 유연화라는 이름 아래 노동의 희생만을 강요했다. ‘재벌 개혁’이라는 요란한 구호는 격심한 경제력 집중을 가져왔고, 재벌 체제의 핵심인 위계적·반민주적 기업지배구조는 전혀 변함이 없다. 노사정위원회는 기존의 노사 간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을 적극 중재하는 정부의 노력이 없었기에 경영측의 이해를 강요하는 장으로 전락했으며, 결국 민주노총의 탈퇴와 함께 그 상징적인 의미조차 상실했다. 요컨대 ‘정부의 실패’는 노동의 위기를 가속화했으며, 이는 전례 없는 비정규직 확산, 중소기업 노동자 및 여성 노동자 주변화, 신용불량자 및 신빈곤층 양산, 노숙자 문제 등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노동의 위기는 또한 노동운동의 분절화와 연대성의 위기이기도 하다. 노동 시장 양극화는 노동운동 양극화를 수반하고 있으며, 노노 간의 분열이 우려를 넘어선 현실로 등장했다. 대기업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은 기업별 조직 체계의 좁은 이해관계에 갇혀 노동 시장 양극화를 사실상 방조하는 심각한 연대성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노동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위기의 노동> 저자들이 제시하는 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사회적 시민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간단한 답을 찾기 위한 현실에서의 방정식은 대단히 복잡하게 꼬여있다. 여기에는 사회 세력과 정치 권력이라는 움직이는 변수는 물론 세계화라는, 우리 힘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까지 개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암흑으로 돌진하지 않기 위해서 이 방정식은 반드시 풀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는 확고한 사회경제적 기반에 서지 않은 민주주의가 야기한 야만을 수없이 보여주고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취약한 민주주의가 히틀러를 낳지 않았던가!

추천인 : 구춘권(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대우교수·정치학) 박명림(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학) 송원근(진주산업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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