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인천을 움직이는가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5.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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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 미디어리서치와 공동으로 인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대한 전문가 집단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안상수 인천시장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인천 사람들을 일컬어 ‘인천 짠물’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인천이 바닷가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일찌감치 상업이 발달해 상대적으로 계산에 밝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우스갯소리로 ‘서울 당구 150이, 인천 당구 80’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그런 ‘짠물’ 정신이 정치적 결속력에서는 그리 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지역 사람들의 중론이다. 충청·호남·이북 등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인천 사람’이라는 고향 의식이 약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서울·경기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 때문에 통칭 ‘수도권 정서’로 뭉뚱그려질 뿐, 인천 특유의 정서가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번 ‘누가 인천을 움직이는가’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이런 인천의 ‘무덤덤한’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직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는 안상수 인천시장이 압도적인 수치로 1위를 차지한 것말고는 이 지역을 대표할 만한 인물들이 다 고만고만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더욱이 ‘영향력 있는 인물’ 베스트 10 안에 비정치인이 3명이나 꼽힌 점도 다른 지역과는 차별되는 대목이다.

이 지역 여론주도층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인천의 실력자’로 꼽은 안상수 시장은 여러 모로 이명박 서울시장과 닮았다. 우선 궁핍한 학창 시절을 보낸 것부터가 그렇다. 안상수 시장은 충남 태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인천으로 전학 왔다. 인천 시민의 30%를 넘는 ‘충청 출신 인천 사람’의 전형인 셈이다. 신문 배달을 하며 고학으로 인천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학비와 생활비 탓에 재수, 삼수를 거듭한 끝에 겨우겨우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안상수·이윤성, ‘인천 맹주’ 쟁탈전 치열

1970년대 중반 제세산업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안시장은 이후 동양증권·데이콤을 거쳐 동양그룹 사장까지 오르면서 경영 전문가로서의 이미지를 쌓았다. 이명박 시장이 현대건설 말단 직원으로 시작해 ‘샐러리맨의 신화’를 이룬 것과 비슷한 궤적이다.

하지만 전문가 영입 사례로 정치권에 발을 디딘 안시장은 여러 차례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1996년 15대 총선과 1998년 인천시장 선거에서 연거푸 떨어졌고, 1999년 계양·강화 갑 보궐선거에서 겨우 금배지를 달았다가 이듬해 16대 총선에서 또다시 낙선했다.

 
그런 그가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것이 2002년 4월16일 한나라당 인천시장 경선에서다. 당시 그는 경선 투표 당일까지도 패색이 짙었다. 당내 경쟁자인 이윤성 의원(인천 남동구 갑)이 인지도나 지지도에서 그를 능가한다는 것이 중론이었기 때문이다. 언론들도 이미 그런 쪽으로 기사 방향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투표 결과 그는 1천3백46표(51%) 대 1천13표(38%)로 여유 있게 이의원을 따돌리고 한나라당 후보 자리를 따냈다. 그리고 본선에서도 민주당 박상은 후보를 24%가 넘는 표차로 제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난 3년여 동안 CEO 시장으로서 입지를 다져온 안시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5월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다시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손학규 경기도지사와 달리 수도권 빅3 가운데 유일하게 재선을 준비하는 셈이다.

그런 그에게 현재까지의 최대 경쟁자는 역시 같은 당 소속인 이윤성 의원이다. 지금까지의 당 지지도 추세라면 한나라당 후보가 본선에서도 유리하다는 전망 때문에, 이 지역 정가에서는 안상수 대 이윤성의 리턴 매치 결과에 더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20일자 인천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지역 성인 남녀 1천1백32명을 대상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정당 지지도는 한나라당이 42.6%로, 열린우리당 23.1%를 능가하는 상황이다.

이번 <시사저널> 영향력 조사에서 안시장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이윤성 의원은 9시 뉴스 앵커 출신이라는 데서 오는 높은 인지도와 3선 의원을 하면서 쌓은 다양한 의정 활동 경력을 무기 삼아 이번에는 반드시 인천시장 후보 자리를 따내겠다며 설욕전을 벼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인천일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나라당 인천시장 후보로  이윤성 의원(32.8%)에 대한 지지도가 안상수 시장(24.7%)에 대한 지지도보다 8%포인트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보다 한 달 전 조사에서는 10%포인트 가량 차이가 났고, 그런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담당 기자의 설명이다.

 
이런 추세를 놓고 이윤성 의원측은 무척 고무된 표정이다. ‘3선 의원을 하는 동안 매년 국감 우수의원으로 뽑힐 정도로 의정 활동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고, 경인방송 유치, 인천국제공항 명칭 선정,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인하, 제2 연육교 건설 등 초선 의원 때부터 지역구 현안을 해결하는 데 몸을 사리지 않고 나선 것이 지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가 반영된 덕인지 이번 <시사저널> 조사에서도 ‘영향력 있는 정치인’ 분야에서는 이의원이 안시장과의 격차를 크게 줄이며 2위를 차지했다.

지난 경선에서 ‘조직표’에 밀려 뜻밖의 일격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이의원측은 이번에는 선거인단 구성이 당원 5, 일반인 5의 비율로 짜인 것이 이의원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일반인 사이의 평가가 본선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곧 ‘당심’에도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역 정가에서는 ‘안상수 시장이 굴비 사건으로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을 입었고, 무리하게 대북 사업을 추진해 보수층의 인심을 잃었으며, 투자 유치 등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그다지 뚜렷한 업적을 이룬 것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나라당 예선에서 현직 프리미엄이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지적에 대해 안상수 시장은 “굴비 사건은 이미 두 번씩이나 무죄 판결을 받았고, 경선 준비도 철저히 하고 있다”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어 양측의 기세 싸움이 초반부터 흥미진진하다.

열린우리당 시장 후보는 유필우·최용규 의원

이처럼 차기 인천 맹주를 향한 한나라당 주자들의 경쟁은 벌써부터 후끈 달아오르고 있는 데 반해,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 분위기는 썰렁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당 지지도가 저조해서 누구든 선뜻 나서기를 꺼리는 눈치다. 특히 현역 의원들이라면 임기를 2년이나 남겨둔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선거에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에, 주위의 참모진이나 지지자들 역시 적극적으로 출마를 권유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번 <시사저널> 조사에서도 ‘인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 또는 세력’으로 한나라당이 1위를 차지했고, 안상수 시장을 비롯해 이윤성·황우여 의원, 박승숙 인천시의회 의장 등 한나라당 소속 인사들이 주로 영향력 종합 순위나 정치인 분야에서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인천 지역 12개 의석 가운데 9석을 석권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모두 그 뒤를 따르는, 초라한 성적이다. 이에 대해 이 지역의 한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탄핵 바람을 타고 당선된 의원들이 그 후에라도 조직을 탄탄히 다졌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러다 보니 중앙당 지지도가 하락하는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지역 내 지지층이 다 떨어져 나간 상황이다”라고 분석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의원은 여당이 많지만 인천시의회는 광역 의원 99%가 한나라당 소속이다. 따라서 지역 현안에 대해 안상수 시장이 정치적으로 드라이브를 걸고 시의회가 이를 뒷받침하면 여당 의원들로서는 속수무책이다”라는 하소연이 나온다. 현재 중앙 정부는 추진하겠다고 하고 인천시는 적극 반대하고 있는 ‘인천 경제자유구역 특별지방자치단체화’ 등이 대표 사례라는 얘기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그나마 차기 시장 후보로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열린우리당 인사가 유필우 의원(인천 남구 갑)과 최용규 의원(부평구 을)이다. 제물포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행정고시 15회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유의원은 인천 북구청장과 대통령 비서실을 거쳐 인천시 부시장을 지낸 행정 전문가다. 고향은 황해도지만 인천에서 자라고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해 이 지역 여론주도층의 신망이 높은 편이다. 인천국제공항이나 경제자유구역청 설치 등 지역 내 굵직굵직한 사업들이 대부분 유의원이 부시장 시절 기획하고 추진했던 일들이어서 이 사업들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도 듣고 있다. 유의원이 초선인데도 영향력 종합 5위를 기록하며 열린우리당 의원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은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인다. 유의원측은 “인물 경쟁력에서는 가장 앞선다는 평을 얻고 있지만 당 지지도가 워낙 약해 중앙 정치에서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수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일단 인천과 서울에 캠프를 꾸려 준비는 철저히 하겠지만, 출마 여부는 내년 초에 가서 결정해야 할 것 같다”라고 곤혹스러움을 토로했다.

유의원과 함께 열린우리당 후보로 거론되는 최용규 의원 역시 비슷한 처지다. 인천광역시의원과 초대 민선 부평구청장을 거치며 오랫동안 지역 내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아온 최의원은 일찌감치 인천시장에 나설 뜻을 세웠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죽을 쑤고 있는 데다, 지난 9월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의 폭언이 논란이 된 국회 법사위원들의 대구 술자리에 동석했다는 이유로 최의원 스스로 자숙하고 있는 중이다. 최의원측은 “경위야 어떻든 파문의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조신하게 지내야 한다는 내부 성찰이 있었다. 연말까지 그동안 주도해온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특별법’ 통과에 주력한 뒤 시장 출마 여부는 내년 초에나 본격적으로 고민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최의원은 이번 조사에서 영향력 종합 7위, 정치인 분야에서는  유필우 의원보다 한 단계 높은 6위를 기록했다.

이명박 시장, 차기 대통령감 단연 1위

종합 순위와 달리 정치인 분야에서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 열린우리당 송영길·이호웅 의원이 상위권에 오른 것은 아무래도 3선과 재선급이라는 국회의원 선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대로라면 차기 인천시장을 놓고 열린우리당에서는 유필우 대 최용규, 한나라당에서는 안상수 대 이윤성간 예선 구도가 성립될 가능성이 높다. 제3 후보로 여권에서는 강금실·진대제 같은 전·현직 장관이나 지난 선거에 출마했던 박상은 전 경인방송 대표, 최기선 전 인천시장의 이름이 거론되지만 현재로서는 현실성이 낮아 보이고, 한나라당에서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전 사위로 더 잘 알려진 윤상현 인천 남구 을 지구당위원장이 출마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지지세가 약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번 <시사저널> 조사에서도 ‘차기 인천시장감’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안상수-이윤성-유필우-최용규 순으로 답변했다. 민주노동당 후보로 거론되는 김성진 인천시당위원장과 열린우리당 제3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박상은-최기선 씨가 그 뒤를 이었다. 민주당에서는 조한천 전 의원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거의 주목되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노동운동이 센 이 지역에서 민주당보다 민주노동당 지지도가 높다는 것이 이런 결과를 낳는 것으로 해석된다.

 
당 지지도와 관련해 또 한가지 궁금한 대목은 심대평 충남도지사가 중심이 된 가칭 국민중심당에 대한 이 지역민들의 호응도가 얼마나 되느냐다. 인천에 충청 출신들이 많아 과거 자민련에 대한 지지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찻잔 속의 태풍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중심당에 대한 지지도는 민주당보다 낮게 나오는 실정이다. 

차기 대통령감으로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31.6%로 1위를 차지했고, 고 건 전총리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2, 3위로 나왔다. 최근 여론조사 추이에서 이시장과 고 전총리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에 비하면 이시장의 독주가 이례적이다. 10·26 재·보선 승리와 뒤이은 당직 개편 등으로 재도약을 꿈꾸고 있는 박대표가 이시장 지지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오는 점도 쉽게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다. 이 지역 정가에서는 ‘청계천 효과에다, 범수도권 인식이 작동하고, 인천이 경제 중심지여서 CEO형 리더에 대한 열망이 더 크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여파에 따라 한나라당 대선주자감으로도 박대표(28%)보다 이시장(39.8%)을 꼽는 사람이 더 많았고, 열린우리당 대선주자감으로는 여전히 정동영 장관(29.6%)이 김근태 장관(17.2%)을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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