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수남’ 한번 키워볼까?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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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연인> <서동요> 등 ‘평강공주형 드라마’ 넘치는 이유

 
‘캔디렐라’ 혹은 ‘순대렐라’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데렐라 시대가 이제 서서히 저물고 있다. 평범한 여주인공이 백마 탄 왕자 같은 재벌 2세를 만나서 신데렐라가 된다는 내용의 드라마는 <파리의 연인>과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최고점을 찍은 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텔레비전 브라운관에서 신데렐라가 사라지고 대신 평강공주가 떠오르고 있다.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을 장군으로 만들었듯이 ‘평범한 남자 주인공을 사랑해 성공해 이르게 한다’는 ‘평강공주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드라마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시청자들은 백마 탄 왕자를 꿈꾸는 대신에 바보 온달을 키워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대표적인 평강공주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드라마로는 대통령의 딸인 윤재희(전도연 분)가 평범한 형사인 최상현(김주혁 분)을 사랑하는 내용을 그린 <프라하의 연인>(SBS)을 꼽을 수 있다. 비천한 신분으로 신라에 망명한 서동(조현재 분)을 선화공주(이보영 분)가 최고의 과학 기술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후견인이 되어준다는 내용의 <서동요>(SBS) 역시 같은 계열이라 할 수 있다.

신데렐라 드라마는 내리막, 평강공주 드라마는 오르막

지방 대학 출신에 집안까지 풍비박산이 난 집안의 막내인 한정우(김동완 분)를 명문 대학을 나온 부잣집 딸 장서영(박선영 분)이 좋아하게 된다는 내용의 주말 드라마 <슬픔이여 안녕>(KBS)도 역시 평강공주 콤플렉스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여주인공이 재벌 2세 대신에 자신의 보디가드를 좋아하게 된다는 <이 죽일 놈의 사랑>(KBS) 역시 같은 계열로 분류할 수 있다. 

MBC 드라마 중에서는 이미 종영한 <신입사원>과 <비밀남녀>를 이런 계열로 분류할 수 있다. 지상파 방송사 중에서 가장 실험적인 드라마를 제작해오고 있는 MBC는 변형된 평강공주 콤플렉스를 드라마에 녹여 냈었다. <신입사원>에서는 바보 온달 강호(문정혁 분)가 평강공주인 서현아(이소연 분) 대신에 서민 격인 이미옥(한가인 분)을 택한다는 내용이었고, 남자 신데렐라를 다룬 <비밀남녀>는 왜곡된 평강공주 콤플렉스를 다룬 내용이었다. 

 
드라마에서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은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나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외환위기 때도 그렇고, 주로 경기가 나빠졌을 때 여성들의 ‘로또 심리’를 자극하는 신데렐라 드라마가 기승을 부렸다. 여성들이 현실의 어려움을 드라마 속 판타지를 통해 잠시나마 잊을 수 있도록 만드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경기가 좋아지고 여성들의 입지가 넓어지자, 이제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캐릭터보다 남자의 운명까지 개척해주는 능동적인 캐릭터가 각광받고 있다. 여성 경제인구가 1천만 명을 넘어서고 신규 경제 참여인구 중에서 여성의 비율이 남성을 능가하게 되면서 여성들이 그냥 의탁할 수 있는 남자보다는 직접 만들고 이끌어 줄 수 있는 남자에게 더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심리학 관점에서 평강공주형 드라마는 두 가지 블루오션을 개척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남성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만큼 강한, 혹은 더 강할 수도 있는 여성들의 남성 지배욕을 자극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평범한 남자 주인공을 내세움으로써 남성 시청자들의 열등감을 해소하고 여성의 모성에 기대고자 하는 욕망을 채워준다는 점이다. 

스크린에서도 순진남들의 순애보 '봇물'

영화에서도 바보 온달 캐릭터가 각광받고 있다. 바보 온달의 한 축이 가진 것 없는 약자라면 다른 한 축은 착하고 순진무구하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바보 온달의 순진무구한 측면이 부각된 주인공들이 사랑받고 있다. 

 
<너는 내 운명>의 김석중(황정민 분)과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식(김주혁 분), 그리고 <나의 결혼원정기>의 만택(정재영 분) 모두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순도 99% ‘순수남’ 들이다. 이들은 빛 바랜 사진첩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순진무구한 사랑으로 여주인공을 감동시킨다. 이들의 절대적인 사랑은 남성들이 일생에 한 번은 경험해 보았음직한 순수했던 사랑의 시간을 기억해 내도록 거든다. 

<광식이 동생 광태>와 <나의 결혼원정기>는 각각 순수남 광식과 작업남 광태(봉태규 분), 그리고 신토불이 쑥맥, 만택과 농촌형 작업맨, 희철(유준상 분)을 대비함으로써 순수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에서 순수한 남자가 각광받는다는 것은 역으로 시대가 그렇지 않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복고적인 사랑은 소소한 가을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순수한 사랑의 기억에 빠져들고 싶어하는 관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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