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한 사랑, 영악한 사랑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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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키원드] 순수남과 작업남:<광식이 동생 광태>

 
<순풍산부인과>를 시작으로 한때 큰 인기를 얻었던 텔레비전 시트콤에는 다른 드라마에는 없는 공식이 있었다. 지금도 지켜지고 있는 이 공식은, 바로 반드시 두 가지 이상의 이야기를 병치해서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한 가지 이야기만 진행하면 영악한 시청자가 미리 예상하는 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이야기와 아이들의 이야기가, 남자들의 이야기와 여자들의 이야기가, 소소한 가정사와 남녀 간의 애정사가 교차 편집되면서 시청자들은 이야기를 미리 짐작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재미를 얻게 된다.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는 이런 교차 편집의 장점을 잘 활용한 작품이다. 형 광식이와 동생 광태의 서로 다른 스타일의 사랑이 적절히 병치되면서 새로운 느낌을 준다.

작업남 대신해 순수남 스크린 점령

<연애술사><연애의 목적> 등 올해 전반기에 나왔던 연애 영화들이 ‘작업남’을 다루고 있는 것과 달리 후반기에 나온 <너는 내 운명><소년, 천국에 가다><나의 결혼원정기> 등은 ‘순수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광식이 동생 광태>는 이 둘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연애의 서로 다른 모습을 대비해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아마 한국 남자의 스타일을 20 대 80으로 나눈다면 다양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는 동생 광태는 상위 20%에, 7년 동안 줄곧 짝사랑만 한 형 광식이는 하위 80%에 포함될 것이다. 빛의 속도로 만나고 헤어지는 동생 광태가 오늘날의 남녀관계를 대표한다면, 들일 수 있는 뜸은 최대한 들이고도 밥을 죽으로 만드는 형 광식이의 사랑은 지나간 날의 사랑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침묵하는 다수’의 순수했던 한국 남자들이 연애 작업에 탐닉하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의 영향이 가장 컸을 것이다. 인터넷 채팅이 일반화하고 ‘번개’라는 깜짝 만남이 잦아지면서 그들은 순수의 우물을 박차고 나와 포효하기 시작했다. 발 빠른 만남과 가파른 이어짐은 사랑의 새로운 풍속도를 낳았지만 원조교제라는 폐륜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에 사랑 고백 한번 제대로 못하고 7년 동안 짝사랑으로 일관하는 광식이의 사랑은 20세기의 지나간 유물일 수 있다. 7년 전 친구에게 빼앗겼던 사랑하는 여인을 또다시 후배에게 빼앗기는 광식이의 모습은 오늘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는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변에서 한 번은 봤음직한 이 순수남이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그리 낯설지가 않다.

김주혁이 <프라하의 연인>에서와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광식이 캐릭터를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은 바로 ‘평화유지군’이다. 자신의 사랑은 고백도 못하고 연애 시장에서 밀려난 여자 후배들 뒤치다꺼리를 도맡는 그는 동아리에서 ‘평화유지군’으로 통한다. 광식이 좋아하는 여성으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듣는 말은 ‘고마워요’ ‘오빠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라는 말이다. 그는 그 말이 이도 저도 아닌 여자의 마음상태를 일컫는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는 한계 또한 알고 있다. 그는 이 땅의 소심남들이 ‘그래그래 나도 저랬어’라고 박수를 치며 수긍할 만한 수많은 에피소드를 남긴다.

‘여자를 만날 때 열두 번 이상 섹스한 여자는 만나는 않는다’는 소신을 가진 동생 광태는 사랑과 이별의 호흡이 가팔라진 요즘 세대를 대표한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마음은 굳이 반응해서 불편해지지 않도록 붙들어매는 것이 광태의 사랑법이다. 그에게는 몸과 몸이 붙었다 떨어지는 것이 쉽고 재미있다. 마음과 마음이 붙었다 떨어지는 것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너무 불편하다.

광식이와 광태의 서로 다른 사랑법 관람하기

광식이와 광태의 대비되는 사랑을 통해 남성 관객이 감정이입의 여지가 많다는 점이 <광식이 동생 광태>의 장점이다. 여성 작가들의 시선 위주로 그려져서 도무지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텔레비전 드라마에 아쉬움을 갖는 남성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서 많이 공감할 여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갑갑할 정도로 더딘 광식에게, 혹은 숨이 가쁠 정도로 빠른 광태의 사랑을 쫓아가며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남자들의 이야기에 치중한 나머지 여성 캐릭터가 모호한 것은 이 영화의 큰 약점이다. 이요원이 맡은 윤경이나 김아중이 맡은 경재는 입체적인 인물이 되지 못하고 단순한 이미지만 보여주는 삽화적인 인물이 되어 버렸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남자의 처지에서 연애를 재구성하기에는 적합하지만 여성 관객이 공감할 여지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YMCA야구단>과 <슈퍼스타 감사용> 등을 통해 시대상과 영화의 스토리를 잘 버무려낸 김현석 감독은 연애 영화에서는 다소 미흡한 면을 보인다. 스토리를 섞는 솜씨는 뛰어난데 풀어내는 솜씨는 다소 미흡하다. 결론 부분에 이르면 영화는 긴장의 고삐마저 놓치고 만다. 그러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사랑을 효과적으로 대비했다는 점에서 <광식이 동생 광태>는 볼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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