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웠노라, 이겼노라 사라지겠노라
  • 시미즈 기요시(일본 현직 기사) ()
  • 승인 2005.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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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총리가 임기 연장 안하는 ‘세 가지 이유’

 
“이미 연명에는 뜻이 없다...” 지난 9월11일 개표된 일본 중의원 선거 직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친한 민간인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1986년, 중의원·참의원 양대 선거를 이끌었던 자민당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재는 자민당 3백 의석이라는 경이적인 숫자로 당시 사회당을 크게 이겼다. 그 물결을 타고 나카소네 씨는 자신의 총리 재임 기간을 1년 연장했다. 자민당의 총재 임기 연장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번에 고이즈미 총리가 달성한 2백96석의 의석수도 이같은 임기 연장론으로 연결시킬 정도의 의미를 충분히 가지는 숫자이다.  하지만 총리는 임기 연장을 강하게 부인한다. 왜일까?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우정 민영화 법안이 이르면 올해 안이 발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염원해온 우정 민영화 레일을 까는 작업을 완성했다면, 총리로서는 재임 기간 중 목표로 해야 할 정책 과제가 이미 없어진 셈이다. 말하자면 우정 법안 발효 후 총리로 재임한다는 것은 끝내기 시합과도 같은 일이다. 우정공사가 2007년부터 단계적으로 완전 민영화하기까지는 약 10년이 걸린다. 이처럼 긴 과정을 지켜볼 때까지 총리가 계속 자리를 지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즉 총리는 우정 법안이 발효되는 즉시 퇴진하는 것도 구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총리의 생각으로는 우정 법안이 발효된다면 스스로 권좌를 고집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암초에 걸린 중국과의 관계다. 지난 번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던 6자 회담의 성공으로 미국과 북한간 긴장은 완화되고 있다. 이같은 해빙 분위기에 편승해 일·북 관계 정상화 교섭을 재개하려는 기운이 높아지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일·북 문제 등에서는 일본과의 협상을 주저하는 상황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총리는 아마도 올해 말 마지막 참배를 결행할 것이다. 자민당 압승이라는 분위기를 등에 업고 야스쿠니를 참배하려는 것은 부전(不戰)을 맹세한다는 무리한 핑계를 대고, A급 전범의 앞에서 머리를 숙이는 일이다.

우정법안 발효 즉시 퇴진할 수도

당연히 중국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총리의 행동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일·북 교섭 과정에서도 중국 정부가 고이즈미 정권에 대해 비협조적 태도를 보일 것은 명백하다. 중국 정부의 노림수는 ‘포스트 고이즈미’에 일·중 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고이즈미 총리 기간에는 외교 과제를 처리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임기 연장에 집착하지 않는 것도 외교 과제가 꽉 막힐 수 있다는 느낌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다.

세 번째는 고이즈미 총리 자신이 퇴진 시기의 미학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개혁 관련 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혼란했던 1993년,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에게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한창 높아질 때 총리 자리에 계속 앉아 있으려 했던 미야자와 씨에게 당시 고이즈미 후생장관은 ‘물러나는 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이즈미 후생장관은 미야자와 내각이 총사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도 사표를 냈고, 그 뒤 자민당에 분열의 움직임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계 재편으로 연결되었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자민당 내의 최대 파벌인 게이세이카이(經世會·옛 다케시타파)가 주도했던 정국 운영에는 혐오감을 품고 있던 터였다. 그런 만큼  물러날 때를 잘 깨달아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한 스스로의 말을 어기지 않으려는 생각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이유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임기를 연장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확실시되고 있지만, 그렇다면 앞으로 1년간 일본 정국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외교적으로는 일·북 교섭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도움이 없더라도 북한은 ‘포스트 고이즈미’ 내각에 매파인 아베 신조 등이 취임한다면 일본이 경제 재제를 포함한 강경 수단을 동원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고이즈미 정권 때에 어떻게든 국교 정상화 교섭을 진행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양국 외교 당국은 올해 1년을 최후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교섭을 진행할 것이다. 총리 자신은 납치 피해자 문제는 국교 정상화 후에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듯하며, 총리 주변에서도 정상화 교섭이 먼저라면서 납치 피해자 의원 연맹의 목소리에는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편이다.

특히 납치 피해자 의원 연맹의 강한 영향력을 업고 하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 전 경제산업장관이 우정 법안에 항의하며 반란을 일으키고 자민당에서 무소속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총리는 하라누마를 배려할 필요가 전혀 없어졌다”(모리파 간부)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고이즈미 제국’으로서는 방해꾼이 없어진 셈이어서 일·북 교섭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된 데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아베 신조, 차기 총리 될 확률 50%

한편으로는 우려스러운 과제도 있다. 7백조 엔이나 되는 적자를 끌어안고 있는 고이즈미 정권은 현재 재정 재건을 호소할 만큼의 존재 가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일본 국민이 이 정도의 빚 때문에 세금을 더 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재정 재건을 견딜 만한 여력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국내 정치 문제로는 소비세 문제가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소비세 인하에 대해서는 신중한 자세를 유지해 왔다. 그는 과거 “소비세를 올릴 때에는 두 개의 내각이 날아가 버린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고이즈미 총리가 소비세의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인정한 것은, 구태여 인상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스스로가 이 문제를 건드리는 순간 내각이 날아간다고 하는 말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고이즈미 총리는 소비세 인상을 미루고 있는 형국이다.

고이즈미 제국이 목표로 하는 것은 한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모양 좋게 물러나는 방법이다. 소비세 인상 문제도 건드리지 않고, 최후의 최후까지 물러나는 시기의 미학을 고려해 후계자에게 바톤 터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후계자는 누가 될까. 지금 단계에서는 아베 신조가 유력하다고 말할 수 있다. 민주당이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를 대표로 앉힌 이상 자민당도 포스트 고이즈미에는 젊은 사람을 옹립하지 않으면 민주당에 대항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 확실하다. 단 아베 씨가 총리가 될 확률은 50%다. 자민당 내부에는 급속한 세대 교체를 걱정하는 세력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력이 아베측에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 보일 때 자민당은 그야말로 최후를 맞게 된다. 결국 포스트 고이즈미 선출은 자민당의 종언과 직결된 최후의 만찬이 될 가능성이 극히 높다고 할 수 있다. 그 시기는 내년 여름으로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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