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박정희 기념관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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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재단, 어린이 놀이·교육 시설로는 경쟁력 잃어

8월17일 취재진이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을 찾았을 때 본관(과학관)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육영수 여사 사진전이 한창이었다. 1층부터 4층까지 건물 계단을 둘러싸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생전 모습을 담은 흑백·컬러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린이회관은 일종의 ‘작은 박정희 기념관’ 역할을 하고 있다. 어린이회관 입구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가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 과학관 1층의 육영수 여사 대형 초상화와 문화관 앞 육영수 여사 동상 주변에는 며칠 전에 놓인 듯한 꽃다발이 보였다.

육영재단은 1969년 4월 설립되었는데, 설립 초기부터 육영수 여사가 운영했다. 남산에 있던 어린이회관은 1975년 10월 현 광진구 능동 자리로 이전했다. 어린이대공원 21만평 부지 가운데 3만여 평을 떼어낸 것이다. 재단이 설립되고 이전될 때마다 많은 기업인들이 자금을 출연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도 오랫동안 육영재단 이사를 맡았다. 어린이회관 과학관(본관)은 현대건설이 지었다.
설립 초기 어린이회관은 당대 최고 시설을 자랑했다. 1970년대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한 번쯤은 어린이회관을 단체로 방문하는 것이 관례였다. 또 육영재단은 <어깨동무>나 <보물섬>같이 인기 있는 어린이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1983년부터 서울시 자금 지원이 끊기고, 서울 주변에 어린이 놀이 시설이 많이 들어서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1982년 10월27일 박근혜 현 한나라당 총재가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박정희의 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박근혜씨는 1990년 돌연 자진 사퇴했는데, 박근령 현 이사장과의 불화가 큰 이유였다. 1990년 가을 박근령씨를 지지하는 ‘숭모회’가 어린이회관 앞에서 임원들의 사퇴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박근혜 이사장을 지지하는 ‘근화봉사단’과 충돌했다. 당시 숭모회를 이끌었던 이 아무개씨(77)는 “그때 우리는 박근혜 이사장이 아니라 최태민 고문을 쫓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이사장이 소란에 연루되는 게 싫었는지 스스로 사퇴했다. 우리의 뜻과는 다른 결과였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씨는 최근 ‘육영재단 바로 살리기 운동본부’를 만들어 박근령 이사장과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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