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금고지기의 운명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5.08.1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종상·이원조·홍인길 씨 줄줄이 감옥행

 
김종상 이태진 이현우 이원조 홍인길 권노갑. 3김 시대 검은돈을 거론할 때 이들을 빼놓을 수 없다. 이른바 권력자의 금고지기들이다.

전두환·노태우 씨는 군 출신답게 경리 장교 출신을 금고지기에 앉혔다. 김종상은 1981~1988년 경호실 경리과장을 지냈다. 재임 기간에 전씨의 검은돈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지금도 검찰이 애를 먹고 있는 전씨의 탁월한 비자금 재테크 솜씨는 김씨의 수완 때문이다.

김씨는 1백80여개의 가·차명 계좌뿐 아니라 추적이 불가능한 무기명 양도성 예금증서(CD)로 비자금을 관리했다. 이같은 수법은 역시 경리장교 출신인 이태진씨에게 전수되었다.

 
이태진씨가 실무자라면 퇴임 후 노씨 비자금을 총관리했던 이현우씨는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했다. 1995년 박계동 의원이 폭로한 계좌를 노씨 비자금이 아니라고 오판한 것이다. 그래서 연희동은 오히려 검찰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현우씨는 노씨 안방 금고의 007가방(이 가방의 비밀번호는 629이다)에 담긴 비자금 장부를 확인하고서야 비상 상황임을 감지했다.

3김 시대 금고지기 3인방은 역시 이원조-홍인길-권노갑이다. 금융계의 황제라고 불리는 이원조씨의 돈 세탁 솜씨에 검찰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매번 법망을 빠져나간 이원조씨는 전두환 비자금 수사로 기소되었지만 법정구속은 면했다. 그를 두고 불사조라는 별명이 붙었다.

YS와 DJ는 동지이자 측근인 홍인길씨와 권노갑씨에게 각각 정치 자금 관리를 맡겼다. 이들은 야당 생활을 오래 하면서 터득한 자신만의 노하우로 정치 자금을 관리했다. 노태우씨처럼 비자금 장부를 만들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홍인길씨는 ‘김-30, 박-20’(김OO 30억, 박OO 30억) 식으로 자신만이 알아보는 암호문으로 수첩에 기록했고, 권노갑씨는 기록 자체를 하지 않는다. 권씨는 머리 속에 입력하는 스타일이다. 받은 돈은 가급적 빨리 유통시켰다. 과거 군사 정권도 정치 자금과 관련해 둘의 입을 열지 못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회창씨는 동생인 이회성씨와 측근인 서정우 변호사를 정치 자금 루트로 삼았다.

금고지기가 수완이 뛰어나고 무거운 입을 가졌더라도 독이 묻은 돈은 탈이 나기 마련이다. 권력자의 금고지기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숙명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