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엔 전업주부였다니…
  • 장영희 전문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2005.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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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혹독한 경영 훈련 거쳐 화려한 변신

 
불과 2년 전까지도 그는 전업 주부였다. 사업하는 시아버지와 남편을 어깨 너머로 보고 살았던 재벌가 며느리였지만, 기업 경영에 대한 경험은 전무했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타계한 남편의 뒤를 잇겠다고 했을 때 걱정스런 반응이 우세했던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아줌마가 뭘 하겠어’ 하는 노골적인 무시도 없지 않았다.

1년10개월이 흐른 지금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취임 초기의 이런 반응을 보기좋게 뒤엎었다. 현회장의 CEO 역량은 우선 지난해 현대그룹 6개 계열사의 경영 실적이 웅변하고도 남는다.  현대그룹의 지난해 매출액은 6조6천5백억원으로 2003년에 비해 1조3천억원이나 늘어났다. 특히 중핵 회사인 현대상선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95.5%나 늘어난 5천6백억원을 기록했다. 사상 최대다.

그룹 지주 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도 사상 최대인 4천4백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현대아산 역시 매출액이 큰 폭으로 뛰었다. 비록 영업이익(마이너스 100억원)은 적자를 면하지 못했지만, 금강산 관광 사업의 호조로 올해는 적자 터널에서 탈출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렇게 좋은 성적을 올린 공을 현회장에게서만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현대그룹 관계자들은 현회장이 큰 역할을 했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풍비박산 직전의 현대그룹을 추스르고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현대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회장은 이른바 카리스마형 리더는 아니다. 화합형에 가깝다. 사람을 판단하는 내공을 더 쌓으면 그룹 총수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회장은 지난 1년여 혹독한 경영 훈련을 자청했다고 한다. 우선 경제용어집 등을 탐독해 전문성 부족을 보완했고, 계열사 사장단회의 같은 주요 회의 때도 열심히 듣고 꼼꼼히 메모하는 등 경영 전반을 학습했다는 것이다. 외부 경영자 모임에도 참여해 안목을 넓혔다. 과묵하게 보이지만, 남편(고 정몽헌 회장)과 달리 사람 만나기를 즐기는 등 특유의 친화력과 외향적인 성격도 빠른 적응에 한몫 했다는 분석이다.

최용묵 구조조정본부장이 1급 참모

현회장을 보좌하는 1급 참모는 최용묵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겸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이다.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 노정익 사장과 현대증권 김지완 사장도 중요한 경영 자원들이다. 이들은 남편이 중용했던 인물들이지만, 현대아산 윤만준 사장과 현대택배 김병훈 사장은 현회장이 임명한 CEO이다.

이들에게 현회장은 책임 경영을 강조한다. 좀처럼 나서는 법이 없다. 하지만 굵직한 사안은 현회장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 왔는데, 전격적이어서 놀랄 때가 적지 않았다고 한 고위 관계자는 귀띔했다.

지난 8월4일 정몽헌 회장 2주기 추모 행사에서 현회장은 대북 사업에 대한 의지를 거듭 밝혔다. 그녀가 7월16일 김정일 위원장을 단독 면담해 대북 사업의 전도가 한층 밝아진 것도 사실이다. 김윤규 부회장 건이 부담이지만, 설령 그가 빠진다 해도 별 문제가 없으리라는 말이 현대그룹 안팎에서 나온다. 그만큼 현회장이 자신감에 차 있다는 얘기다.

경기도 하남시 남편 묘소에 찾아가기 전날인 8월3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회장은 지난 2년 동안 가장 어려웠을 때가 경영권 분쟁이었다고 토로했다. 취임 2개월도 안되어 그것도 시숙부(정상영 KCC 명예회장)가 도발한 싸움이었으니 혹독한 시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회장은 시숙부의 공격을 물리쳤을 뿐더러 현대그룹을 재건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 그룹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여유가 생겼다.

꽤 단련된 현회장이지만, 그녀의 앞에는 난제가 수두룩하다. 당장 백두산 관광 등 새 대북 사업에 대한 사회 일각의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고 지원을 끌어내야 한다. 지난해 선언한 2010년 매출 20조원 달성·재계 10위권 진입이라는 비전 대장정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경영권 분쟁이 재연될 소지도 적지 않다. KCC측이 보유 주식을 한 주도 팔지 않아 ‘휴전’ 상태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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