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에 동의” 35.7% “현정부도 도청” 61.6%
  • 고제규 차형석 기자 (unjussisapress.comkr)
  • 승인 2005.08.1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저널>, 호남 지역 민심 긴급 여론조사

조사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 누구를 : 20세 이상 광주·전남·전북 지역민.
■ 몇 명을 : 1007명
■ 어떻게 : 구조화한 설문지를 통한 전화 여론조사
■ 언제 : 2005년 8월9~10일
■ 누가 : 미디어리서치
■ 표본오차 : 3.1% (95% 신뢰수준)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충돌하는 것처럼 비친 상황에서 관심은 호남 민심의 향배에 모아지고 있다. <시사저널>이 호남 지역을 대상으로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DJ가 돌연 입원하는 변수가 터졌다. 조사 막바지에 터진 변수여서 이번 조사에 100% 반영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국정원이 국민의정부 시절에 불법 도청 사실이 있었다고 발표하고, 동교동측이 분노를 표출한 이후에  이루어진 조사인 만큼 호남 민심의 기류를 엿볼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조사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사실 정치권에서는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음모론이 확산될 것이라는 예견이 많았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호남 지역 의원들은 국민의정부와 갈등하는 상황 자체를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호남에서 음모론에 동의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까지도 불법 도청이 이루어졌다는 국정원의 발표가 민주당과 김대중 죽이기라는 음모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46.2%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음모론에 ‘동의한다’는 응답은 35.7%에 그쳤다. 특히 광주는 전남(41.6%)과 전북(46.6%)에 비해 상대적으로 음모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52.3%)이 많았다.

 
윤장현 광주YMCA 이사장은 “광주 시민들은 정치 학습력이 뛰어나다. 무조건적으로 DJ를 옹호하는 소지역주의 사고에 발목 잡히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윤이사장은 지금까지는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전했다. 광주 지역의 한 언론사 고위 간부도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음모론이 먹힐 것 같지는 않다. 국민의정부에서도 도청이 있었다면, 그것대로 평가해야지, 호남 죽이기나 DJ 죽이기 음모론으로 확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음모론적 시각이 적었을 뿐만 아니라 호남에서는 ‘정치·경제·언론의 유착보다 불법 도청이 본질이라는 대통령의 의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공감을 표시했다. 노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46.9%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35.1%)보다 높았다. 최근 리서치앤리서치가 전국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정-경-언 유착을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 더 높게 나왔던 것과 비교된다.

정당 지지도나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도를 묻는 질문에서도 열린우리당으로서는 한숨 돌릴 만한 결과가 나왔다. 열린우리당이 35.5%로 높게 나왔다. 민주당이 23.7%, 민주노동당이 11.3%, 한나라당은 4.3%로 뒤를 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정운영 지지도를 묻는 질문에서는 전체적으로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52.4%,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43.7%로 나타났다. 긍정적 평가보다 부정적 평가가 많았지만, 다른 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지지도가 높게 나온 것이다. 지난 8월5일 리서치앤리서치가 전국 성인 남녀 8백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27%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안도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조사 결과에서 지역간 편차가 엿보이며 미묘한 기류 변화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 지지율만 하더라도 광주 지역에서는 오차 범위에 가깝기는 하지만 민주당 지지세(34%)가 열린우리당 지지세(30.5%)를 앞질렀다(상자기사 참조). 전남은 열린우리당 (30.1%)과 민주당(29.3%)이 팽팽하게 양분했고, 전북 지역에서 그나마 열린우리당(44.4%)이 민주당(10.8%)보다 높게 나왔을 뿐이다. 결국 전북이 호남 안에서 열린우리당 지지를 견인하는 형국이다. 달리 말하면 광주·전남에서는 민주당으로부터 상당한 위협을 받고 있는 꼴이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에 대한 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이다. 광주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일을 잘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60.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 지역의 언론사 간부는 “도청이 제2의 대북송금 특검이냐 아니냐, 아니면 음모론에 동의하냐 아니냐와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별개다.  음모론과 상관없이 호남에는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저변에 깔려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실망감에는 최근의 대연정론도 한몫 거든 것으로 보인다. 호남권에서는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응답자의 56.9%가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하는 것에 반대했다.

“대통령 잘하고 있다” 43.7%

이번 여론조사에서 무어니 무어니 해도 여권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대목은 참여정부가 불법 도청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불신이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법 도청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참여정부도 불신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으로 나타났다. ‘현정부에서도 불법 도청을 했을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 지역 10명 가운데 6명(61.6%)은 그랬을 것이라고 답했다. 참여정부는 불법 도청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응답은 22.3%에 그쳤다.

이 같은 조사결과에는 지난 8월8일 노대통령이 기자간담회에서 현정부의 불법 도청 여부에 대해 확답을 주지 못했던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상대적으로 지지 기반이라 할 수 있는 호남에서도 불법 도청을 자행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현정부의 불법 도청 여부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정부 때도 국정원이 불법 도청을 했다고 하고, 참여정부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상황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국정원 개편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최근 전국 단위로 실시한 여론조사와 엇비슷하게 10명 가운데 6명(61.5%)은 국정원을 어떤 방식으로든 개편해야 한다고 보았다. 

‘향후 국정원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국내 담당 부서를 폐지하고 해외정보처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견(40.3%)이 가장 많았고, 아예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강경한 의견(21.2%)도 많았다. 반면 현행 체제 그대로 국정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는 22.2%에 그쳤다.

 
이밖에 진상 규명을 위해서 불법 도청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의견이 분분했다. 검찰에 수사를 맡기고, 내용 공개는 특별법을 통한 제3의 기구에서 하자는 방안(30.6%)과 특검이 수사하고 특별법을 통해 공개하자는 방안(30.3%)이 팽팽하게 엇갈렸다. 특검이 수사하고 내용 공개도 특검이 하자는 안에 동의하는 의견은 23.4%였다.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세 갈래 해법을 놓고, 호남 민심은 아직 이렇다 하게 힘을 실어주지는 않고 있다. 한 지역 언론인이 정리한 것처럼 ‘음모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참여정부가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지켜보자’는 정서로 앞으로 정치권 논의를 지켜보자는 심사일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